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 열린책들 / 2009.12.15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학의 기초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마지막 글이 실린 『인간과 상징』이다. 이 책은 자신의 연구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 의해 이해되기를 바랐던 카를 융의 소망이 실현된 역작으로 인간의 영혼에는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없는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사고의 바탕이 되는 원시적 감성, 공포,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인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융은 이 책에서 그 무의식의 세계를 검증한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과 상징』의 1부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융 자신이 집필한 부분으로 일종의 입문서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무의식의 세계와 원형과 상징, 그리고 꿈의 세계를 소개한다. 2부 고대 신화와 현대인은 조지프 헨더슨 박사의 글로 고대의 신화, 전설, 원시적인 제의에 원형적인 양식이 있음을 예시한다. 3부 개성화 과정에서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박사는 한 개인 안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를 인지하고 존중하고 적응해 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은 회화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에 대하여 인간이 되풀이해서 느껴온 것을 아닐라 야페 박사가 설명한다. 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을 쓴 욜란데 야코비 박사는 흥미롭고 성공적이었던 사례사의 분석을 통해 꿈의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 목차
머리말-존 프리먼
제1부 무의식에 대한 접근-카를 구스타프 융
꿈의 중요성
무의식에서의 과거와 미래
꿈의 기능
꿈의 분석
유형의 문제
꿈 상징에 나타나는 원형
인간의 영혼
상징의 역할
분열의 치유
제2부 고대 신화와 현대인-조지프 헨더슨
영원한 상징
영웅과 영웅의 창조자
입문 의례의 원형
미녀와 야수
오르페우스와 사람의 아들
초월의 상징
제3부 개성화 과정-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마음의 성장 패턴
무의식과의 첫 만남
그림자의 자각
아니마: 마음속의 여성
아니무스: 마음속의 남성
자기: 마음의 정체성
「자기」와의 관계
「자기」의 사회적 측면
제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아닐라 야페
신성한 상징-돌과 동물
원의 상징
상징으로서의 현대회화
사물의 내밀한 혼
현실로부터의 후퇴
대극의 합일
제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율란데 야코비
분석의 시작
첫 번째 꿈
무의식에 대한 공포
성자와 창부
분석의 진행 과정
신탁몽
불합리한 요소와의 만남
마지막 꿈
결론-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과학과 무의식
원주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 ~ 1961)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년 7월 26일 – 1961년 6월 6일)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 바젤 대학교와 취리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의 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의 연구를 응용해 심리학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이전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 검사를 응용하면서 자극어에 대한 단어연상을 연구하였다. 이 연상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학계에서 자주 금기시 되고는 하였다. 그는 특정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에 관련된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 연구를 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의 성욕중심설말고도 알프레트 아들러의 사회심리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13년을 전후해서 독자적으로 이들의 양립에관한 연구로 분석심리학설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의식과 무의식의 층들이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한걸음 더나아가 특히 개체로 하여금 내면의 무의식들이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초월적 기능 (transcendental function)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심리치료법을 개발하여 이론화하였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개체화’ (individuation)라고 하는 자신의 신화를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좀더 유연하고 온전한 인격체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1914년 사임하기까지 국제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한바있으며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ETH Zürich)의 심리학 교수, 바젤 대학교의 의학심리학 교수로 재직하였었고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 분야의 확장에 힘쓰다가 서로 견해가 맞지 않아 결별하고 분석 심리학을 개척했다.
저서로는 ‘원형과 무의식’, ‘아이온’, ‘융합의 신비’, ‘무의식의 심리학’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 1916), ‘분석심리학에대한 두편의 에세이’ (Two Essays on Analytical Psychology), ‘칼 융의 작품집’, ‘분석심리학 논문집’, ‘기억, 꿈, 반사상(反射像)’ (Memories, Dreams, Reflections,1962) 등이 있다.

볼륨 I(Volume 1) – 심리학 연구(Psychiatric Studies 1970) ,
볼륨 II(Volume 2) – 실험 연구(Experimental Researches 1973) ,
볼륨 III(Volume 3) – 정신질환의 심인적증상발생(Psychogenesis of Mental Disease 1960) ,
볼륨 IV(Volume 4) – 프로이트와 정신분석(Freud & Psychoanalysis 1961) ,
볼륨 V(Volume 5) – 변형의 상징(Symbols of Transformation 1967) – 무의식의 심리학 수정증보판(a revision of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1912) ,
볼륨 VI(Volume 6) – 심리 유형(Psychological Types 1971) ,
볼륨 VII(Volume 7) – 분석심리학에 대한 두 편의 에세이(Two Essays on Analytical Psychology 1967) ,
볼륨 VIII(Volume 8) – 정신의 역동성과 구조(Structure & Dynamics of the Psyche 1969),
볼륨 IX(Volume 9) (Part 1) – 원형 그리고 집단무의식(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1969) ,
볼륨 IX(Volume 9) (Part 2) –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1969) ,
볼륨 X(Volume 10) – (Civilization in Transition 1970) ,
볼륨 XI(Volume 11) – (Psychology and Religion: West and East 1970) ,
볼륨 XII(Volume 12) – (Psychology and Alchemy 1968) ,
볼륨 XIII(Volume 13) – (Alchemical Studies 1968) ,
볼륨 XIV(Volume 14) – (Mysterium Coniunctionis 1970) ,
볼륨 XV(Volume 15) – (Spirit in Man, Art, and Literature 1966) ,
볼륨 XVI(Volume 16) – (Practice of Psychotherapy 1966) ,
볼륨 XVII(Volume 17) – (Development of Personality 1954) ,
볼륨 XVIII(Volume 18) – (The Symbolic Life 1977) ,
볼륨 XIX(Volume 19) – (General Bibliography (Revised Edition) 1990) ,
볼륨 XX(Volume 20) – (General Index 1979)

– 역자 : 이윤기 (Lee Yoon-ki, 李潤基)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 출판사 서평
•새롭게 태어난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마지막 저서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학의 기초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마지막 글이 실린 『인간과 상징』이 새롭게 편집되어 출간되었다. 1996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독자들이 꾸준히 늘었고, 융의 유작이라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 현대적인 편집 디자인으로 책의 형태를 고급스럽게 바꾸고 원서 대조를 다시 실시하는 한편, 번역 문장을 좀 더 정확하고 매끄럽게 손보았다.
『인간과 상징』은 자신의 연구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 의해 이해되기를 바랐던 카를 융의 소망이 실현된 역작이다. 인간의 영혼에는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없는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사고의 바탕이 되는 원시적 감성, 공포,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인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융은 이 책에서 그 무의식의 세계를 검증한다.
무의식 세계의 언어가 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이라고 믿었던 융은, 그 상징을 통해서 우리의 꿈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적 자아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현실의 길라잡이가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반복, 각인된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이 어떤 기본적인 인간 상황을 나타나는 원형의 이미지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이미지를 통한 자기 이해로부터 온전하고 생산적인 삶이 도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융 자신이 집필한 부분으로 일종의 입문서적인 성격이다. 무의식의 세계와 원형과 상징, 그리고 꿈의 세계를 소개한다. 2부 고대 신화와 현대인은 조지프 헨더슨 박사의 글로 고대의 신화, 전설, 원시적인 제의에 원형적인 양식이 있음을 예시한다.
3부 개성화 과정에서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박사는 한 개인 안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를 인지하고 존중하고 적응해 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은 회화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에 대하여 인간이 되풀이해서 느껴온 것을 아닐라 야페 박사가 설명한다. 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을 쓴 욜란데 야코비 박사는 흥미롭고 성공적이었던 사례사의 분석을 통해 꿈의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에 실린 5백여 컷 이상의 삽화들은 융의 사상에 대한 독특한 「설명서」 역할을 하면서 꿈의 본질과 그 기능, 현대 예술의 상징적 의미, 일상생활 경험의 심리학적 의미 등을 잘 보여 준다. 이윤기 씨가 옮긴 이 책은 1970년대부터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20여 년에 걸쳐 세 번 이상이나 번역과 수정을 거치는 과정을 겪었다.
카를 융은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꿈과 신화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가 문명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기록한 이야기라면, 꿈과 신화는 우리 마음의 표현이다. 융은 꿈과 신화의 주제들과 원형들이 시간과 문화를 초월한다고 보았다. 그런 주제들과 원형들은 문명이 인간의 무의식적 본능을 기리고 흐리기 한참 전에 바로 그 본능으로부터 생겨났으므로, 가장 깊은 수준에서의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뇌의 작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런 인간적 본능을 직접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본능이 어떻게 뇌에서 생리적으로 발생하는지를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우리는 무의식의 작동방식을 밝혀냄으로써 인간과 다른 종들의 연관관계를, 또한 인간만의 독특한 특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각하고 그러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를 계발하여 인생을 보다 충실하고 풍부하게 경영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융의 연구 목적이었다. 그는 삶을 마무리 짓는 순간에,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하는 일에 남아 있는 힘을 모두 쏟았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한 달에 삶을 끝마쳤다. 이 책은 후세에게 물려주는 그의 유산인 것이다.
<인간과 상징>에 대해 알아보면서 카를 융의 스승인 프로이트를 건너뛸 수는 없다. 우선 프로이트와 그 시대 배경에 대해 알아야 융이 <인간과 상징>에서 설명한 내용이 비로소 이해된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이론이 본인의 주관적 판단으로 작성된 거짓임이 밝혀지고 난 뒤, 현대에서 어떻게 수정 ‧ 발전되었는지도 매우 흥미로운 점이었다. 또한 20세기를 크게 변화시킨 세 명의 유대인 중 한 사람인 프로이트가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금치 못했다.
•무의식의 역사와 고찰(考察)
예부터 사람들은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공자는 ‘내 마음도 모른다’ 라고 말했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마찬가지 의미의 말을 남겼다. 마음은 분석과 입증이 되지 않으므로 신비한 부분으로 영원히 남았다.
기원전 1000년 소아시아의 ‘배양하는 사원’, 즉 영혼을 방면하는 의식이 치러지던 사원에서 ‘무의식과 비슷한’ 존재를 찾아냈다. 그리스의 영혼 관념에도 ‘알지 못하는 깊은 곳’이 있었으며, 파스칼, 홉스, 에드거 앨런 포의 세 사람은 자아에게 수수께끼의 측면, 감춰져 있으면서도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
무의식의 치료는 주로 종교에 의지했다. 하지만 종교는 마음을 억압했다. 즉, 정신을 강조하되 육체를 억압했던 것이다. 피조물(몸과 마음)의 주인은 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겼다. 금욕주의를 주창한 스토아학파는 육체를 혹독하게 다루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여겼고, 반대로 육체는 정신이 맑아지는 걸 막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억압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상태이고 억제는 의식적인 상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정신은 사유(思惟)하고 육체는 연장(延長)한다고 여겼다.
소설가들은 19세기를 ‘신경과민의 시대’라고 불렀다. 1858년 조지 비어드는 ‘신경쇠약’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1879년 분트가 세계 최초의 실험 심리학연구소를 라이프치히에 설립했다. 이때 처음으로 심리학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분트는 근대 심리학의 창설자로 불린다.
19세기는 과학의 시대이며 논리실증주의를 신봉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종교는 논증이 안 되기 때문에 형이상학은 그 전까지만 해도 연역적 명제의 최고봉이었으나 무의식과 인간심리에 관한한 무용지물이었다. 그 점에서는 물리학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철학과 과학조차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심리학이 해결사로 자처하고 나서게 된것이다.
19세기에는 또한 유아 성욕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전통적으로 의사들은 유아 성욕을 희귀하고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여겼지만, 이미 1846년에 도덕 신학자이자 의사였던 P.J.C 드브렌 신부는 유년기의 자위행위, 어린이들의 성적 놀이, 감상에 약한 유모와 하인이 유아를 유혹하는 경우가 상당히 빈번하다고 주장했다. 오를레앙의 주교 뒤팡루도 어린이들의 성적 놀이가 빈번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두 살 시기에 ‘나쁜 버릇’을 가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쥘 미슐레다. 그는 『우리의 아들들』(1869)에서 유아 성욕이 존재한다고 부모들에게 경고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말하는 것을 제기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적절하게도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고 말했다. “행위”는 결코 발명된 것이 아니라 행해진 것이다. 그에 비해 생각이라는 것은, 인류가 비교적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우선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의지를 ‘맹목적인 추동력’으로 규정했다. 인간은 내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는 비합리적 존재이며, “그 힘을 알지도 못하고 거의 의식하지도 못한다.” 우리가 지구 위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구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지배하는 비합리적 힘을 두 가지로 말한다. 보존하려는 본능과 성적 본능이다. 그는 두 가지 중 성적 본능이 훨씬 강하며, 어느 것도 그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쇼펜하우어는 성적 본능을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생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지성은 성적 충동에 예속되며, 이런 의미에서 의지는 ‘지성의 비밀스러운 적’이다라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훗날 억압이라고 불리게 되는 개념(그 자체가 무의식이다)도 제시했다. “의지는 거부하는 것이 지성의 지식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데, 바로 이 빈 틈을 통해 광기가 영혼 속으로 뚫고 들어온다.” “의식은 우리 정신의 표면에 불과하다. 우리가 우리 정신을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지표면에 살지만 그 밑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과 같다.”
폰 하르트만은 한 발 더 나아가 무의식에 세 층이 있다고 주장한다. (1) 절대적 무의식은 “우주의 내용을 이루며, 다른 형상들의 근원이 된다.” (2) 생리적 무의식은 인간의 진화적 발전에 속한다. (3) 심리적 무의식은 인간의 의식적 정신 활동을 지배한다. 폰 하르트만은 쇼펜하우어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많은 임상적 증거들을 수집했다. 예를 들어 그는 생각, 언어, 종교, 역사, 사회생활 등 프로이트가 탐구한 모든 분야를 망라해 논의했다.
무의식에 관한 프로이트의 생각들 중에는 니체가 예견한 것이 적지 않다. 니체는 무의식을 ‘교활하고 은밀하고 본능적인’ 존재, 트라우마의 상처를 받고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위장되지만 결국 병리학으로 이어지는 존재로 여겼다.
페히너는 헤르바르트의 사상을 이어받아 정신을 빙산에 비유했다. “빙산의 90퍼센트는 물 밑에 있다. 그래서 빙산이 움직이는 경로는 표면에 작용하는 바람만이 아니라 깊은 해류에 의해 결정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vs 카를 융
의식의 무의식적 측면을 제일 먼저 경험적으로 탐구한 선구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20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프로이트와 요제프 브로이어는 이미 신경증의 증상(히스테리, 모종의 통증, 비정상적인 행동)이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때,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기요법, 마사지, 수(水)치료법, 최면술을 시행했으나 마침내 그 치료법들을 다 버리고 ‘자유연상’을 개발했다. 이것은 환자가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도록 놔두는 기법이었다. 이 기법에 힘입어 그는 특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어릴 때의 일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잊은 것 같은 유년기의 경험이 나중의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여기서 무의식과 억압의 개념이 생겨났다. 또한 프로이트는 자유연상을 통해 어렵게 드러낸 과거의 기억이 대부분 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이트가 보기에 환자들이 허위로 이야기한 성적 트라우마와 일탈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남몰래 원하던 일을 말해주는 암호였다. 그래서 그는 유아가 아주 일찍부터 성적 자각을 경험한다고 단정했다. 유년기에 남자 아이는 어머니에게 이끌리고 자신이 아버지의 경쟁 상대라고 여기며(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여자 아이는 아버지를 상대로 비슷한 경험을 한다(엘렉트라 콤플렉스). 프로이트는 이 논리를 연장해 그 폭넓은 자극이 평생에 걸쳐 지속되면서 성격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유혹 이론은 프로이트주의의 가장 영향력이 큰 측면이자 20세기의 중요한 관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연장되었지만, 일상적 대화에서는 물론이고 의학이나 예술의 견지에서도 대단히 특이하고 왜곡된-솔직히 말하면 개연성이 적은-계보학이 되고 말았다. 이 이론의 기원은 모순이 너무 뻔히 드러나 보인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에게서 유년기의 성적 자각을 ‘발견’하지 못했다. 단지 그런 게 있었다고 직감했거나 ‘추측’했을 따름이다.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세심하고 수동적인 임상적 관찰로써 찾아낸 게 아니었다. 그는 미리 설정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종전의 수단으로 납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하자 증거를 꾸며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 이론에 회의를 품은 다른 학자는 당연히 그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이 점은 프로이트가 과학자라는 주장에 결정타를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신경학, 신경병리학, 마취학 분야에서 값진 기여를 했다. 일례로 그는 염화금(鹽化金)으로 신경조직을 물들이는 기법을 도입하여 연수(延髓, 숨뇌), 뇌간(腦幹, 뇌줄기), 소뇌(小腦)의 신경연결을 연구했다. 과학자들이 뇌 연결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연구에 쓸 도구를 개발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 뒤였으므로, 프로이트는 시대를 앞선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연구를 오래 하지는 않았고, 대신에 임상진료에 흥미를 품었다.
프로이트는 암에 걸려 수술을 14번이나 받았다. 초인적인 의지로 치료기간 동안에도 연구를 지속했고 항암제를 맞은 날에도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십 몇 년간 계속했다고 하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성격이 고약해 누구에게든 공격당하면 상대를 불문하고 ‘초전박살’을 냈다고 한다. 학회에서 쫓아내는 건 물론이고 영원히 그 분야 연구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 정도의 잔인한 성격을 지녔다. 위대한 사람들이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경우는 드문 듯하다. 칼 막스처럼.
그 영향으로 수제자인 융과도 결별을 고했다. 그러나 융은 그 덕분에 스승인 프로이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보편심리학의 창시자가 된다. 그리고 현대의 심리학은 융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프로이트는 꿈과 개인을 오이디푸스와 엘렉트라에 비유했다. 반면 융은 꿈과 집단의 개념으로 예지력을 표현했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잠재의식과 심층의식을 무의식으로 표현했다. 꿈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거나 딸이 엄마를 살해하는 것은 신화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다. 의식에서 통제되지 않는 성과 부모에 관한 패턴들이 임상실험을 통해 일정한 패턴이 나타났다. 욕망과 성을 상징적이며 최초로 표현한 사람이 프로이트다. 억압된 기제 속에서는 무의식을 통제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랐다. 이를테면 정신병자나 마녀로 지목돼 정신병원이나 화형에 처했기 때문에 함부로 나타낼 수가 없었다.
융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면 겉으로 드러난 상징(기호)만 보고 제멋대로 상상하는 오류를 일으키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꿈 자체에서 연상되는 생각과 이미지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과 이미지들 속에 무의식이 표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융은 무의식이라는 것이 단순한 과거지사의 창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심적 상황이나 앞으로 떠올리게 될 생각들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만나는 딜레마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로 아주 손쉽게 해결될 때가 종종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예술가, 철학자, 그리고 심지어는 과학자들까지, 무의식에서 솟아오른 영감을 통해 놀랄 만한 업적을 이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풍부한 소재의 광맥에 도달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철학, 문학, 음악 또는 과학의 형태로 번역하는 능력은, 소위 말하는 천재들의 대표적인 특질 중 하나다.
융의 무의식은 여러 가지 사상과 특히 예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가 바로 모더니즘이라고 알려진 관념이다.
•오류투성이 의식
법정에서 잘못된 목격자 증언은 잘못된 선고의 제일가는 원인이라고 한다. ‘결백 프로젝트’라는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유죄 선고 후 DNA 검사로 무죄 방면된 수백 명의 피고들 중 75퍼센트는 목격자의 부정확한 지목으로 감옥에 갇힌 경우였다.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기억의 작동을 이해하는 첫 단추는 뮌스터베르크가 깨달았던 바, 마음은 쉴 새 없이 무수한 데이터를 받기 때문에 그것들을 죄다 다루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1초에 약 1,100만 비트의 데이터가 쏟아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회상 대신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월하게 다루고 처리하는 능력을 얻었다.
“상처 입은 마음은 어떻게 고치나요?”라고 노래했던 비지스는 그 답이 타이레놀 두 알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과 독일인들은 흔히 근엄하고 가부장적인 특징으로 일컫는다. 이런 자들이 해외여행을 나가면 미성년 성범죄를 가장 많이 일으킨다는 통계가 있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억압하면 다른 곳에서 터지게 마련이다. 또한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다. 특히 명절 때 엽기적 살인이 벌어지면 그 내부의 기제는 어렸을 적 비교당하고 억압당한 심리적인 원인이 분출된 탓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예고된 사고였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최고학년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했던 조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스스로 평가해보라고 했을 때, 100퍼센트(모두)가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했고, 60퍼센트가 상위 10퍼센트로 평가했고, 25퍼센트가 상위 1퍼센트로 여겼다. 이런 과대망상은 학계와 기업계에서도 법칙이나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자신의 회사가 동종업계의 다른 전형적인 회사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회사이니까.
진화는 인간이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뇌를 설계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존을 돕도록 설계했을 뿐이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관찰한 뒤,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그것을 이해한다.

•아니마 vs 아니무스
생리학자들이 내분비선의 얼개를 바탕으로 모든 인간에게는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가 두루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훨씬 이전인 중세 시대에 이미, “모든 남성은 그 자신 안에 한 여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아니마”(영혼 혹은 생명력)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남성이 지닌 여성적 측면이다. 그 반대는 “아니무스”이다. 이 여성적인 측면은 본질적으로 주변과의 관계, 특히 여성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열등한 기능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여성적 측면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타인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은폐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바꾸어 말하며, 모든 사람은 눈에 보이는 인격은 매우 정상적일지라도 그 내부에 “내적인 여성”이라는 처참한 상황이 도사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바로 이 처참한 상황을 타인(혹은 자기 자신)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무의식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가?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충실하고 풍요로운 삶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각자의 마음에 숨어있는 의식 아래의 세계의 영향력을 이해해야 한다.
심리학자 조너선 화이트는 진실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라고 말했다. 과학자의 길과 변호사의 길이다. 과학자는 증거를 모으고, 규칙성을 찾고, 관찰을 설명하는 이론을 구축하고, 그것을 시험한다. 변호사는 거꾸로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고 싶은 결론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아보고, 지지하지 않는 증거는 깎아내리려고 한다. 가끔은 객관적 진실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가끔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열렬히 변호하는 사람이 된다. 두 접근법은 늘 겨루면서 우리의 세계관을 만든다.
오늘날에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 등이 등장함으로써 과학자들은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뇌과학은 실험심리학, 인지과학 등과 더불어 의식과 무의식의 구체적인 작동 메커니즘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르네상스를 맞은 오늘날의 무의식이 바로 ‘새로운 무의식’이다.
인간의 몸속을 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 사람은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CT, X-ray 등등. 그런 기계장치로 언어중추인 왼쪽 관자놀이 부근을 다치면 말을 못한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다. 두뇌를 fMRI로 촬영해보면 두뇌전체가 잔물결을 친다. 즉 두뇌 전체가 상호 작용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식, 기억, 주의, 학습, 판단 등은 의식적 자각의 바깥에 존재하는 뇌(무의식)에게 위임한다.
또 정보가 흡수하기 어려운 형태로 제공되면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음악과 향기 등이다. 의식을 가지고 판단할 때는 가격과 브랜드가 가치판단에 주요 기준이지만, 무의식일 때는 맛과 향기 등 본능에 의거한 판단을 따른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무의식은 영상처리에 정말로 능하다. 위아래가 뒤집혀 보이는 안경을 쓰면, 잠시 뒤에는 곧 사물이 제대로 보일 정도이다. 그러다가 안경을 벗으면 다시 세상이 위아래가 뒤집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곧 정상으로 돌아간다. 시각은 늘 이런 처리과정을 겪으므로, “의자를 본다”라는 말은 사실 엄밀하게 표현하면 뇌가 의자에 대한 심적 모형을 창조했다는 뜻이다. 무의식은 감각 데이터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강화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물리학 혁명은 원자(原子)뿐만 아니라 광자(光子), 전자(電子)와 같은 갓 발견된 아원자(亞元子) 입자들의 기이한 행동까지 드러내어 보여주는 신기술 덕분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과학자들이 인류 역사에서 줄곧 우리 시야를 벗어났던 정신의 더욱 깊은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신경과학의 신기술 덕분이다.
•무의식이 현대에 주는 교훈
현대는 진화심리학, 행동심리학, 인지심리학 등 많은 분야에서 심리학이 발전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 가 있는데, 우선 마케팅 분야 중 광고기획에서 심리학이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대학생들에게 연애를 위한 필독서로 한때 각광 받았다는 것은 심리학의 전 방위적인 보급을 잘 보여주는 증거다. 다음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삶이 나아짐에 따라 인간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세 번째는 관계성이다. ‘첫인상은 간을 보는 것이다’는 말처럼 태도와 어투에 따라 서열을 구분 짓는다. 게젤샤프트는 관계망이 깨지기 쉽다는 불안감을 상징한다. 이문열의 <익명의 섬>에 관계에 관한 내용이 잘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자기계발이다. 차별화,혈액형, 힐링, 평화 등에 관해 현대인은 관심이 많다.
우리 삶에서 위기라고 하는 결과는 기나긴 무의식적 역사를 지닌다. 즉 우리는 위험이 쌓여 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그리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이를 깨닫지 못해도 무의식이 깨닫는 수가 있다. 무의식은 그러니까 꿈을 통해 그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영혼의 주인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기의 기분이나 정서를 제어할 수 없는 한, 무의식적인 요인이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계획이나 결정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은 자기 영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상상력과 직관력도 상징 이해에서는 필수적이다. 사람들은, 상상력과 직관력은 시인과 예술가들에게나 필요한 것, 따라서 <실제적>인 문제를 다룰 때는 믿지 말아야 할 것인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고도로 정밀해야 하는 과학에서도 이 상상력과 직관력은 빠져서는 안 된다. 응용과학 가운데서 가장 엄밀한 물리학조차 무의식을 통해 작용하는 이 직관에 놀라울 정도로 의지하고 있다(이후에 논리적 과정이 직관과 동일한 결과를 유도할 수 있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최근 미국도서관에서는 개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치유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책을 인형 등에게 낭독해주면 효과가 좋다는 실험 자료도 있다. 심리학은 억압된 자아를 해방시켜 주므로 모르면 두렵고 알면 위안이 된다. 행동심리학의 일원인 스키너는 한국교육학을 망친 주범으로 손꼽힌다. 인간을 개조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리학 최고의 선물은 죄라고 여겼던 점들을 털어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마스터베이션’은 죄였지만 지금은 자연스런 생리현상으로 바라보게 됐다. 억압할수록 범죄가 흉악해진다. 미성년 성범죄[로리타리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적 고통과 물리적 통증의 연관성은 우리의 정서와 몸의 생리적 과정들 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어째서 뇌의 능력과 사회관계망 속 구성원의 수가 관계가 있을까? 친구, 친척, 동료로 구성된 사람의 사회적 동아리를 생각해보자. 그런 동아리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우리의 인지 능력을 넘어설 만큼 규모가 커서는 안 된다. 그러면 누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끼리 관계는 어떤지,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 호의를 청할 만한 상대가 누구인지 등을 모두 기억할 수 없을 테니까.
진부한 말이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야 말로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인 듯하다. 또한 크든 작든, 모든 성취는 자신에 대한 믿음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 더구나 최고의 성취는 그냥 낙관적인 것을 넘어서 비합리적일 만큼 낙관적인 시각에 의존할 때가 많다. 심리학 문헌에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착각”이-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이득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가 수두룩하다.
우리의 의식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기 보다는 ‘착각(무의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고통과 번뇌를 극복하고 안정과 번영을 기약하길 바란다.

○ 독자의 평
•카를 구스타프 융은 분석심리학자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지그문드 프로이트와 무의식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준 의사이지 심리학자입니다. 프로이트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니체, 마르크스와 함께 3대 혁신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융은 프로이트에 비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융의 철저한 성격 때문이지 않나 생각되어집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꿈의 해석>을 읽어 보았지만 융의 <인간과 상징>은 일반인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는데에도 방대한 양의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은 느낌은 프로이트보다 보다 철저한 검정과 자료와 논리를 바탕으로 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융과 프로이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이 존재성과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뜻을 같이 합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근간을 성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것에 융은 뜻을 같이할 수 없었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융은 ‘원형’이라는 원시적인 인간의 본성을 무의식을 설명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원시적 인간에서 부터 현재의 인간의 모습은 의식 속에서는 알 수 없으나 무의식 속에서 원시적부터의 상징들을 유전적으로 담고 있는 상태를 지니고 있고 이는 ‘집단 무의식’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간단히 융과 프로이트의 차이를 설명드렸습니다.
(제가 깊이 있게 알지 못하니 틀리게 해석하더라도 이해해주시고 리뷰를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읽어봐야할 책입니다.)
융과 프로이트는 모두 무의식을 설명하는데에 있어서 ‘꿈’의 해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꿈의 해석으로 심리치료에 사용하는 것은 융과 프로이트 모두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꿈을 ‘소망충족’의 한 형태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융은 ‘개성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분열증, 신경증은 무의식속에 불안이 자극받으면 표출되는 것이며 전의식이 억압과 검열등을 통해 제어해야한다고 설명합니다. 융은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 과정을 통한 무의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이는 인간을 보다 성숙한 단계로 만들 수 있는 ‘개성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프로이트의 논리도 융의 논리도 나름 모두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너무 심하게 비약되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린아이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고 융의 원형과 상징의 투사에 대한 개성화 과정도 매우 근거있고 논리적입니다.
융의 대표적인 핵심어들은 원형, 상징, 집단 무의식, 개성화 과정, 그림자, 페르조나, 아니마, 아니무스입니다. 아마도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 ‘페르조나’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설명하는 부분은 ‘원형’,’상징’입니다. 그림자와 페르조나에 관한 부분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다른 융의 저서를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없고 간략하게 언급됩니다.
‘원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매우 신비롭고 어떻게 보면 비이성적인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근본성에 아주 먼 원시성의 본능까지 유전적으로 이미 태어날 때 부터 자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놀람움을 가지게 됩니다. 흔히 원시성과 본능을 거론할 때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성이지만 이성적인 인간은 이를 부정하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악의 본성’으로 치부하고 인간은 선한 본성을 가진 가장 고귀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융은 ‘꿈의 해석’을 통해 무의식속에 이미 잠재되어 있는 ‘원형’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융은 한 어린 소녀의 꿈을 통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소녀의 꿈 속에 나타난 상황들은 그 소녀가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신비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말 원시적이고 본능적이며 자연적인 것들로 혼재되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이런 원형들이 꿈을 통해 나타나는 것들의 ‘상징’은 무의식이 의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나름의 전달 방법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좀 더 빠르실 겁니다. ‘상징’은 무의식이 하고 싶은 말을 투사하는 대상입니다.
아니마(남성속의 여성), 아니무스(마음속의 남성) 또한 상징을 통해 남성속의 여성을, 여성속의 남성을 투사합니다. 각각은 네가지 발전 단계가 있습니다. 아니마는 첫째, 본능적 성적 수준의 에로스(괴테의 파우스트의 그렌트헨), 둘째, 낭만 적인 사랑의 수준(헬레나), 셋째, 천상적인 종교적 사랑의 수준(마리아), 넷째, 영원한 여성상으로 지혜의 여신(소피아)의 순이다. 한편, 아니무스는 첫째, 육체적인 힘을 가진 남성상(타잔), 둘째, 낭만적인 행동가(헤밍웨이), 셋째, 말씀의 사자(정치웅변가 로이드 조지), 넷째, 영적 진리로 이끄는 지혜로운 안내자(간디)의 순입니다.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마음속의 남성과 마음속의 여성을 어떤 상징으로 투사하고 있는지. 나의 내적 인격과 과정의 발달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융은 이런 개성화 과정, 인격화 과정의 어느정도 시기가 있음을 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발달의 단계를 입문의식을 통해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음을 인정해야함며 이럴 경우 인간은 고뇌와 고통과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심한 경우에 정신질환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이중성이란 박쥐같은 인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선한 인간의 모습만이 인간의 진성성을 담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며, 그외의 원시적인 본능을 담고 있는 인간의 내면성, 무의식속에 원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징성들을 ‘악’으로 말하면서 그런 인간의 뿌리깊게 알게 모르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들을 내가 아닌것처럼 검열하고 억압하고 부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인간의 개성화 성숙화 과정일까라는 생각입니다. 융은 이런 원형의 상징성들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의식과 의식의 분리가 아닌 무의식을 끄집어 내고 인정하고 받아들여 나의 근본적인 본질을 알고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려고 하고 저도 그런 부분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간과 상징>을 계속 읽어가면서 ‘중용’을 자꾸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음과 양, 양극단에 있는 무의식과 의식, 하지만 악과 선의 개념이 아닌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며 잘 조화를 이루어 통합할 때 진정한 자연속의 인간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봅니다.
무의식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원형’을 페르조나라는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은 언제 나의 진짜 모습이 남들에게 보여질지 불안해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내 의식이 진정으로 합체되려고 하는 무의식은 무엇인지를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조화를 이룬다면 더이상 페르조나를 쓰고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갈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융의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융 학파의 책 가운데 단 한 권만을 읽는다면 바로 이 책『인간과 상징』(열린책들, 2009)을 읽어야 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융과 융 학파 1세대 제자가 한데 모여서 심층심리학의 이론과 연구대상을 대중들에게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칼 구스타프 융의 ‘무의식에 대한 접근’, 조지프 헨더슨의 ‘고대 신화와 현대인’,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의 ‘개성화 과정’, 아닐라 야페의 ‘시각예술에 나타난 상징성’, 율란데 야코비의 ‘개인분석에 나타난 상징’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무의식 원형의 보물 창고는 신화와 민담 그리고 꿈이다. 심층심리학자들에게 신화와 민담은 집단무의식의 원형상들을 담고 있는 문화의 그릇이다. 신화의 분석심리학적 탐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원초적인 신화소에 귀착된다. 민담은 집단과 무의식적 정신 과정의 가장 순수하고 단순한 표현이다. 민담은 가장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로 원형을 표현하기 때문에 무의식의 과학적 연구를 위한 주요 재료가 된다. 오스트리아 가톨릭 신자인 폰 프란츠는 모든 민담이 참나 원형과 개성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보았다. 민담은 특정한 상징적 핵심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다양한 준거를 가진 신화와 구별된다.
헨더슨은 고대의 신화, 전설,원시 의식에 나타난 여러 원형적 유형들을 묘사하고 있다. 폰 프란츠는 한 개인 안에 있는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알고 존중하며 적응하기를 배워가는 과정을 서술한다. 개성화 과정이 완성될 때 인간은 비로소 전체가 되고 통합되고 평온해지며 풍부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야페는 의식의 구성물인 회화에서 무의식의 상징에 대하여 인간이 반복하여 느껴온 흥미를 묘사한다. 그런 무의식의 상징들은 생명을 유지하는 내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폴 라딘 박사는 북미주 위네바고 인디안의 영웅신화를 분석해서 영웅신화의 전개를 트릭스터(trickster), 토끼(hare), 붉은 뿔(red horn), 쌍둥이(twin) 네 가지 행태의 영웅이 등장하는 주기(cycle)로 구분했다. 먼저 트릭스터 주기는 인생의 가장 초기의 미숙한 시기에 해당하는데, ‘사기꾼’이라는 뜻의 트릭스터는 자신의 행동이 육체적인 욕구에 따라서 지배되는 인물로 정신연령은 유아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영웅은 본능적인 절제하지 못하며 유치한 양상을 띤다. 트릭스터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 말고는 아무런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잔인하고 냉소적이며 냉정하다.
영웅신화 발전의 두 번째 단계는 토끼 주기다. 토끼는 아직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진 못했지만 그래도 인류의 창시자로서의 모습을 나타낸다. 가령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서 인류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 단계는 붉은 뿔 주기인데, ‘붉은 뿔’은 고된 시험을 거쳐서 영웅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갖추게 된다. 부처와 같은 강한 인신(man-god)이 대표적이다. 붉은 뿔은 인간을 파멸시키려는 악의 힘을 극복하기 위해서 초인적인 힘과 수호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영웅신화 발전의 마지막 단계는 쌍둥이 주기인데, ‘쌍둥이’는 인간 본성의 외향성과 내향성 두 측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살’로서 복종하고 온화하며 수동적이고, 다른 하나는 ‘다리’로서 동적이며 반항적이다. 쌍둥이는 태양의 아들로 흔히 자기 능력을 넘어선 자부심과 자만으로 인해 그들의 힘을 잘못 사용하여 희생이나 죽음과 같은 파멸의 길에 들게 된다. 로마 건국의 주역인 로무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대표적이다. 니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비극의 영웅은 신과 인간의 중간자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가 대표적이다.
개인의 정신 발달도 영웅신화의 발달 단계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영웅신화와 성인의식도 구조적 유사성을 보여주지만 영웅신화가 자아실현을 강조한다면 성인의식은 집단적 정체성을 위한 복종을 강조한다. 성인의식은 상징적인 죽음과 재생의 의식에 기반하고 있는데 토템, 씨족, 부족 또는 이 셋이 모두 합쳐진 큰 집단과 자아와의 진정한 통합이 이루어지는 첫 행위다. 결혼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성인의식이다. 성스러운 결혼은 여성의 심리에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장 대표적인 통과의식은 남성의 로고스(이성)와 여성의 에로스(연계성)의 ‘성스러운 결혼’, 즉 신성혼으로 표현된다. 인도의 시바와 파르바티의 신성혼이 대표적이다. 동화 『미녀와 야수』는 어린 소녀의 성인식을 상징한다. 소녀가 자기 본성의 성애적이며 동물적인 면과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의 유대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융의 주요 이론 가운데 하나가 그림자 원형이다. 그림자는 자아 인격의 무의식적인 어두운 면을 말한다. 그래서 그림자는 의식적 인격보다 훨씬 더 쉽게 집단감염에 노출된다. 악마에 홀린 17세기 프랑스 수녀들이나 무도병과 미국 남부의 백인 지상주의 비밀결사인 KKK가 그림자가 바로 집단감염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림자는 개인의 사적인 측면도 있고 집단적인 요소도 있다. 그림자는 긍정적인 기능과 부정적인 기능이 있다. 힌두의 신 니슈누는 이런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림자가 우리의 친구가 되는지 아니면 적이 되는지는 주로 우리들 자신에 달려 있다. 우리들의 결점들이 그림자에 의해 드러날 때 우리는 그림자를 직시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성향이 강하다. 적대적인 정치 갈등에서 이런 투사는 매우 일반적이다.
꿈과 신화에서 그림자는 꿈 꾼 사람과 같은 성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림자라고 해서 반드시 꿈꾼 사람과 적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좋건 싫건 한 길을 함께 가야 하는 동행인과 같다.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져주는 척하면서, 때로는 저항하면서, 때로는 다독거리면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무시되거나 오해받을때만 적대적인 힘이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