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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나는 신이다” 최근 ‘나는 신이다’ 라고 하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가 시청률 1위에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경각심을 갖게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 자칭 신이라고 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착취를 당하며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지금도 잘못된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가족 모두가 고통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필자는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사이비종파를 살펴보면서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발견이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제목이 ‘나는 신이다’라고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신격화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도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자신을 신 격화하는 것을 본다면 즉시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모든 거짓 인간신들은 거짓말을 잘하고 힘과 권력을 사용하여서 사람을 학대하는 점이다. 얼핏 보면 그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일부 모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완전히 반대다. 성경에 보면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 말하는데 하나같이 사이비 교주들은 거짓말을 하여서 재산과 개인의 삶을 모두 착취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짓의 사람들이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 문란한 모습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만큼 타락했는지를 볼 수 있다. 또한, 그것에 더하여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도 쉽게 저지르는 것도 볼 수 있다. 더불어 사이비 종교들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를 악하게 사용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잘 활용해서 겉으로 보기에 아주 화려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게 하고 신에게 가까이할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너에게 준다는 것과 같은 달콤한 메시지들을 선물한다. 또는 몇 명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의 심리를 조정하여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결국, 교주의 힘에 의해서 조종된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자유를 박탈한 삶을 살게 된다. 조직에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고, 일하지 않고 싶어도 해야 하고, 늘 감시의 눈이 따라다니며 자신도 누군가를 감시하면서 주위의 사람들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정명석의 경우에는 탈퇴한 신자를 다시 납치를 해서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었고 ‘신나라’ 라는 레코드 사를 운영했던 아가 동산의 교주는 자녀나 부모까지 학대하게 하고 심지어 죽이게까지 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일들을 하게 된다. 그 안에서 종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사람의 인권은 더 이상 존재하기 않는다는 것을 쉽게 보게 되는데 그들이 추구한 낙원과 영생과 사랑과는 대조적이다. 막상 그들이 들어간 현실의 삶은 꼭두각시 또는 종의 삶이며 황폐하고 피폐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삶이 되었다. 비단, 이런 모습은 사이비 종교에서만 볼 수 있지 않다. 때로는 가정에서 때로는 커플 사이에서도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힘과 거짓말을 통해서 상대방을 통제하고 자유를 빼앗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두려움 때문에 관계에 복종해야 한다던 가 오래 동안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서 자신의 존재감이 없어지고 자신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지만 침묵하며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존자들은 현실에 많이 존재한다. 어떤 관계에서 든 힘을 통한 통제가 일어나거나 거짓말로 세뇌하는 ‘가스라이팅’이 있거나 자유를 잃어버리게 한다면 그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이다. 그리고 사람은 학벌의 차이나 외모의 차이와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조건으로 인해서 차별대우를 받는다든가 커플 관계에서 상하의 주종관계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경고 신호’로 여겨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신은 아주 신처럼 완벽하고 월등하나 너는 그렇지 않다 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조정과 학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사이비 종파나 잘못된 관계 가운데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마음에 ‘힘’이 있어야 한다. 마음의 힘이 강한 사람은 타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분별하여서 받아들이고 원치 않을 때 ‘아니요’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타인이 함부로 내 삶을 통제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마음이 착하고 여리고 거절을 못하고 자기 주장을 못하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의 통제를 만날 때 자칫 잘못하면 확 끌려가게 된다. 그런데, 한 번 어떤 체계 안에 들어가면 모든 체계는 하나의 유기체의 역할을 함으로 때로는 건강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쉽게 금방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을 키울 때 무조건 권위에 복종하는 자녀를 키우기 보다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하고 소신 있게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하며 자신의 경계선이 침범될 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네트 워크를 평소에 잘 개발함으로 삶에서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생길 때 그것들을 잘 의논한다면 훨씬 더 잘못된 길로 빠져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에 부모님과 소통을 잘 하는 아이는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부모님과 소통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한 가지의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됨으로 잘못된 결정의 비율을 줄여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라기는 좀 더 건강한 공동체와 건강한 관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아져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동시에 마음의 건강한 힘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 많아 지길 소망한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교수, 생명의 전화 원장)

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감정의 전이 어머니께서 저녁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시고 웃음을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너무나 크게 웃는 모습이 좋아서 인지 옆에 있는 조카가 같이 웃음을 웃기 시작했는데 우리도 덩달아 웃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조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 다음 날까지 작은 일에도 자꾸 웃는 일이 발생을 했다. 이 부분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이 들면서 감정이 전이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니콜라스 크리스티 키스와 제임스 파울라 가 쓴 ‘행복은 전염이 된다 (connected)’ 라는 책에는 희한한 이야기가 나온다. 196년 탄자니아에서 기묘한 일이 일어났는데 어느 선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여자 기숙사에서 웃음병이 번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농담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는 데 1000명 이상이 거기에 감염이 되어서 웃음이 몇 시간씩 계속되었고 최대 16일까지 그 증상이 계속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 조카의 웃음은 이틀 동안 이었으나 아프리카의 이 아이들의 웃음은 전염병으로 여기기 까지 번져서 학교가 휴교에 이르는 일까지 발생하게 만들었다. 기이한 일이긴 하지만 이런 예를 통해서 사람들의 감정은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만에서 유행, 가상 전염병, 그리고 행복의 확산에서 투표행위의 확산까지 사람들은 쉽게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10년간 심층연구를 통해 밝히고 있는데 필자는 특히, 감정 전이의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쉽게 타인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고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따라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은 사람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하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삶을 이어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감정은 이렇게 쉽게 전달이 되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타인의 감정을 읽고 아는 능력이 집단의 행동을 통합하고 조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작게는 아이와 엄마 사이에 일어난 감정의 전이를 통해 어머니는 아이를 더 잘 보호하고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되고 또 가족을 더 잘 돌보게 된다. 또한 집단에서는 적을 물리치거나 할 때 집단 모두가 의기 양양할 경우 싸움을 할 때 훨씬 더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 월드컵을 했을 때 한국이 4강까지 올랐던 것도 어쩌면 집단 심리로 일어난 감정의 전이가 선수들에게 긍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실험에서 대학 신입생이 우울증이 약간 있는 사람과 함께 방을 쓰도록 했는데, 3개월간에 걸쳐 시간이 갈수록 더 우울해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딸의 정서에 엄마가 영향을 많이 받고 아버지의 정서에 어머니와 아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결과도 있다. 이렇게 사람은 감정을 쉽게 옮기고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할 때 삶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 다른 말로 쉽게 표현하면 평소에 행복감을 많이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는 1.6 킬로 안에 사는 친구가 행복하면 그 사람도 덩달아 행복할 확률이 25%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며 함께 사는 배우자가 행복하다면 그 사람도 행복해질 확률이 높아지고 행복한 이웃도 행복해질 확률을 높여 준다고 한다. 결국, 얼굴을 맞대고 자주 상호작용하는 사람이 행복하면 행복이 그들을 통해서 확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한 성질이기도 해서 개인의 행복이 사회적 연결을 통해 물결처럼 퍼져 나가서 부흥과 같은 대규모의 패턴을 만들어 내고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의 무리를 만들고 불행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의 무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가끔 TV에 보면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구의 작은 공동체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행복은 하나의 패턴으로 온 공동체에게 자리를 잡은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한 사람의 행복은 한 사람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친구의 행복이며 나의 가족의 행복이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행복임을 할 수 있다. 내가 행복하면 나와 바로 직접 연결된 사람의 행복이 15% 높아질 확률이 있고 2단계에 있는 사람은 10% 그리고 3단계에 있는 사람에 대한 효과는 6%라고 한다. 한 사람이 돈을 만 달러를 더 벌 경우 행복이 2%밖에 더 증가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행복한 사람과 가까이하면 행복해질 확률이 그것보다 훨씬 더 높다고 저자들은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돈이 많은 것보다 좋은 친구와 가족이 있는 것이 더 행복을 가져다 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역시 내가 불행한 이유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불행했기 때문이야’ 라고 말이다. 반대로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이 불행해졌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타인이나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한 사람들과 좀 더 가까이하고 내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한 작은 시도들을 일상 생활에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짜증을 내지 않고 거울을 보고 잠시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증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고 조금 더 웃고 친절을 베풀고 조금 더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작은 행복을 실천함으로 나의 행복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정서적으로 취약하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일수록 더 좋은 건강한 공동체를 찾아서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또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서적으로 지원이 가능한 좋은 교회 공동체는 치유 공동체가 되어서 한 개인의 행복을 유지하고 건강성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부모님들은 부모님의 정서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 부모의 불안과 우울이 그리고 분노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지 않도록 자신의 정서를 건강하게 잘 돌보고 아이들과 건강한 정서를 잘 나누도록 애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