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 Edgar Poe, 1809 ~ 1849)의 시선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 Edgar Poe, 1809 ~ 1849)는 《애너벨 리》와 같은 죽음과 우수와 사랑을 주제로 한 음악적이고 신비적인 경향의 순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어셔가의 몰락》(1839), 《모르그가의 살인사건》(1841) 등의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단편소설과 독설에 찬 날카로운 비평도 발표했다.
냉소적이며 음울한 천재였던 포의 시는 상징적이다.
인간의 내면과 환상과 이상, 보이지 않는 세계에 비중을 둔 그의 시는 인간의 광기 어린 암담한 내면과 죽음의 무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의식이 암시되어 있다.
그는 시를 위한 시, 예술을 위한 예술, 미를 위한 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당시의 청교도주의와 성격이 상반되어 생전에도 사후에도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의 독창성은 19세기 후반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이 발견해 계승하다가 20세기에 이르러 T. S. 엘리엇에 의해 영미 문단에 재수입되면서 비로소 평가를 받게 되었다.
◇ 애너벨 리
아주 아주 여러 해 전
어느 바닷가 왕국에
당신도 알지 모를 한 소녀가 살았다네.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이 소녀는 나를 사랑하고 내게 사랑받는 일 말고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다네.
이 바닷가 왕국에서.
나는 아이였고, 그녀도 아이였다네.
하지만 우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했다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천상의 날개달린 천사들도
탐내는 그런 사랑으로.
그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네, 오래전,
이 바닷가 이 왕국에서
구름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나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해 버린.
그래서 그녀의 지체 높은 친척들이 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 가
이 바닷가 왕국의 무덤 속에 가두었다네.
천상에서도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기했기에―
그렇다네!― 그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네
(이 바닷가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밤에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죽인.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훨씬 더 강했다네.
우리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래서 천상에 있는 천사들도
바다 밑에 있는 악마들도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내 영혼을 결코 떼어 낼 수 없다네.
왜냐하면 달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내게 가져오지 않고서는 비추지 않고
별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내가 느끼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기에,
그래서 나는 밤이 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누워 있다네.
바닷가 무덤에
파도치는 바닷가 그녀의 묘지에
(*애너벨 리 : 13세에 포와 결혼해서 25세에 폐병으로 사망한 어린 아내 버지니아 클렘 을 추모하여 쓴 사랑시이자 애도시이다. 이 시는 포가 마지막으로 쓴 시로 그가 사망한 지 이틀 후인 1849년에 발표되었다.
버지니아 클렘은 15세 연상인 포와 결혼해서 10여 년 동안 가난과 폐결핵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포는 혹한 속에 담요도 없이 짚을 깐 침대에서 쓸쓸히 눈을 감은 아내를 바닷가의 어느 왕국에 사는 소녀 애너벨 리로 미화시켜 애도하고 있다. 눈물없이 시를 감상하기 어렵다.)
◇ 헬렌에게
헬렌, 그대의 아름다움은 내게
그 옛날의 니케아의 돛단배 같다오.
방랑에 지친 방랑자를 태우고
향기로운 바다를 건너, 유유히
그의 고향 해변으로 실어다 주던.
그대의 히아신스 같은 머리카락, 그대의 단아한 얼굴,
그대의 나이아드 요정 같은 자태는
위험한 바다에서 오래도록 헤매던 나를
그리스의 영광으로
그리고 로마의 웅장함으로 데려간다오.
보라! 저 눈부신 창가에서
손에 마노의 향불을 들고
그대가 얼마나 조각상처럼 서 있는지를 나는 본다오!
아, 성스런 나라에서 온
프시케와 같다오!
◇ 갈까마귀
언젠가 쓸쓸한 한밤중에, 내가 피곤에 지쳐, 잊힌 전설의, 기묘하고 신기한, 많은 이야기책을 생각하다가,
선잠이 들어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지.
마치 누군가 살며시 내 방문을 똑똑, 똑똑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누가 왔나 봐”, 내가 혼자 중얼거렸다네. “내 방문을 두드리기만 하고― 그러기만 하고 마는군.”
아, 분명히 기억난다네. 그건 음산한 겨울이었어.
타다 말고 죽어 가는 장작들이 마루 위에 유령 그림자를 만들어 놓던
나는 아침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원했지―내 책으로부터 슬픔을―
그 슬픔은 잃어버린 레노어로 인한 것이었는데―
멈추게 할 어떤 말을 찾아내 빌리려 했지만 그것은 헛일이었어.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 부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찬란히 빛나던 그 소녀는 지금 여기에 영원히 이름 없이 누워 있기에.
자줏빛 커튼마다 알 수 없는 비단결 슬픔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나를 무서움에
떨게 했다네―예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환상적인 공포가 나를 가득 채웠다네.
그래서 이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나는 일어서서 되풀이해 말 하네,
“어떤 방문객이 문 밖에서 들어오기를 청하고 있나 보군―
어떤 늦은 방문객이 문 밖에서 들어오기를 청하고 있나 보군― 그것뿐이군, 아무것도 아니군.”
이제 내 영혼은 좀 더 강해졌고, 그래서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네.
“남자분이신지 혹은 부인이신지”, 내가 말했지, “제발, 진실로 저를 용서해 주시오,
사실 저는 선잠이 들었고, 그래서 당신이 아주 살며시 와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아주 살그머니 와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제 방 문 두드리는 소리를,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여기서 나는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네― 그곳에는 어둠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네.
어둠 속 깊숙이 응시하면서, 오래도록 나는 거기 서 있었지, 궁금해 하며,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예전에는 인간들이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꿈을 꾸며,
그러나 침묵은 깨지지 않았고, 정적은 아무런 징표도 보여주지 않았다네,
거기서 들리는 유일한 말은 속삭이는 말로, “레노어!”뿐이었어.
나는 이 말을 속삭였고, 이 말, “레노어!”가 메아리쳤다네― 단지 이것뿐, 아무것도 없었다네.
몸을 돌려 방안으로 돌아오자, 내 몸속의 모든 영혼이 불타오르자,
곧 다시 나는 전보다 더 크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네.
“분명히”, 내가 말했지, “분명히 내 격자창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군.
그럼, 좀 볼까, 날 협박하는 게 무엇인지, 이 신비를 밝혀 볼까―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 신비를 밝혀 볼까― 그건 바람일 뿐, 아무 것도 아닐 거야.”
여기서 나는 덧문을 열어젖혔고, 그때, 펄럭이며 파닥거리며,
그 옛날 성스럽던 시절의 위엄 있는 갈까마귀가 그곳에서 걸어 들어왔다네.
그는 조금도 경의를 표하지 않고, 잠시 멈추거나 주저하지도 않고,
귀족이나 귀부인의 태도로 내 방 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네―
내 방의 문설주 바로 위의 팔라스 흉상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네― 자리를 잡고, 앉은 것뿐, 그것뿐이었다네.
그런 다음 흑단처럼 까만 이 새는 얼굴에 엄숙하면서도 엄격한 표정을 띠고,
내 슬픈 환상을 속여 미소로 변하게 했다네. “그대의 볏을 밀어 버려
번쩍이게 했지만, 그대여”, 내가 말했다네, “그대는 분명 겁쟁이는 아니군.
밤의 해안을 떠나 방랑하는 유령처럼 험악한 고대의 갈까마귀여―
밤의 지옥의 해변에서 그대의 고매한 이름이 무엇인지를 내게 말해 주오!”
그 갈까마귀는 이렇게 응답했다네, “진짜 끝.”
이 볼품없는 새가 이렇게 명백히 대답하는 것을 듣고 나는 몹시 경탄했다네.
그 대답은 별 의미도 없었고-타당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까지 살아 있는 어떤 인간도 방문 위에 앉아 있는
새에게서 축복받는 걸 본 사람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방의 문설주 위의 흉상 위에 앉은, 새인지 짐승인지 모를 “진짜 끝”이라는 그런 이름을 가진 것에게.
그러나 그 갈까마귀는 평온한 흉상 위에 외로이 앉아서, 그 한마디밖에
말하지 않았다네, 마치 그 한마디 속에 그의 영혼을 모두 쏟아냈다는 듯이.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깃털 하나 펄럭이지 않았다네―
내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순간까지도, “전에 다른 친구들은 모두 날아갔었지―
아침이 되면 저 새도 나를 남겨두고 떠나겠지, 예전에 나의 희망들이 날아갔듯이”
그러자 그 새가 말했다네, “진짜 끝.”
그렇게 때맞춰 나온 대답에 정적이 깨진 것에 깜짝 놀라,
“틀림없어”, 내가 말했다네,
“저것이 말하는 건 어떤 불행한 주인에게 유일하게 배워 기억하고 있는 한마디임이,
그는 무자비한 재난의 신에게 급히 쫓기는 바람에, 더욱 급히 쫓기는 바람에,
그의 노래에는 하나의 무거운 짐만 남게 된―
그의 희망의 여신의 슬픈 노래도, 음울하고 무거운 짐만 남게 된, “진짜―진짜 끝”이라는.
그러나 갈까마귀는 여전히 내 슬픈 영혼을 속여 미소로 변하게 했다네.
곧장 나는 방석이 깔린 의자를 새와 흉상과 문 앞으로 굴려다 놓고,
거기, 푹신한 벨벳 천위에서, 나 스스로 환상과 환상을 연결시켜 보았다네,
이 고대의 불길한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네,
이 험악하고, 볼품없고, 무섭고, 수척하고, 불길한, 태고의 새가 “진짜 끝” 이라고 울어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나는 이런 추측에 몰두한 채 앉아 있었지만, 이제는 불꽃같은 두 눈으로
내 심장까지 타들어 오는 새에게는 한마디도 표현하지 않았다네.
이렇게 계속 마음속으로 점을 치며 앉아 있었다네,
등잔 불빛에 환하게 빛나는 방석의 벨벳 천 장식 위에 안락하게 머리를 기댄 채
그러나 등잔 불빛에 환하게 빛나는 벨벳 천의 보랏빛 장식 위에,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기대지 못하는데, 아, 진짜 끝인데.
그때, 내 생각에는, 공기가 더 짙어졌고, 마룻바닥에 반짝이는 발자국을 희미하게 흘리며
돌아다니는 천사들이 흔드는, 보이지 않는 향로에서 향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네.
“가엾은 자여”, 나 스스로 외쳤다네, “그대의 하느님께서 빌려 주신 거야―이 천사들 편에 그대에게 이런 휴식을 보내주신 거야―레노어에 대한 추억에서 시름을 잊게 하는 휴식과 약을! 그러니 들이켜, 오, 이 고마운 약을 들이켜, 잃어버린 레노어를 잊어 버려!”
그러자 갈까마귀가 응답했다네, “진짜 끝.”
“예언자여!” 내가 말했지, “악한 것! 새인지 악마인지, 그러나 예언자여!
악마가 보냈든지, 아니면 폭풍우가 그대를 여기 해변으로, 황량하지만 모두가 용감한, 마법에 걸린 이 황무지로 –
공포의 귀신이 붙은 이 집으로 보냈든지 간에―제발, 내게 진실로 말해주오―
거기에도―길르앗에도 향유가 있는 건지?―내게 말해 주오―제발, 내게 말해 주오!”
그러자 갈까마귀가 응답했다네, “진짜 끝.”
“예언자여!” 내가 말했다네, “악한 것!―새인지 악마인지, 그러나 예언자여!
위에서 우리를 굽어보는 저 천국을 걸고―우리 둘 다 경배하는 신을 걸고―
슬픔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 영혼에게 말해 주오. 저 멀리 있는 에덴이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 부르는, 세상에 둘도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소녀를 껴안을런지를,
그러자 갈까마귀가 응답했다네, “진짜 끝.”
“그 한마디를 우리의 작별 인사로 삼거라, 새인지 악마인지 하는 것이여!”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네―“폭풍 속으로, 밤의 지옥의 해변으로 돌아가!
그대의 영혼이 말하는 그 거짓을 상징하는 검은 깃털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나의 고독을 깨뜨리지도 말고!―내 문설주 위의 반신상을 떠나 버려!
내 심장을 쪼던 부리도 가져가고, 내 문에서 그대의 모습도 가져가 버려!
그러자 갈까마귀가 응답했다네, “진짜 끝.”
그런데도 갈까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여전히 앉아 있었다네.
‘여전히’ 앉아 있었다네, 내 방 문 바로 위 팔라스의 창백한 흉상 위에,
그의 두 눈은 꿈꾸고 있는, 악마의 온갖 표정을 담고 있었고,
그 위에서 흐르는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마루 위에 던져주고 있었다네,
이제 나의 영혼은 마루 위에 누워 떠다니는 그 그림자를 떠나서
일어나리라―“진짜 끝!”
(*폭풍우가 치는 밤, 죽어가는 연인 ‘레노어’의 임종을 앞두고, 그녀를 누인 침상 곁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자, 갈까마귀 한 마리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갈까마귀는 어떤 질문에도 ‘nevermore’ <더 이상은 없어. 진짜 끝.>라고 대답한다.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끝모를 깊은 슬픔이 가슴을 적신다.)
◇ 어머니에게
저 위 천국에서 서로에게 속삭이는
천사들도 그들의 불타는 사랑의 말 속에서
“어머니”라는 말처럼 그렇게 헌신적인 말을
찾을 수 없다고 제가 느끼기에,
그렇기에 그 사랑스런 이름으로 저는 오랫동안 당신을 불러 왔습니다―
제게는 어머니보다 더한 존재인 당신,
저의 마음들의 마음을 채워 주는 당신을,
죽음이 버지니아의 영혼을 해방시킨 그곳에 당신을 앉혀 놓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일찍 돌아가신 저 자신의 어머니는,
단지 저 자신의 어머니였지만, 당신은
제가 아주 많이 사랑했던 사람에게도 어머니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던 어머니보다 더 소중합니다.
제 아내가 제 영혼에게 그 영혼의 생명보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더 소중했던 것처럼.
(*어머니는 숙모이자 장모였던 아내 버지니아의 어머니인 마리아 포 클렘을 말한다. )
◇ ― 에게
나는 개의치 않는다오, 내 이승의
운명을-그 안에 이승의 것이 없는―
그리고 오랜 세월의 사랑이
한순간의 미움 속에 잊히는 것을―
내가 슬퍼하는 것은, 연인이여, 그 쓸쓸한 사람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한
내 운명을 그대가 슬퍼하기 때문이라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