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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성 목사 칼럼 2024년 7월3일 수요일입니다 모든 것이 정말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잠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개발되고 이전에 우리세대에는 신개발이라고 좋아하고…

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아까시나무의 재평가 (再評價) 노래 “과수원 길”에 나오는 “아카시아꽃”이 잘못된 표기라는 한국임학회의 정정[訂正] 결정이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는 원산지가 호주 동쪽이며 학명이 “Acasia dealbata” 로 노랑 꽃이 피고 나무 모양이나 이파리가 아까시나무 와는 전혀 다르다.  시드니의 nursery에는 여러 종류의 Acasia 묘목을 팔며 잎이며 나무 모양이 한국의 아까시나무 와는 전혀 딴판이다. 아까시나무 1891년 한반도로 이주 아까시나무가 한반도로 이주 해서 넓게 뿌리 내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까시나무를 처음 들여온 사람을 검색해 보니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인천에서 무역회사 지점장으로 있던 사가끼란 일본사람이 1891년에 중국 상해에서 묘목을 구입하여 인천 공원에 심은 이후 한반도에 비로소 아까시나무 세상이 펼쳐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박상진 교수의 나무이야기에서]. 미국을 고향으로 하는 이 나무는 그 후 1910년 일제 강점기에 들어오자 심는 양이 많아져 강토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되었으며 콩과식물 이기 때문에 토사가 흘러내릴 정도로 황폐해진 민둥산에도 뿌리를 잘 내렸다.  잘라 버려도 금새 싹이 나올 만큼, 강한 생명력과 화력이 좋아 땔나무로서의 역할도 컸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사방공사 (沙防工事) 일제강점기, 6.25전쟁, 무분별한 화전과, 도벌 등으로 거의 전국의 산들이 민둥산이 된 것을 50여년 전 [1960년대 중반]에 주민을 동원하는 거의 반강제적인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