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 이학사 / 2007.10.31
이 책은 1965년 9월과 10월에 도쿄와 쿄토에서 세 차례 행해진 사르트르의 강연을 담은 것으로, 가독성을 돕고 강연의 현장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강연체로 번역을 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출간된 도서들과는 달리 원저작권자인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하여 사르트르 전공자에 의해 새롭게 번역된 것이 특징이다.
샤르트르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주체로서 자신의 소명을 의식하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식인에 대하여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또한, 지식인의 비판적인 기능으로써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층,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피지배계급이야말로 그 어떤 다른 계급보다도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확장된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이기 때문에, 바로 이 피지배계급의 입장에 서거나 또는 입장을 대변할 경우에만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지식인의 판단력에 대한 사르트르의 대답이다.

○ 목차
첫째 날 강연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I. 지식인의 상황
II.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둘째 날 강연
지식인의 기능
I. 모순
II. 지식인과 대중
III. 지식인의 역할
셋째 날 강연
작가는 지식인인가?
I
II
III
IV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1980. 파리 출생으로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외조부 슬하에서 자랐다. 메를로 퐁티, 무니에, 아롱 등과 함께 파리의 명문 에콜 노르말 슈페리어에 다녔으며, 특히 젊어서 극적인 생애를 마친 폴 니장과의 교우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평생의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도 그 시절에 만났다. 전형적인 수재 코스를 밟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그는 항구 도시 루아브르에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일하다가 1933년 베를린으로 1년 간 유학, 후설과 하이데거를 연구하였다.
사르트르는 1938년에『구토』를 출간하여 세상의 주목을 끌며 신진 작가로서의 기반을 확보하였고, 수많은 독창적인 문예평론을 발표하였다.『존재와 무』『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변증법적 이성비판』등을 발표하고『레탕모데른』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차 대전 전후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많은 희곡을 발표하여 호평받기도 했는데, 『파리떼』『출구 없음』『더럽혀진 손』『악마와 신』『알토나의 유페자들』 등은 그 사상의 근원적인 문제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때마다 작가의 사상을 현상화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64년, 『말』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1980년 4월 15일 작고할때까지 끊임없이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 역자 : 박정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랭스대학에서 석사 학위(사르트르 전공)를 받았으며, 파리10대학 D.E.A.(베르그손 전공)를 거쳐, 파리8대학에서 바디우의 지도 아래 들뢰즈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에 귀국하여 대학에서 철학, 미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철학자 들뢰즈, 화가 베이컨을 말하다』(2012), 『마음과 철학』(공저, 2012), 『포스트모던의 테제들』(공저, 2012)이 있고, 번역서로 『들뢰즈─존재의 함성』(2001),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2007), 『지식인을 위한 변명』(2007),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2008)가 있다.
○ 책 속으로
분열된 사회의 산물인 지식인은 그가 이처럼 사회의 분열을 자신 속에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분열된 사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인은 역사적 산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그 어떤 사회도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 사회의 지식인에 대해 불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오로지 그 사회가 만들어낸 지식인만을 갖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이 그들 고유의 모순 때문에 노동계급을 위하여 일한다고 할 때, 그들은 모든 책임을 홀로 떠맡으면서 그 계급에 봉사하는 셈입니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이론가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그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모순도, 비록 그 모순이 명확하게 밝혀지고 이해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남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우리가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지식인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위임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지식인은 실천적인 지식을 가진 대리인이며, 그는 자신의 주된 모순으로 인해서 혜택 받지 못한 계급의 보편화를 지향하는 운동에 가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이 지식인의 것이 아닌 목표, 따라서 지식인으로서는 평가할 권리도 없는 그런 특수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식인을 도구의 수준으로 전락시킨다면, 반면에 혜택 받지 못한 계급은 지식인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목표를 갖기 때문입니다.
지식인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지식인 자신의 모순 속에서 사는 일이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급진주의를 통해 지식인 자신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지식인은 이처럼 그 자신이 지닌 모순 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애초부터 지식인이라는 집단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정밀과학, 응용과학, 의학, 문학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명성을 획득한 후에,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라는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그 개념이 애매하건 명확하건, 또는 도덕주의자이건 맑스주의자이건 상관없이)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자신들의 명성을 남용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입니다. -14쪽
모든 실천은 몇 가지 계기를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 행위란 아직 없는 것(도달해야 할 목표를 말합니다. 즉 최종 분석을 거친 후에 그 분석에 의거해서 삶을 다시 일구어내기 위하여 상황 속에 최초로 주어진 것들을 재배치하는 것)을 위하여 지금 있는 것(변화시켜야 할 상황으로 주어진 현실의 장)을 부분적으로 부정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정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또한 긍정을 동반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정 속에서 우리는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서 아직 없는 것을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직 없는 것의 관점으로부터 출발해서 지금 있는 것을 드러내는 파악 작업은 가능한 한 정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파악 작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이미 주어진 것 속에서 찾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재료에 요구되는 강도는 그 재료가 현실적으로 틀림없이 견디는 압력의 실제 정도를 따라서 정해지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실천은 현실을 드러내고, 현실을 극복하며, 현실을 보존하는, 그리고 현실을 미리 앞서서 변경하는 실천적인 지식의 계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쪽
따라서 지식인이란 자기 자신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실천적인 진리(자기의 모든 규범까지 포함한 실천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와 지배 이데올로기(자기의 전통적인 가치 체계까지 포함한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물론 이 깨달음이 실재적인 깨달음이 되기 위해서는 이 깨달음이 우선은 지식인에게 있어서 그의 직업 활동과 기능의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시작이 이처럼 개인적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깨달음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깨달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즉 이 깨달음은 계급 간의 싸움을 드러내는 깨달음입니다. 또한 이 깨달음은, 지배계급이 자기의 사업을 위해 필요로 하는 진리가 한편에 있고, 지배계급이 자기의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계급에게 주입시키길 원하며 그 유지를 위해 애쓰는 신화, 가치, 전통이 다른 한편에 있다고 할 때, 바로 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유기적인 싸움을 지배계급의 한복판에서 드러내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53-54쪽
실제로 지식인이 사회 전체를 객관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은 사회 전체를 지식인 자신 속에서 지식인 자신이 지닌 근본적인 모순으로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식인이 지식인 자신을 단순하게 주관적으로 문제 삼는 일에만 만족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은 지식인 자신을 만들어낸 정의된 어떤 한 사회 속에 정확하게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59쪽
지식인의 사유는 끊임없이 사유 그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의 사유는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언제나 사유 그 자신을 특이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3쪽
지배계급의 영향을 받아 지식인 자신 속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및 프티부르주아적 사유 방식과 감정을 필연적으로 재생산하는 바로 그 지식인 자신의 계급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인은 자기 고유의 영역 속에서 보편성이 결코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보편성은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보편의 전문가입니다. -64쪽
지식인은 그의 조사를 모든 수준에 걸쳐서 실행하며 또 자신의 사유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수성에 있어서까지도 스스로를 변경시키고자 시도합니다. 이 말은 곧 지식인은 가능한 한 자기 자신 속에서 그리고 타인들에게서 인격의 진정한 합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 인간 각자가 자신의 활동에 부과된 목적의 회복(이렇게 회복될 때 그것은 이제 또 다른 목적이 될 것입니다)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외적으로는 계급 구조가 낳은 사회적 금기를 제거하고 내적으로는 심리적 억압과 자기비판을 제거함으로써 소외 현상을 없애며 사유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7쪽
진정한 지식인은 그 자신이 급진적이라는 점에서 자기가 도덕주의자도 아니요, 이상주의자도 아님을 압니다. 예를 들어 그는 베트남의 유효하면서도 유일한 평화는 눈물과 피의 값을 치러야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그 평화는 미군의 철수와 폭격의 중지에 의해서, 따라서 미국의 패배에 의해서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가 지닌 모순의 본성 때문에 진정한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 속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의 갈등은 모두가 다 – 그것이 계급 간의 갈등이든 또는 국가 간의 갈등이든 또는 인종 간의 갈등이든 상관없이 –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지배계급의 억압으로부터 비롯된 특수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진정한 지식인은 그 자신이 곧 피억압자임을 의식하고 있는 피억압자라는 점에서 결국 그 또한 피억압자의 편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75-76쪽
지식인은 고독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지식인에게 무언가를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모순 중의 하나입니다 – 그는 다른 사람들 또한 함께 해방되지 않으면 그 자신도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 고유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체계에 의해서 이 목표가 끊임없이 도난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는 지배계급에까지 확장되어서 나중에는 지배계급의 구성원들마저도 그들에게 속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목표를 위하여, 즉 근본적으로 이익을 위하여 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고유의 모순이 결국에는 객관적인 모순의 특이한 표현임을 깨닫게 된 지식인은 이러한 모순에 맞서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77쪽
지식인과 함께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인가는 지식인이 하는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지식인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지식인 자신의 모순 속에서 사는 일이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급진주의를 통해(즉 진리의 기술을 환상과 거짓에 적용함으로써) 지식인 자신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지식인은 이처럼 그 자신이 지닌 모순 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는 것입니다. -105-106쪽
롤랑 바르트는 글쟁이와 작가를 구분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글쟁이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합니다. 작가는 공통의 언어의 수호자이지만, 그는 글쟁이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며, 또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비-기표로서의 언어 또는 정보 왜곡으로서의 언어입니다.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의미 작용과 비-기표를 수단으로 취하면서, 단어의 물질성에 의거하는 작업을 통해 그 어떤 언어 대상을 생산하는 장인인 것입니다. -122쪽
글을 쓰는 것이 소통하는 것이라면, 문학적 대상은 언어를 넘어선 소통과 같은 것으로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비록 단어들에 의해서 생산되었지만 다시 단어들에서 의해서 닫혀진, 의미 작용을 하지 않는 침묵을 통해서 문학적 대상은 언어를 넘어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적 이야기입니다.”라는 말은 곧 “당신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위하여 말을 합니다.”를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제 문학적 대상이 독자와 소통해야 하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 바로 이 침묵하는 비-지식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탐구를 위한 방법은 유일합니다. 그것은 곧 문학작품 속에서 의미 작용을 하는 내용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내용을 둘러싸고 있는 근본적인 침묵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123-124쪽
작가가 왜 공통의 언어의 전문가인지, 즉 최대한의 정보 왜곡을 내포하는 언어의 전문가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물음을 통해서입니다. 단어는 우선 세계-내-존재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단어는 희생된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단어를 넘어서 단어의 의미 작용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때 단어의 의미 작용은, 일단 그 의미 작용이 한번 이해된 후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즉 다른 단어와 함께 표현될 수 있는 다가적(多價的)인 언어도식이 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단어는 물질적인 실재성이기도 합니다. 단어가 단어 자신에게 부과하는 객관적인 구조, 의미 작용을 희생시켜가며 언제나 단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구조를 가지는 것은 이와 같이 단어 그 자체가 물질적인 실재성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중략) -141-142쪽
작가가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기로 했다면, 작가의 이 선택은 단어가 지니는 이와 같은 물질적인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바로 이 물질적인 무거움 때문에 한 선택입니다. 작가의 예술은, 가능한 한 정확한 의미 작용을 단어로부터 빼내어 자유롭게 풀어놓음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단어의 물질성 위로 끌어들이는 것, 그리하여 의미가 주어진 사물이 단어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동시에 바로 그 단어의 물질성 속에서 육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143쪽
언어는 한편으로 보면 우리를 동일인으로서, 즉 의도적으로 소통하는 주체로서 연결시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언어가 우리를 동일인으로서 연결시키는 한에 있어서, 언어는 또한 타인으로서의 나를 타인으로서의 다른 사람에게 연결시킵니다. 작가의 목적은 결코 이 역설적인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적은 오히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의 언어-내-존재를 그의 세계-내-존재에 대한 표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145쪽
작가의 참여는 공통의 언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정보 왜곡의 부분을 활용함으로써 소통이 불가능한 것(체험된 세계-내-존재)을 소통하는 일을 겨냥합니다. 또 작가의 참여는 전체와 부분 사이에서, 전체성과 전체화 사이에서, 세계와 작품의 의미로서의 세계-내-존재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을 겨냥합니다. 이처럼 작가는 그의 직업 자체 속에서 특수성과 보편적인 것의 모순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중략) -156쪽
작가는 자신의 내적인 과업 속에서, 지평선상에서 삶을 확인하는 보편화를 암시해가면서 그 자신이 직접 체험의 차원 위에 머물러야 하는 의무를 발견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다른 지식인처럼 우연히 지식인이 된 게 아닙니다. 그는 본래부터 지식인인 것입니다. 작품 그 자체가 작가로 하여금 작품을 벗어나서 이미 다른 지식인이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실천-이론적 차원 위로 옮겨 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작품은 우리를 짓누르는 세계 내에서 존재를 – 비-지식의 차원에서 –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품은 절대적인 가치로서의 삶을 체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자 다른 모든 자유에 호소하는 그 어떤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56쪽
○ 출판사 서평
– 지식인의 종말이 다가온다?
언제부터인가 전 세계적으로 지식인의 종말이 회자되고 있다. 첫째, 가깝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산업의 눈부신 발달이 지식인의 끝을 재촉하는 듯이 보인다. 즉 모든 사람이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손쉽게 획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적어도 뭔가 “지식”이라는 것이 있어야 지식인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한다면, 지식인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은 이처럼 과거와 같이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적인 앎의 대상이 되었으며, 또 부단히 되어가고 있다. 네이버, 다음, 야후, 구글 등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모든 지식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주는 마당에 지식은 결코 더 이상 지식인을 정의해주는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1990년대 이후로 대학에 꾸준히 강요되어왔고, 또 대학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학문 자체가 더 이상 지식 학문이 아닌 정보 학문이 되어버린 현상 또한 지식인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즉 오로지 자본에만 봉사하고 자본에만 복종하는 정보 전문가가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양산됨에 따라서 지식인이 점차 소멸하게 된 것이다. 셋째,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의 전통이 종말을 고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 또한 우리로 하여금 지식인의 최후를 이야기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프랑스 리옹대학의 교수 레지 드브레는 그의 책 『지식인의 종말』에서 오늘날 지식인이 앓고 있는 중병 5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그들의 허위, 위선, 직무 유기, 무력함을 통렬히 비판한다.
1.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2. 연구도 안 하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3. 여전히 사회의 도덕을 선도한다고 믿는 “도덕적 자아도취증”
4.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
5. 자신의 이름이 잊혀질까 두려워 매스미디어의 장단에 맞추어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 “순간적 임기응변증”
– 이 책의 내용: 사르트르의 지식인론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은 그 이론적 기초를 맑스주의에 두고 있다. 우선 적대적 두 계급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계급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설정하고 지식인은 그 두 계급 사이의 중간층에 위치시키는 점이 그렇고,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을 통해서, 그리고 모순과 소외 현상을 통해서 지식인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점이 그러하며, 노동자계급을 계급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계급으로 고려하면서 지식인의 목표를 노동자계급의 목표와 일치시킬 것을 주장하는 점이 그렇다. 따라서 지식인이 수행해야 할 기능 또한 당연히 이와 같은 맑스주의적 구도를 따라 정해진다.
첫째, 지식인 자신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중간층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지식인은 이로부터 파생되는 자신의 모순적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이 모순적 삶을 극복해야 한다. 이때 모순적 삶을 극복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를 유지시켜주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실제로는 거짓된 보편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이 폭로를 통해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착취 관계를 밝혀 드러내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로 귀결된다.
둘째, 지식인은 이처럼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모순적 삶뿐만 아니라 지식인 내부의 모순적 삶 또한 극복해야 한다. 한편으로 보면 지식인은 지배계급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지배계급이 주입시키는 특수주의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식인의 전문성은 언제나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식인은 자신에게 주입된 특수주의,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서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특수주의에 대한 부인 자체이기도 하다. 지식인은 이처럼 그의 보편주의적 전문성과 지배계급의 특수주의가 자신 속에서 항구적으로 싸운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싸움, 즉 지식인 자신의 내적인 모순에 의해서 정의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지식인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모순적 삶을 극복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자기 내부의 모순적 삶을 극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외적으로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끊임없이 보편적인 것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셋째, 지식인은 계급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노동자계급과 연대하면서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서 공동으로 투쟁해야 하며, 더 나아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자생적(유기적) 지식인이 배출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과 분쟁에 참여해야 한다. 즉 지식인 자신이 속한 사회의 계급적 갈등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갈등, 인종 간의 갈등 등에도 참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볼 때 이 갈등은 모두가 다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 이 책의 특징
.이 책은 1965년 9월과 10월에 도쿄와 쿄토에서 세 차례 행해진 사르트르의 강연을 담은 것으로, 가독성을 돕고 강연의 현장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강연체로 번역을 하였다.
.이 책은 원저작권자인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하여 처음으로 번역, 출판하는 책이다. 기존에 허술한 번역으로 국내에 출판된 해적판이 여러 권 있었으나, 이 책은 사르트르를 공부한 전문 학자가 완전히 새롭게 번역한 책이다.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 될 수 있으며 지식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확장된 독자층, 즉 보다 확장된 잠재적 지식인을 염두에 두면서 그에 맞추어 번역을 하였다.
.실제로 이 책은 고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번역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또 중요한 학문적 용어가 나올 때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친절한 주석을 달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