1800년 7월 31일, 독일의 화학자로 ‘유기화학의 창시자’ 프리드리히 뵐러 (Friedrich Wöhler, 1800 ~ 1882) 출생
프리드리히 뵐러 (Friedrich Wöhler, 1800년 7월 31일 ~ 1882년 9월 23일)는 독일의 화학자이다.
– 프리드리히 뵐러 (Friedrich Wöhler)
.출생: 1800년 7월 3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Eschersheim
.사망: 1882년 9월 23일, 독일 괴팅겐
.자녀: 에밀리 뵐러, 어거스트 뵐러
.배우자: 줄리 파이퍼 (1834 ~ 1882), 프란지스카 뵐러 (1830 ~ 1832)
.수상: 코플리 메달
무기 화학과 유기 화학을 연구하여 19세기 화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19세기 최대의 화학자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화학과 광물학을 전공하고, 1836년 괴팅겐 대학 교수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리비히와 함께 요산의 연구로 유명하며, 1828년 시안산 암모늄에서 요소를 합성하여 처음으로 유기체의 합성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베릴륨 · 이트륨의 단체를 발견하였으며, 탄화칼슘 (카바이드) 등으로부터 아세틸렌을 만드는 연구를 하였다.
○ 생애 및 활동
과거에는 생물, 또는 “유기물” 이 무기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생물의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어떤 “생명의 힘” 이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생기론은 과학적 증거보다는 종교적 확신을 근거로 했으며 일반적으로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뵐러는 시안산을 발견하며, J.리비히와 공동연구한 ‘이성질체’의 존재를 강조하여 화학구조이론에 선구적 공헌을 하였다.
시안산 [Cyanide Acid]은 무색의 액체로 아세트산과 비슷한 냄새가 나며 녹는점 -86.8℃, 끓는점 23.5℃이다. 0℃ 이하에서는 안정하지만 그 이상의 온도에서 대부분은 시아메리드, 일부는 시안우르산으로 급속하게 중합한다. 또 급속히 가열하면 폭발한다. 에테르 · 벤젠에 녹고 몇 주일 동안은 안정하다. 물에는 조금 녹고 찬물 속에서는 몇 시간은 안정하지만 가수분해하여 쉽게 탄산수소 암모늄이 된다. 다소 강한 산이다. 반응성이 크고 알코올 · 산아미드 등에 반응하여 우레탄·우레이드를 만든다. 시안우르산을 건조한 이산화탄소 또는 질소 기류 속에서 서서히 380~400℃로 가열하고 발생하는 기체를 냉각제로 냉각하면 얻는다. 눈·피부 등을 자극하고 유독하다.
그 외 유기화합물의 실험실 합성의 가능성 주장, 유기화합물의 기이론 확립에 기여, 알루미늄·베릴륨의 단리, 결정규소 및 붕소의 제출, 일련의 규소화합물의 발견, 탄화칼슘의 발견 등의 업적이 있다.
1820년 마르부르크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듬해에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옮겨 1823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L. 그멜린의 영향을 받아 화학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823년 스톡홀름의 J. 베르셀리우스 밑에서 화학분석에 대하여 배우고 1825년에 귀국하였다. 베를린공업학교의 교사와 카셀공과대학 교수를 거쳐 183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괴팅겐대학의 화학 교수로 근무하였다. 그는 베르셀리우스 밑에 있을 때 시안산 (酸)을 발견하여, 그 화학식이 J.리비히가 발견한 풀민산과 일치한 사실에서 두 사람이 공동 연구한 ‘이성질체’의 존재를 강조하여 화학구조이론에 선구적 공헌을 하였다.
1828년에는 시안산암모늄에서 그 이성질체인 요소 (尿素)를 합성하여 유기화합물의 실험실 합성의 가능성을 주장, 유기화학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다. 그 후 리비히와 공동으로 발표한 <벤조산의 기 (基)에 관하여> (1832)라는 논문은 유기화합물의 기(基)이론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알루미늄 · 베릴륨의 단리 (單離), 결정규소 (結晶珪素) 및 붕소의 제출 (製出), 일련의 규소화합물의 발견, 탄화칼슘의 발견과 그것에 의한 아세틸렌의 제출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업적이 많다. 주요저서로는 《무기화학의 기초》 (1831), 《유기화학의 기초》 (1840) 등이 있다.
○ 뵐러의 업적
– 이성질체 (Isomers)
뵐러가 베르셀리우스 실험실에서 일하는 동안 시안산 (cyanic acid, H-O-C≡N)의 수은 염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1824년 시안산은 (silver cyanate)의 경험식이 AgOCN 임을 규명하였다. 한편 뵐러보다 세 살 젊은 리비히 (Justus von Liebig)는 유명한 프랑스 화학자 게이 루삭 (Gay Lussac) 실험실에서 연마한 최신 분석방법을 사용하여 뇌산 (雷酸, fulminic acid)의 은염, 즉 매우 폭발적인 뇌산은 (silver fulminate)의 경험식도 AgOCN 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분명한 결론은 두 분석중의 하나는 잘못되어 한사람은 신통치 않은 분석가임에 틀림없다. 리비히는 성격이 급하며 호전적이고 충동적이어서 재빨리 뵐러의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뵐러가 제공한 시안산은 (silver cyanate) 샘플을 리비히가 분석하였더니 그 결과도 틀림없음이 증명되었다. 1825년, 곤란한 상황에서 그러나 리비히는 공개적으로 자기의 비판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는데, 기묘하게도 이것이 두 과학자간의 평생 동안 지속되는 우정과 과학적 협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리비히는 재빠르고 충동적인 반면 뵐러는 신중하고 느려서 리비히가 너무 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뵐러가 체크해주며 상호 보완하여 아주 훌륭하게 협력을 하였다.
여하튼 뵐러와 리비히의 모순적 발견으로 화학계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즉 두 화합물은 똑같은 조성을 가지지만 많은 다른 성질을 갖고 있었다. 물질의 성질은 또한 일정성분비의 법칙에 따라 연관되어 있다고 가정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이러한 결론은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은 뵐러의 멘토인 베르셀리우스가 제공하였다. 베르셀리우스도 처음에는 리비히와 뵐러의 결과에 대해 약간의 회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중에 시안산은 (ex: AgOCN)과 풀민산은 (ex: AgCNO)은 동일한 조성을 가지나 구조가 다르며 따라서 다른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규명하였다.
즉 1831년, 베르셀리우스는 이성질체 (isomer: 어원은 동일한 구성원이라는 그리스어)의 개념을 제안하는데 바로 시안산은과 풀민산은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뵐러는 이성질체의 발견으로 구조화학(structure chemistry)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어 ” 오솔길이 없는 어두운 숲이 아닌 좀 더 분명해진 유기화학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 뵐러합성 (Wöhler’s synthesis) : 요소
아마도 이성질체 화합물의 가장 유명한 창작품은 뵐러가 시안산암모늄 (NH4OCN)을 합성하려다가 1828년 우연하게 합성한 요소 (H2NCONH2)이다. 즉 두 화합물의 탄소, 수소, 산소 (O), 질소 (N)는 똑같이 1 : 4 : 1 : 2의 비율로 들어 있다. 아래식은 이성질체화합물 시안산암모늄과 요소를 각각 나타내고 있다.
뵐러합성이란 시안산암모늄을 가열하여 요소를 합성한 것을 말한다. 그는 시안산 암모늄을 합성하기 위하여 시안산은(AgOCN)을 염화암모늄(NH4Cl)과 반응시켰는데, 반응식은 아래와 같다.
Ag(OCN) + NH4Cl(aq) → AgCl(s) + NH4OCN(aq)
이 반응은 흰색의 결정을 만들었지만 시안산암모늄의 성질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음에는 시안산납 [Pb(OCN)2]과 수산화암모늄 (NH4OH)을 반응시켜 시안산암모늄을 합성한다. 이 생성물은 같은 흰색분말을 만들었으나 오염물질이 적어서 분석할 수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 흰색 분말은 사람이나 동물에서 배출된 오줌에서 추출한 요소 (Urea)의 조성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었다.
Pb(OCN)2 + 2 NH3 + 2H2O → Pb(OH)2 + 2NH4OCN
NH4OCN → H2NCONH2
아래 그림은 어떻게 인체속에서 요소가 생성되어 체외로 배출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섭취한 단백질이 분해되면 독성을 가진 암모니아가 생성되는데, 이를 간에서 요소회로 (urea cycle), 또는 오르니틴회로 (ornithine cycle)을 통해 암모니아를 요소로 전환시킨다. 생성된 요소는 배설기관인 콩팥으로 보내져 소변으로 배출된다.
실험실에서 자연을 모방한 업적은 엄청 흥분되는 경험이어서 뵐러는 베르셀리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사람이나 개의 콩팥 없이도 내가 요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야 겠어요. 시안산의 암모늄염이 요소입니다. ㅡ I must tell you that I can make urea without needing a kidney, whether of man or dog; the ammonium salt of cyanic acid is urea.”
바로 이 발견이 근대 유기화학의 출발점이라고 여겨진다. 뵐러가 시안산암모늄으로부터 요소를 합성하기 전에는 화학은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으로 깊이 나누어져 있었다. 식물이나 동물의 원천으로부터 유도된 유기화합물은 덜 안정적이며, 더 쉽게 분해되는 경향이 있으며 조성을 원소분석에 의해서 확인하기가 좀 더 어렵다.
즉, 무기화합물은 화학의 법칙을 따르며 쉽게 분석하고 합성할 수 있는 반면 유기화합물은 실험실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생기 (生氣, vital force)에 의해서 단지 식물이나 동물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뵐러가 요소를 무기물 출처로부터 합성한 것은 무기화학과 유기화학사이에 있었던 인위적 장벽을 없애고 화학자들이 유기화합물이나 무기화합물이 똑같은 법칙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 결과 뵐러의 합성이 효율적으로 화학을 통일하였으며 생기론 (vitalism)의 개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어 쓰레기통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뵐러는 28살에 화학의 영역에 혁명을 가져왔다.
화학과 인간열역학에 관심이 많았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뵐러의 요소 합성실험이 성공을 거둔 뒤 화학을 이전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시안산나트륨을 가열하여―오줌을 만들 수 있다면 머지않아 실험실에서 인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파우스트’ 에서는 실제로 실험실에서 탄생한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 (Homunclus)가 등장한다. 괴테는 합성인간 호문쿨루스를 플라스크 안의 인위적 공간에서만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 라디칼 (Radical) 연구
공동연구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로 뵐러와 리비히는 유기화합물에서 어떤 안정한 원자의 그룹들이 한 화합물에서 다른 화합물로 변할 때에도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원자단을 라디칼이라 불렀다. 첫 번째로 그들이 확인한 원자단은 1832년 고편도유(苦扁桃油)와 그들의 유도체를 연구하는 동안에 발견한 “benzoyl radical (C6H5CO)” 이다. 이 라디칼 이론은 유기화합물의 체계적인 구조연구에 기초를 세웠다.
뵐러는 베릴륨, 규소, 질화규소의 공동 발견자이며 1872년 런던왕립학회 코풀리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논문을 출판하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쳤으며 1882년 82세의 나이에 영면하였다.
○ 저서
주요저서로는 《무기화학의 기초》 (1831), 《유기화학의 기초》 (1840) 등이 있다.
– Further works from Wöhler
Lehrbuch der Chemie, Dresden, 1825, 4 vols
Grundriss der Anorganischen Chemie, Berlin, 1830
Grundriss der Chemie, Berlin, 1837–1858 Vol.1&2 Digital edition by the University and State Library Düsseldorf
Grundriss der Organischen Chemie, Berlin, 1840
Praktische Übungen in der Chemischen Analyse, Berlin, 1854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