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걷는 기도

걷는 기도 (16)
파라마타강을 걸을 때
내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강 하나 흐르고 있었습니다.
태초의 시작이었는지
어머니의 자장가에서 비롯되었는지,
당신의 눈물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강은 말없이 나를 지나
나를 데리고 흘러갑니다.
어느 날은 맑은 빛으로
하늘을 그대로 품고 흐르다가도,
어느 날은 빗물에 탁해져
내 얼굴조차 비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강은 자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흐름은 본디
맑음과 흐림을 함께 안고 가는 것이어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속삭이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말은
내 마음에서
조용히 다른 의미로 울립니다.
나는 같은 나로 두 번
이 강에 설 수 없다는 것.
흐르는 것은 물이 아니라
어제의 나,
그리고 오늘의 나이기 때문입니다.
강은 언제나 기억을 데려옵니다.
젊은 날의 푸른 숨결,
사랑이라 부르던 떨림,
이별의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국들……
그러나 강물은 붙잡히지 않습니다.
붙들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오히려 더 멀어집니다.
나는 이제
붙잡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강이 흘러야 바다가 있듯
보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넓은 침묵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녁노을이 물결 위에 내려앉으면
내 마음의 강도 붉게 물듭니다.
그 빛은 사라짐의 색이 아니라
다음을 향한 건너감의 색입니다.
강은 끝내
바다에 이르러 이름을 잃겠지만,
잃음 속에서
모든 것을 품는 넓이를 얻겠지요
내 마음의 강물도
당신의 고요한 빛으로 스며들어
말 없는 평화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흐르되 소리 없이,
깊되 흔들림 없이,
나를 지나
나를 넘어
마침내
나보다 큰 당신에게………
20260221
교회 서재에서
匍越의 [걷는 기도] 중에서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