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0년 11월 15일, ‘꿀벌의 우화’를 저술한 경제학자 버나드 맨더빌 (Bernard Mandevile, 1670~1733) 별세
버나드 맨더빌 (Bernard Mandeville; 1670 년 11월 15일 ~ 1733년 1월 21일)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경제학자리이다.
– 버나드 맨더빌 (Bernard Mandevile)
.출생: 1670년 11월 15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사망: 1733년 1월 21일 (62세), 영국
.시대: 18세기 철학
.지역: 네덜란드와 영국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와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글을 썼다. 1705년에 익명으로 냈던 풍자시 ‘투덜대는 벌집’을 바탕으로 하여 1714년 ‘꿀벌의 우화’를 책으로 냈는데, 1723년에 ‘자선과 자선학교’를 넣은 개정판이 나오면서 하루아침에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영국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 기독교 도덕은 금욕과 이타심을 미덕으로 삼았는데, 이를 위선이라 비판하며 사람의 이기적인 본성을 바로 보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악덕이라는 욕심이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며, 사치는 생산을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주어 잘살게 만든다고 한 맨더빌의 주장은 도덕가들을 격분시켰지만, 맨더빌은 미덕과 악덕을 가르는 오랜 기준을 무너뜨려 애덤 스미스와 칸트 등이 시장경제 시민사회 시대에 맞는 도덕을 새로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애덤 스미는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으로 맨더빌이 던진 물음에 답하였다.
맨더빌은 돈 벌 욕심을 아예 버리라는 낡은 도덕을 비판한 사람이다. 그런 맨더빌을 따라 돈 벌 욕심을 받아들이되, 나 돈 벌자고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는 짓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스미스의 도덕감정이고 그런 짓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칸트의 도덕원칙이다. 공정한 사회는 그 위에 세워진다.
버나드 맨더빌 (1670~1733)은 1700년대 초에 바로 “돈과 도덕” 문제를 들고 나와 영국과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이다. 욕심이나 사치를 악덕이라고들 하는데, 그는 바로 이 악덕 때문에 나라가 잘살게 되는 것이고, 진짜로 이 악덕을 다 없애고 미덕만을 갖게 된다면 가난해진다고 했다. 또한 미덕이라고 하는 것이 죄다 이기심에 허울을 씌운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은 악당들로 가득하기 마련인데, 그들 모두가 세상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나름대로 하는 것이니 악당을 나무라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부제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private vices, publick benefits)”은 그의 생각을 한마디로 잘 나타내주는 구절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그때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오해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책이 나오자 비판자들은 맨더빌이 드러내놓고 악덕을 부추긴다고 분개하였으며, ‘꿀벌의 우화’는 사회를 어지럽힌 혐의로 고발되기까지 했다. 맨더빌 (Mandeville)을 인간 악마 (Man-Devil)로 바꿔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금욕과 절제에 바탕을 둔 중세 기독교 철학이 아직 지배하던 그 무렵, 돈 욕심과 같은 개인의 악덕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나쁠 것이므로 악덕을 억눌러야 한다고 다들 생각하였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동양과 서양이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유교와 불교, 기독교는 하나같이 돈 욕심을 탓해왔으며, 고귀한 귀족에 비해 장사꾼은 늘 천하게 대했다. 이 생각이 바뀌던 길목에 맨더빌이 서 있다.
그가 남긴 파문은 매우 컸다. 1700년대 내내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맨더빌은 (좋게 또는 나쁘게) 아주 유명해졌으며, 혼자 그랬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조금 부풀린다면 그 뒤 근대 경제학을 탄생시켰고 철학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맨더빌과 그 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악덕 (vice)이란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범죄 (crime)와는 다른 도덕적 차원에서의 죄악 (sin)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종교적인 불신앙도 악덕에 들어가지만, 이는 맨더빌이 거의 다루지 않았다. 맨더빌이 주로 문제 삼은 것은 방탕, 사치, 명예욕, 뽐내는 마음 (pride), 이기심, 탐욕, 쾌락과 같은 악덕이었으며, 그 무렵 사람들이 미덕 (virtue)으로 꼽으며 칭송했던 것은 금욕 (self-denial), 겸손, 연민, 자선, 자기희생, 공공심과 같은 것들이었다.
맨더빌은 그저 악덕에도 좋은 점이 있다거나 또는 그 좋은 점이 나쁜 점보다 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사람들이 도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다음 두 가지 생각이었다. 첫째는 욕심을 나쁜 것으로 쳐서 금욕하는 것이 미덕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에 따라야 미덕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맨더빌은 이 두 가지 기본 전제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끝끝내 고집했다. 그러고 나서 이러한 조건에 맞는 미덕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맨더빌의 이러한 ‘엄격주의’ 방식은 뒷날 칸트 철학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정말로 글자 그대로 미덕만 남게 된다면 세상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비판자들의 말과는 달리 그는 한 번도 악덕 그 자체를 드러내 추켜세운 적이 없다. 그 대신 악덕의 효용을 보여주며 이제 악덕을 어찌 생각해야 할 것인지 물음을 던진 것이다.
정신병을 주로 연구한 의사였던 맨더빌에게 사람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었으며, 이기심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때문에 전통적인 도덕론을 따른다면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악덕”에 바탕을 두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풍자시 ‘벌집’을 비롯한 여러 글에서 그는 이 세상에, 겉으로는 고귀하고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에서조차도, 악덕이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을 누구 못지않게 따끔하게 보여주었는데, 얼핏 봐서는 악덕을 나무란 듯싶다. 그러나 그는 그 악덕들을 (추켜세운 것은 아니더라도) 나무랄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그토록 악덕이 가득 찬 세상이 멀쩡하게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는 악덕이 있더라도 세상이 잘산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로 그 악덕 때문에 잘산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악덕을 없애려고 하는 도덕 운동은 세상을 나쁘게 만들 바보짓이었다.
맨더빌은 가난한 자들을 교육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였는데, 그 결과가 그들을 더욱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만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또한 부자들이 사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 사치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소비를 통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기여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그의 의견은 프랜시스 허치슨의 반박을 받았지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그가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의 경제철학은 미덕이나 악덕 같은 개념은 경제 활성화에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 ‘꿀벌의 우화’ 중에서
그러니 불평을 말아라. 바보들은 오로지 위대한 벌집을 정직하게 만든다고 애를 쓴다만 세상의 편리함을 누리며 전쟁에서 이름 떨치면서도 넉넉하게 사는 것이 커다란 악덕 없이도 된다는 것은 머릿속에나 들어 있는 헛된 꿈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 벌집 : 409~414.
[포도덩굴이] 우리를 고귀한 열매로 축복해주는 것은 바로 덩굴이 묶이고 잘리고 나서이다. 악덕이 이롭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정의로 베어내고 동여맬 때이다. — 벌집 : 423~426.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시샘과 헛바람은 산업의 역군이니 그들이 즐기는 멍청한 짓거리인 먹고 쓰고 입는 것에 부리는 변덕은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지만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바로 그 바퀴였다. –‘ 벌집 : 181~188. (옮긴이 고려대 경제학과 최윤재 교수의 ‘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중에서)
맨더빌이 문제를 냈고, 이로써 흄은 경제를 공부하다가 철학자가 되었으며, 스미스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경제학자가 되었다. _ 사이몬 패튼 Simon Patten (경제학자,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
– 평가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꼼꼼히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꿀벌의 우화’ 2권에서 루소 체계가 나왔음을 알아챌 것이다. _ 애덤 스미스 (경제학자)
내가 맨더빌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 명작에서 나오는 생각이 진화와 자발적인 질서 형성이라는 쌍둥이 같은 생각을 현대 사상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 맨더빌에서 비롯된 전통에는 [보수주의의 시조] 에드먼드 버크와, 주로 버크를 통해서, 그 모든 역사학파들이 들어 있다. 주로 대륙에 있던 그 역사학파들은 다윈에 훨씬 앞서 진화에 대한 생각을 19세기 사회과학에 널리 퍼트렸다. ‘다윈에 앞선 다윈주의자’들은 더 나은 습관과 관례가 살아남는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오면서 사회를 진화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는데, 바로 이 분위기 속에서 찰스 다윈이 마침내 이 생각을 생명체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_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오스트리아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맨더빌은 알뜰히 저축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경제는 아무도 돈을 쓰지 않으면 아무도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오래 번성할 수 없다는 점을 쉽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절약을 칭찬하고 빚지는 것을 나무라지만 살아 움직이는 경제에서 이것 없이는 저것도 가질 수 없다. 지난 몇 해 동안 세계 경제는 점점 맨더빌의 벌질을 닮아가고 있었다. _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 (인도 중앙은행 총재)
시장 진화사상 개척자 버나드 맨더빌, ‘자유주의 경제학 창시자’ 애덤 스미스 _ 민경국 교수와 함께하는 경제사상사 여행 (한국경제)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