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9월 9일, 게르만족 동맹군을 이끈 아르미니우스가 로마군단과 토이토부르크숲 전투서 대승
토이토부르크숲 전투 (독: Schlacht im Teutoburger Wald, 오늘날의 니더작센 오스나브뤼크) 또는 바루스 참사 (라: Clades Variana)는 기원후 9년 9월 9일, 아르미니우스가 통합한 게르만족 연맹과 푸블리우스 큉크틸리우스 바루스 총독이 지휘한 로마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게르만족이 3개 로마 군단 (17, 18, 19군단)과 그 보조군들을 물리치면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아르미니우스는 게르만족 출신으로 바루스의 보조군에 입대했던 장교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을 얻고 로마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때문에 로마군의 전술을 꿰뚫어보고 그들을 기만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이후 로마는 여러 차례 게르만족에 대한 징벌원정을 벌였지만 이후 멸망할 때까지 라인 강 동안의 게르마니아를 영영 지배하지 못한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는 게르마니아의 로마 편입을 막음으로써 고대 게르만족과 로마 제국 양자의 역사에 거대한 파급 효과를 미쳤다. 로마 당대의 역사가들과 근현대의 사학자들은 모두 토이토부르크에서 아르미니우스가 거둔 승리가 로마 사상 가장 거대한 패배로, 군사사상 가장 결정적인 전투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큰 그림을 결정한 변곡점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 토이토부르크숲 전투
.날짜: 9년 9월 9일
.장소: 토이토부르크숲 (오늘날의 니더작센 오스나브뤼크)
.결과: 게르만의 결정적 승리, 게르마니아에 대한 로마 제국의 야욕 좌절
대패 소식을 들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충격을 받아 벽에 머리를 찧으면서 “퀸틸리우스 바루스, 내 군단들을 돌려내라!” (라: Quintili Vare, legiones redde)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이는 수에토니우스의 ‘십이황제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로마 군단 단대호에서 17과 19는 영구결번이 되었다. 제18군단은 네로 때 재소집되었지만 베스파시아누스 때 결국 해산되었다. 다른 전쟁들에서 참패를 겪은 군단들이 재건된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였다. 이렇게 제명 처리가 된 또다른 군단으로는 데이오타루스 제22군단이 있다. 제22군단은 기원후 132년-136년 유대 속주에서 일어난 바르 코크바의 난 때 대패를 당한 뒤 폐지되었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는 40여년 전 내전기 이후 서유럽에서 연전연승 팽창을 거듭하던 로마의 정복전쟁 시대를 느닷없이 종결시켰다.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입적된 티베리우스가 전쟁을 대비했고, 아우구스투스 제2군단, 승리의 발레리아 제20군단, 쌍둥이 제13군단이 라인 강 서안으로 보내져 소멸된 17-19군단의 빈자리를 메웠다.
아르미니우스는 바루스의 머리를 잘라 심하게 훼손시킨 뒤 로마에게 마르코만니 왕으로 인정받은 마로보두스에게 보내면서 반로마 동맹을 제안했다. 마로보두스는 아르미니우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바루스의 머리를 로마로 보내 장례를 치르게 했다. 이후 마로보두스는 로마와 아르미니우스가 싸우는 동안 중립을 지키며 관망했다. 로마가 물러간 이후 기원후 17년부터 아르미니우스와 마로보두스가 맞붙어 싸웠다. 패배한 마로보두스는 기원후 19년 이탈리아로 도망갔다가 로마에 의해 연금에 처해졌다. 아르미니우스도 기원후 21년 암살당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