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날개 : 이상 단편선
이상 / 문학과지성사 / 2005.4.22
〈날개〉는 이상 (李箱, 1910년 9월 23일 ~ 1937년 4월 17일)이 1936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1936년 9월 잡지 《조광》 11호에 발표되었다. 1930년대 심리주의 또는 주지주의 문학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다. 대적 불안과 자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절망과 자아 (自我)의 해체를 보여준다.

본서는 1930년부터 1939년까지 발표된 그의 소설 중 11편을 선별해 실었다. 자유연상, 자동기술, 내적 독백 등의 실험적 구성과 문체로 식민지 근대와 그것에 촉발된 당대인의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문제작들을 만날 수 있다. 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전집의 열여섯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 목차
일러두기
12월 12일
지도의 암실
지팡이 역사(轢死)
황소와 도깨비
공포의 기록
동해(童骸)
날개
봉별기(逢別記)
실화(失花)
종생기(終生記)
주
작품 해설
이상의 삶과 문학 그리고 전위와 해체에 대하여 / 김주현
작가 연보
작품 목록
참고 문헌
기획의 말
○ 저자소개 : 이상 (李箱, 1910 ~ 1937; 본명, 김해경)
이상 (李箱, 1910 ~ 1937)의 본명은 김해경 (金海卿)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은 1932년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상 (李箱, 1910 ~ 1937)은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친다.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했는데, 난해하고 파괴적인 형식에 독자들의 항의를 받고 연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오감도 작가의 말」은 연재 중단 후 쓰여 해당 잡지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1936년「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날개」는 이상의 대표 소설이다. 이듬해는 1937년 2월 사상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되었고, 같은 해 4월 17일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 [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 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 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 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20세기 한국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집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 엮은이 : 김주현
밤하늘에 별이 하늘 가득 빛나는 소백산 자락 부석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가통을 적실히 지켜나가라는 가친의 뜻에 따라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상 김동리 최인훈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으며, 최근 신채호를 비롯한 애국계몽기 문인들에 대해 집중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상 소설 연구> (1999), <정본 이상문학전집> (전3권, 2005), <신채호문학연구초> (2012), <김동리 소설 연구> (2013), <실험과 해체-이상 문학 연구> (2014), <계몽과 혁명-신채호의 삶과 문학> (2015), <화두를 찾아서-문학의 화두, 삶의 화두> (2017), <신채호 문학 주해> (2018)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백세 노승의 미인담> (2004), <이상단편선-날개> (2005), <단재신채호전집> (2008) 등이 있다. 2021년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책 속으로
물론 이래서는 못 쓴다. 이것은 분명히 내 병이다. 오래오래 사람을 싫어하는 버릇이 살피고 살펴서 급기야에 이 모양이 되고 만 것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내 육친까지를 미워하기 시작하다가는 나는 참 이 세상에 의지할 곳이 도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 참 안 됐다.
이런 공연한 망상들이 벌써 나올 수도 있었을 내 병을 자꾸 덧들이게 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또 순하게 먹어야 할 것이고 여러 번 괴로워하는데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은 도리어 또 겹겹이 짐 되는 것도 같아서 나는 차라리 방심 상태를 꾸미고 방 안에서는 천장만 쳐다보거나 나오면 허공만 쳐다보거나 하재도 역시 나를 싸고도는 온갖 것에 대한 증오의 염이 무럭무럭 구름 일듯 하는 것을 영 막을 길이 없다. – 본문 199쪽, ‘공포의 기록’ 중에서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본문 중에서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천재’와 ‘광인’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 이상.
1930년부터 1939년까지 발표된 그의 소설 중 11편을 선별해 실었다. 자유연상, 자동기술, 내적 독백 등의 실험적 구성과 문체로 식민지 근대와 그것에 촉발된 당대인의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문제작들을 만날 수 있다. 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전집의 열여섯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문학사의 주옥같은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문학전집은 작가별로 편차를 두어 목록을 기획했다. 작가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구성하되 대표작으로 인정되는 작품들과 숨겨진 수작들도 다양하게 실었다. 또한 작품의 원본을 토대로 연재본과 다른 판본과의 대조로 오류를 수정했다.
각 작가의 전공자들인 책임 편집자들이 충실한 낱말 풀이와 해설,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길잡이를 제공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변환 작업에는 가급적 현대어 표기를 적용시켰고, 저작권 관련 사항도 정식 계약을 체결하여 진행했다.
○ 추천글
이상의 문학은 하나의 가능성 그 자체이다. 그의 문학은 우리의 모더니즘 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그는 작가적 치열성을 통해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여 우리의 모더니즘 문학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 문학을 심화.발전시켰다. 게다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서구의 박래품으로만 여기는데, 이상은 이미 오래전에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 내지 가능성을 내보였던 것이다. – 김주현 (경북대 국문과 교수)
○ ‘날개’ 개관
– 내용

1936년 9월 종합지인 『조광 (朝光)』에 발표되었다. 「오감도 (烏瞰圖)」 (1934) · 「지주회시 (蜘鼄會豕)」 (1936) 등 실험적인 작품에 대한 생경한 반응을 신심리주의 또는 심화된 리얼리즘이라는 평가로 바꾸게 한 작가의 대표적 작품이다.
한국 소설사의 전통에서 이상 문학의 비범성을 부각시키고 한국 소설의 전통시학에 변혁을 가져온, 문학사상 획기적인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식 청년인 ‘나’는 놀거나 밤낮없이 잠을 자면서 아내에게 사육된다. ‘나’는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자아의식이 강하며 현실 감각이 없다. 오직 한 번 시행착오로 아내를 차지해본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아내’의 남편이었던 적이 없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뒤에 아내의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아내에 대한 욕구를 대신한다. 아내는 자신의 매음 행위에 거추장스러운 ‘나’를 ‘볕 안 드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수면제를 먹인다.
그 약이 감기약 아스피린인 줄 알고 지내던 ‘나’는 어느 날 그것이 수면제 아달린이라는 것을 알고 산으로 올라가 아내를 연구한다.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수면제를 한꺼번에 여섯 개씩이나 먹고 일주야를 자고 깨어난다.
아내에 대한 의혹을 미안해하며 ‘나’는 아내에게 사죄하러 집으로 돌아왔다가 그만 아내의 매음 현장을 목도하고 만다. 도망쳐 나온 ‘나’는 쏘다니던 끝에 미스꼬시 옥상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물여섯 해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 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고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자기 소모적이고 자기 해체적인 모습을 그려, 사회 현실의 문제를 심리적인 의식의 내면으로 투영시킨 문학기법상의 방향전환으로 문학사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이전 1920년대 1인칭소설에서 목격자나 실제 경험자의 보고, 고백이 외면적 표현이나 평면적 구성에 머무르지 않고, 심층심리의 표현이나 입체적 구성의 시도 등의 실험정신을 통하여 내면화되어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현대소설사의 한 분기점이 된다.
구실이 뒤바뀐 부부 관계는 사육되는 남편의 모습을 통하여 일상으로부터 소외된 ‘나’의 가치가 전도된 삶을 은유한다.
일상 세계와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아내와 단절된 상태에서 일상으로부터 차단된 자아분열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자기 구제를 꾀하려는 ‘나’의 역설적인 비상(飛上)은 이상의 실험적인 문학 정신을 바탕으로 형상화되었다.
특히, 식민지 사회의 병리를 개체적인 삶의 모순과 갈등으로 치환시킴으로써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식 및 심리의 내면화 현상은 1930년대 문학사에서 새롭게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