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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나를 사랑해야 적정한 삶을 산다 지금은 천국에 계신 아버지께서 호주에 잠깐 계셨던 적이 있으셨다. 당신이 호주에 계시는 동안 자녀들이 바쁘다고 직접 부엌에 들어가 식사를 준비해서 주시곤 하셨는데 아버지께서 국을 끓이면 모든 가족이 먹고 하나도 남지 않게 정량을 만드셨다. 매번 먹으면서도 양이 정확한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고 덕택에 매일 신선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적정한 삶이란, 알맞고 적당한 정도의 삶을 말한다. 적당히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생기지 않고 적당히 음식양을 조절해서 먹으면 성인병도 예방을 할 수 있고 적당히 일을 하면 쉼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적당히 사람과 거리를 두면 다툴 일도 줄어들 수 있기에 적당하고 알맞은 적정한 삶은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하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겐 ‘적정함’을 누리며 살기가 쉽지가 않다. 무엇이든 잘 해서 일등을 해야 하고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사회에서 ‘적정함’이란 과하게 최선을 다해야 언젠가는 얻어지는 삶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당하게 사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고 게으름과 타협을 하는 것이며 적정하게 중간을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적정함이란 없다. 적정한 삶을 위한 필수적인 휴식은 한 참 정신없이 달려가다 몸이 고장이 나거나 큰 사고를 만나야만 누릴 수 있다. 나에게도 적당히가 어렵다. 음식을 하면 아버지처럼 적당히 하지 못하고 많이 한다. 식구가 많다 보니 왠지 모자라는 것보다는 남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많이 하게 되고 적당히 잘 맞추어서 양을 정하면 왠지 야박하게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 남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가끔은 또 데워서 줄기차게 여러 번 먹을 때가 있다. 손님이 올 때는 더 많이 하고 또 더 많이 남겨서 먹게 된다.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모자라는 것보다는 남는 게 나아라고 합리화하며 남기며 준비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히가 어려운 부분은 이 부분 뿐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면 호주 시드니도 은근히 추워서 온수 매트를 사용하게 되는데 물을 채워넣을 때 조심해서 넘치지 않게 해야 하는 데 끝까지 가득 채우겠다는 욕심에 꼭 물이 조금은 흘러넘치게 만든다. 결국은 휴지나 걸레를 가지고 와서 주변을 훔치는 일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 뿐인가, 가끔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도 그렇다. 적당히 시간이 되면 정리를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다음 약속에 늦을 정도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경우가 생기다 보니 가끔은 계산을 못한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이렇게 지나친 것은 가끔만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나의 어머니는 종교 중독에 가까울 만큼 신앙적인 것에만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내던 분이시다. 그것도 말씀보다는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더 많이 중점을 두시는 분이셨다. 그러다 보니 신앙만 알고 세상의 물정은 전혀 모르시고 상식이라던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삶의 간단한 기술들 에는 전무하셨고 돈을 모을 줄도 모르시는 분이셨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옆에서 그 모든 부분의 빈자리를 채워주었기 때문인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간단한 이멜을 보내는 것 부터 전화기로 사진을 보내는 것 하나 혼자서는 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쪽에 지나치게 쏠린 삶이 다른 삶의 부분에는 적당히가 아닌 ‘무지함’을 가져다준 것이다. 직장에서 만난 한 동료는 아프리카에서 왔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상당히 의존적이라고 한다. 만약, 친척 중에 한 명이 호주에 왔다고 하면 모두가 도움의 손을 요청한다고 한다.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먼 친척까지도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한다. 돕지 않으면 나쁜 아이로 부족에게 낙인이 찍히는 것이 힘들어 자신이 처음에 호주에 왔을 때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돈의 많은 부분이 아프리카로 보내졌는데 자신의 삶은 없고 가족 친지를 돕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삶을 살다 보니 기쁨이 없고 우울했고 힘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없이 희생적인 삶을 산 이 동료는 ‘건강과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 여성분은 자신을 지키고 싶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싶지만 어린 시절에 타인이 자신의 삶을 너무나 많이 침범해 버렸기에 가끔 학대를 당하거나 누군가가 자신의 경계선을 침범했을 때도 그것에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힘들어 했다. 지나치게 사람들 앞에서 비굴하고 착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많이 상대에게 기대를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싫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관계가 버거워 포기해 버린다. 적절하게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적절하게 거절하는 것을 하지 못해 관계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적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그 만큼 건강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한다. 조금씩은 상처를 받고 조금씩은 왜곡된 인지와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다 보니 적절하고 건강한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이다. 적정하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건강하지 못한 자아로 인해 형성된 습관들과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마치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빼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치우침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당히 그리고 적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내 자아가 건강하게 서 있어야 타인에 의해서 자신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삶의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주위 사람과 적절하게 소통하고 있어서 때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