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탄핵정국 가운데 2024년 각 교단 및 단체별 성탄메시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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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새해인사 한해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기쁜 성탄과 새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1794년 12월 24일, 청나라의 주문모 (周文謨, 1752 ~ 1801) 신부가 외국인 기독교 선교사 최초로 조선에 입국 주문모 (周文謨, 1752년 ~…
김환기 사관 칼럼 크리스마스와 노엘의 의미 (누가복음 2:14)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聖誕節)이라고도 합니다. 크리스마스, 또는 성탄절은 매년…
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나를 사랑해야 적정한 삶을 산다 지금은 천국에 계신 아버지께서 호주에 잠깐 계셨던 적이 있으셨다. 당신이 호주에 계시는 동안 자녀들이 바쁘다고 직접 부엌에 들어가 식사를 준비해서 주시곤 하셨는데 아버지께서 국을 끓이면 모든 가족이 먹고 하나도 남지 않게 정량을 만드셨다. 매번 먹으면서도 양이 정확한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고 덕택에 매일 신선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적정한 삶이란, 알맞고 적당한 정도의 삶을 말한다. 적당히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생기지 않고 적당히 음식양을 조절해서 먹으면 성인병도 예방을 할 수 있고 적당히 일을 하면 쉼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적당히 사람과 거리를 두면 다툴 일도 줄어들 수 있기에 적당하고 알맞은 적정한 삶은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하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겐 ‘적정함’을 누리며 살기가 쉽지가 않다. 무엇이든 잘 해서 일등을 해야 하고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사회에서 ‘적정함’이란 과하게 최선을 다해야 언젠가는 얻어지는 삶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당하게 사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고 게으름과 타협을 하는 것이며 적정하게 중간을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적정함이란 없다. 적정한 삶을 위한 필수적인 휴식은 한 참 정신없이 달려가다 몸이 고장이 나거나 큰 사고를 만나야만 누릴 수 있다. 나에게도 적당히가 어렵다. 음식을 하면 아버지처럼 적당히 하지 못하고 많이 한다. 식구가 많다 보니 왠지 모자라는 것보다는 남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많이 하게 되고 적당히 잘 맞추어서 양을 정하면 왠지 야박하게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 남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가끔은 또 데워서 줄기차게 여러 번 먹을 때가 있다. 손님이 올 때는 더 많이 하고 또 더 많이 남겨서 먹게 된다.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모자라는 것보다는 남는 게 나아라고 합리화하며 남기며 준비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히가 어려운 부분은 이 부분 뿐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면 호주 시드니도 은근히 추워서 온수 매트를 사용하게 되는데 물을 채워넣을 때 조심해서 넘치지 않게 해야 하는 데 끝까지 가득 채우겠다는 욕심에 꼭 물이 조금은 흘러넘치게 만든다. 결국은 휴지나 걸레를 가지고 와서 주변을 훔치는 일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 뿐인가, 가끔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도 그렇다. 적당히 시간이 되면 정리를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다음 약속에 늦을 정도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경우가 생기다 보니 가끔은 계산을 못한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이렇게 지나친 것은 가끔만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나의 어머니는 종교 중독에 가까울 만큼 신앙적인 것에만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내던 분이시다. 그것도 말씀보다는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더 많이 중점을 두시는 분이셨다. 그러다 보니 신앙만 알고 세상의 물정은 전혀 모르시고 상식이라던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삶의 간단한 기술들 에는 전무하셨고 돈을 모을 줄도 모르시는 분이셨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옆에서 그 모든 부분의 빈자리를 채워주었기 때문인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간단한 이멜을 보내는 것 부터 전화기로 사진을 보내는 것 하나 혼자서는 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쪽에 지나치게 쏠린 삶이 다른 삶의 부분에는 적당히가 아닌 ‘무지함’을 가져다준 것이다. 직장에서 만난 한 동료는 아프리카에서 왔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상당히 의존적이라고 한다. 만약, 친척 중에 한 명이 호주에 왔다고 하면 모두가 도움의 손을 요청한다고 한다.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먼 친척까지도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한다. 돕지 않으면 나쁜 아이로 부족에게 낙인이 찍히는 것이 힘들어 자신이 처음에 호주에 왔을 때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돈의 많은 부분이 아프리카로 보내졌는데 자신의 삶은 없고 가족 친지를 돕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삶을 살다 보니 기쁨이 없고 우울했고 힘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없이 희생적인 삶을 산 이 동료는 ‘건강과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 여성분은 자신을 지키고 싶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싶지만 어린 시절에 타인이 자신의 삶을 너무나 많이 침범해 버렸기에 가끔 학대를 당하거나 누군가가 자신의 경계선을 침범했을 때도 그것에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힘들어 했다. 지나치게 사람들 앞에서 비굴하고 착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많이 상대에게 기대를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싫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관계가 버거워 포기해 버린다. 적절하게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적절하게 거절하는 것을 하지 못해 관계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적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그 만큼 건강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한다. 조금씩은 상처를 받고 조금씩은 왜곡된 인지와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다 보니 적절하고 건강한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이다. 적정하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건강하지 못한 자아로 인해 형성된 습관들과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마치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빼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치우침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당히 그리고 적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내 자아가 건강하게 서 있어야 타인에 의해서 자신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삶의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주위 사람과 적절하게 소통하고 있어서 때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예!…
이은성 목사 칼럼 2024년 12월 16일 월요일입니다 33년 전(?)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전도사로 학생으로 만났던 제자의 결혼식 주례로 1년 만에 한국에 방문하여…
시교협, 창립40주년 맞아 다양한 행사 개최 2025년도 신년하례회 (1월6일, 시드니성결교회) / 부흥한국 집회 (고형원 전도사, 3월22일, C3 CHURCH) / 부활절…
김병근 목사 칼럼 이틀간의 ‘단절’이 준 교훈 이틀 동안 핸드폰이 고장 났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편함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생각하며 삽시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뉴스, SNS, 다양한 프로그램을 듣고 보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이상하게 보였으니 이제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모습이며 조금씩 나도 영향을 받았는 지 약간의 시간이 나면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너무나 쉽게 정보를 얻고 타인과 소통을 하는 편리한 도구인 스마트 폰이 언젠가 부터는 사람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소비에 이르게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스마트 폰을 사용하게 하고 더 많은 이득을 창출하기 위해 고민하는 거대회사들의 전략가들에 의해서 일반 대중들은 생각없이 살아가게 된다. 무엇이 옳은 지 무엇이 틀렸는 지 조차 생각하지 못하며 끊임없는 흥미와 가상 세계 속에 홀린 듯이 끌려다니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든 현대인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 가운데 생각없이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과 다수의 성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노예처럼 끊임없는 정보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하고 싶다. ‘아직도 가야할 길’ 이라는 명작을 쓴 스캇 펙은 말년에 쓴 그의 책에서 현대인들의 주요한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그의 말에 동의가 되는 것은 어느 날 나의 하루의 삶을 돌아보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라디오로 극동 방송에서 나오는 목사님의 설교와 찬양을 듣고 아이들 도시락을 챙겨 주고 집 청소를 좀 한 다음 사무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중간 중간 상담이나 수퍼비젼을 하고 저녁이 되자 아이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남편과 운동을 하고 프로그램을 잠깐 보았는데 막상 잠자리에 누울려고 하자 하루 종일 열심히 살았지만 거기에는 깊은 생각, 사색, 사고의 부분은 거의 전무한 것이었다. 매주 마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있지만 막상 내 안에서 나의 것으로 깊은 사고로부터 나온 생각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그저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하는 의무감에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처럼 살아가고 있음을 순간적으로 느끼며 당황스러웠다. 나는 과연 나의 것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어떤 사람은 나만의 생각이 왜 필요해?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상에 주어진 작은 스트레스들을 처리하느라 더 깊은 생각과 사색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을 수도 있고 하루에도 접하는 전화기로부터의 수 많은 정보들이 우리의 생각을 끌고 가 버려서 독립적인 사고를 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큰 세력으로부터 조정당하고 또 그 조정당한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인간으로서 꼭 해야 하는 창조자로부터 부여받은 생각함으로 성장하고 생각함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귀한 능력을 상실해버릴 수 있음을 기억할 때 아찔한 생각이 든다. 심리 상담에서는 때로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권장하진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 선생님, 선생님은 생각이 넘 많으신 것 같아요. 그것을 좀 멈추어 보세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건강하지 못한 분들이 왜곡된 생각을 많이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고 그것이 정신 건강을 해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이 불안감을 많이 느끼고 잠도 자지 못하는 신경성적 질환을 실제로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권하진 않는다. 생각을 하되 건강한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되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해결책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하되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심리 상담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대중들은 자신 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뉴스가 보여주는 대로 때로는 그 시대의 큰 흐름의 사조가 말하는 대로 또는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의 추구하는 비젼과 정책대로 그저 순응하며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조직체 안에 들어가 그 조직체의 일원으로 잘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그 조직체의 타락한 부분이나 그 조칙체의 건강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생각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거대 담론이 나의 생각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에 익숙한 인간은 때로 비도덕적이며 옳지 않은 결정조차 따라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는 일년씩 유행이 돌아오곤 했는데 언제 부터인가 계절마다 유행이 돌아와 사람들은 계절마다 유행을 타곤했다. 그런데 이제는 수익을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 목적인 회사들은 달마다 유행 아이템을 설정하고 물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사라고 하는 광고들이 보내는 메시지에 쉽게 속으며 매주 매달 새로운 물건들을 구입하고 있다.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온라인 상품들의 개수를 한 번 세어보면 쉽게 알게 될 것이다. 지금도 전쟁으로 기아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한쪽에서는 남는 물건들을 소각장으로 보내어 태워서 환경 오염을 가중 시키고 쓰레기 섬들은 점점 더 높이를 더해가고 있는데 우리가 이 모든 것에 즐거이 가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세상에 끌려가는 자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칼로 무를 자르듯 쉽게 잘라지고 쉽게 이해되어지는 인생은 흔치 않다. 모든 사람의 삶의 이야기는 닮은 듯 하나 모두 제 각기 다르다. 그런 모든 사람의 삶을 함께 아우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고민과 사색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우리 나라를 건강하게 지켜 나가기 위해 불법 이민자들을 내 쫓아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기에 존중하고 그들을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의 그룹들이 지향하는 것을 생각없이 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이기심이 또는 나의 교육 배경이 어떤 특정한 결정들을 내리는데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더 깊이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큰 결정일 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영향력이 흘러갈 수 있기에 우리는 좀 더 윤리적이고 좀 더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인류의 미래까지 생각하며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핸드폰을 내려 놓고, 분주한 삶을 내려 놓고, 환경을 둘러보며, 사람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좋은 책을 읽으며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2024 호주청년코스타 (2024 KOSTA) 개최해 성료 ‘THE STORY, 하나님 나라’ 주제로 강사진·상담진이 함께한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2025년 전반기에 유스코스타, 후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