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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함께 지내기 힘든 성격들 (Difficult personalities)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아주 어려운 성격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힘든 사람도 있고 요구를 너무 많이 해서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 화를 잘 내는 사람과 같은 경우는 눈에 너무 잘 드러나서 금방 알아차리게 되지만 소시오패스처럼 전략적으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경우는 당하고 나서 나중에 알아 차리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결혼 전에는 몰랐다가 결혼을 해 보니 배우자가 성격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함께 지내는 것이 많이 버거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다루기 어려운 사람도 있지만 나랑은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아서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성격이 상반되어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극 외향이어서 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활력을 얻는 반면 한 사람은 극 내향이어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스트레스를 잘 받을 때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도 쉽지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는 지인이 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여행이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자신은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해서 해야 하는 사람인데 함께간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어서 결국 자신이 모든 일을 오거나이즈를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는 너무 달라서 힘들거나 또는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서 성격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사람과 지내는 것이 힘들고 괴로울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께 지내기 힘든 성격들 (Difficult personalities)’에서는 그것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책 제목처럼 함께 잘 지내기 어려운 성격들에 대해서도 설명하면서 힘든 부분을 잘 보완하면서 대처할 수 있는 전략들을 다양하게 알려줍니다. 그 중에 관계하기 힘든 사람들로 인해 힘들고 괴로운 상황이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네 가지가 필자의 눈에 띄었습니다. 첫 글자를 따라 CAST로 표현할 수 있는데 변화, 수용, 머물며 괴로와 하기 그리고 떠나기 등을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변화 (Change)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상황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우연히 지하 작은 방 두개에 9명이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보았는데 한 건축가의 도움으로 집이 고쳐지면서 모든 가족이 살만한 환경이 되자 아이들의 건강이나 생활의 만족도가 훨씬 좋아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외적인 상황을 고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어라’ 라고 말하는 것은 외적인 환경 보다는 내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변화를 먼저 시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행동과 생각을 본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쉽기에 평소에 나의 생각을 관찰해 보고 인지 행동 치료( Cognitive behaviour therapy)와 같은  것을 통해 나의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또는 낙관적으로 바꾸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서 동시에 나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자꾸 생각해 보면서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받아들이기 (accept)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지금의 상황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변화가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포함이 되며 결점이 있고 완벽하지 않고 공평하지 않은 삶과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대를 낮추고 힘든 상황만 바라보지 않고 주위를 돌려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를 잘 내는 배우자와 살아야 할 경우 그 배우자가 아주 친절하고 화를 안내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화를 내지 않을 때 친절한 그 사람의 부분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그 사람 그대로를 긍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때 남의 입장에 서보는 것과 공감과 또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낙관주의적인 태도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요즘 시대에 어른 공경? 언젠가 자녀를 4명 두고 있는 목사님께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아이들에게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로 십분의 일은 부모님께로 바쳐야 한다고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다 자녀를 두고 있는 필자는 그 분의 말을 심각하게 듣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교육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부모도 섬기는 것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조금씩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 분을 만나 보았을 때 자신이 한 말을 잊어버리고 계신 것을 보면서 당황한 기억이 있다. 한국 문화에서는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집안에서도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명절에 방문을 하는 것 또는 어른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과 같은 섬김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어른들에게 성인이 된 자녀가 용돈을 주는 것은 그 만큼 부모가 자녀들에게 먼저 베풀어 주고 희생하며 사랑을 베풀어준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부모가 베풀어 주었던 은혜에 대해 자녀들이 되 갚아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노인이 된 필자의 부모님들은 돈을 벌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방문할 때 모아놓은 용돈으로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셨고 자녀들은 그것에 감사하며 반대로 부모님께 용돈은 주는 일을 했다. 어찌보면 준 것을 도로 받는 것 같은 똑 같은 행위 같지만 그런 주고 받음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 또 이런 전통은 결혼이나 장례와 같은 크고 작은 일들이 가정에 있을 때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많은 문화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주고받는 것, 서로가 서로를 돌봐주는 것,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 등이 옛날 보다 많이 희석이 되었다. 특히, 호주에서 자란 한인 가정의 아이들은 ‘효’라고 하는 개념과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는 개념을 배워나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국은 여전히 ‘효’라고 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어른을 돌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호주에서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있어서 부모님께 많은 의존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부모님을 잘 돌봐 주지도 않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 문화와 호주 문화가 섞여 있는 한인 가정을 살펴보면 여전히 부모는 자녀에게 극진한 사랑과 무조건 적인 돌봄을 베풀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얻은 성인이 되어서는 되갚아 주는 과정이 없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아이들은 두 문화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어쩌면 배워서 그것을 활용하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많은 친척들이 용돈을 주고 돌봐주는 것은 한국에 있는 배워야 할 좋은 문화중 하나인데 그것의 목적을 잘 알지 못하고 받기만 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이제는 반대로 자신들이 가족들을 돌보고 챙겨주어야 하는데 자신은 그렇게 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성인이 되어서 직장인이 되었어도 가족과 나누거나 타인과 나누는 것에는 쓰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쓰는 자녀들의 세대를 보면 조금은 우려가 되는 부분이 사실이다. 몇 주전 태국에서 만난 한 선교사님 사모님은 여러 사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번에 태국 여행을 하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성인 자녀들이 용돈을 어떻게 주었는 지를 이야기 해주셨다. 거기 계신 사모님들 중 유일하게 그 분만 결혼하지 않은 자녀로 부터 정기적으로 자녀에게 용돈을 받고 계셨고 여행을 할때 자녀들이 기쁨으로 부모님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 분의 경우 선교지에서 선교사로 힘들게 살아가는 동안 가족들이 사랑으로 늘 섬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선교사님은 자녀들에게 친척들이 베풀어준 사랑을 잊지 말고 보답해야 한다고 늘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님을 섬겨주면 ‘너도 힘들 텐데 이런 것, 구지 안해도 돼 !’ 라고 말하지 않고 ‘고맙다’. ’참 잘하네’ 라고 그것을 기쁨으로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권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선교사님의 자녀들은 작은 것이라도 친척들까지 챙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그런 젊은이들이 없다 보니 사모님은 자녀교육을 잘했다고 친척들 사이에 칭찬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 사모님은 자녀에게 주는 것과 받는 것을 아주 잘 하고 계신 분이셨다. 부모가 무조건 적인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어 주어야 하지만 삶에서 가족을 어떻게 돌보며 또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며 살아야 하는지, 재정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를 그 사모님처럼 가르쳐 주는 것은 중요한 삶의 부분이라 생각된다. 얼마 전, 호주에서 한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만 있는 엄마다 보니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에 대해서 대수롭게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그런데 어느날 가족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서 너무 너무 섭섭했고 그것을 가족들에게 심각하게 표현을 했다고 한다. 돈이 문제이거나 생일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엄마에 대해서 자녀들이 기억하고 생각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중요함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다행히 엄마의 진심을 이해한 자녀들은 그 다음부터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고 각자 나름대로 정성을 담아 챙겨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모두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한 쪽이 너무 희생적이고 일방적이다 보면 지치고 돌아오지 않는 보상으로 인해 피해의식마저 생겨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 일방적으로 배우자나 남자 친구가 너무 잘 해 준다고 할 때 그것이 그래서 좋은 것 만은 아닐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자녀에게도 부모를 공경하며 부모와 가족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 알려주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좋은 전통인 어른을 공경하고 돌보는 정신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가정은 위의 선교사님처럼은 아니나 어릴 때부터 가족의 기념일을 특별하게 축하해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지금도 생일이 되면 당연히 생일자가 원하는 선물을 사주고, 생일자가 원하는 식사를 준비해서 카드를 손수직접 만들고 사랑이 담긴 편지를 쓰고 그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고모님이 각각 다른 시기에 우리 집에 와서 가사일을 도와준 일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감사한 마음의 플랭 카드를 만들고 파티를 열고 카드를 만들고 그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전통을 어른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그 분들에게 그 기억이 각인이 되어 두고 두고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어른을 섬기고 돌봐 주는 지에 대해서 모범을 보이며 그런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되 동시에 말로도 교육하고 알려 주며 훈련하여서 주고 받는 한국의 좋은 전통, 무엇보다 어른을 잘 섬기는 전통이 가정에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