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무 목사의 주일묵상
사람을 잡는 종교
종교라는 세상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지친 인간의 목에 걸려 흔들릴 때
성스러운 이름으로 가려진 얼굴엔
참아온 눈물이 흘러내려,
사람을 세우고 살려야 할 거룩함이
어찌하여 사람을 숨 막히게 속박하려 하는가.
단단한 율법의 성벽과
교리에 갇힌 어두운 동굴 안에서
허례와 형식이 버거운 마음은
낡은 질서가 무너져 내린 자리를 바라보며
진정한 복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할 뿐이다.
두려움의 쇠사슬이 아닌
지친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소리,
무릎 꿇리는 순종보다
서로를 세우는 열린 사랑의 문이 그리워진다.
사랑으로 상처 입은 가슴에 손을 얹고
외로운 이의 이름을 불러 주며
눈물의 무게를 서로 나누고 이해하고 싶다.
겨울이 길어도 봄을 가둘 수 없듯이
인간을 향한 하늘의 따뜻한 마음은
기어이 행악의 어둠을 벗겨내고 말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출발점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까지로 이어져
소박하고 따스한 마음의 본향을 바라보며
비로소 나, 절망의 굴레를 벗고
소망의 예수 복음만으로 풍요한 삶을 펼치련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양심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놓여 있다. 문제는 죄를 짓는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다기보다, 잠시 하나님을 잊는다는 데 있다.
만일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누군가와 로맨스를 나누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간음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의식한다면, 그 관계를 가볍게 시작할 수 있을까. 도둑질하려는 손도, 속이고 거짓말을 하려는 입술도, 남의 것을 탐하고 빼앗으려는 마음도, 그것이 단지 사람에게 들키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임을 생생히 안다면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죄는 언제나 이것쯤이야, 나는 괜찮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죄는 결코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거짓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탐욕은 공동체를 병들게 하며, 불효는 가정을 아프게 하고, 간음은 사랑과 가정을 파괴한다. 모든 죄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도 허물어 버린다.
오늘날 사회는 죄라는 말을 점점 불편해한다. 법만 어기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양심보다 자기 맘대로의 욕망을 앞세우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법은 사람의 행동을 다스릴 뿐이고 양심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린다. 그 양심은 하나님을 의식할 때 가장 바르게 살아난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거룩한 책임감을 품는 것이다. 그 마음이 있을 때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절제하게 된다.
참된 도덕은 감시 카메라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세상이 아무리 죄를 미화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선과 악이 분명하다. 그래서 신앙은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족쇄가 아니라 악으로부터 자신과 이웃을 지키는 울타리이다. 화인 맞은 양심의 회복 없이는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미래의 희망을 보장할 수가 없다.
우리가 매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아주 단순하다. “이 행동이 이 땅의 사람 앞에서뿐 아니라 하늘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한가.” 이 한 가지 질문을 잊지 않고 명심하고 산다면, 우리의 양심은 더욱 맑아지고 우리의 사회 또한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결국 보이는 세상에서도 가장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한상무 목사
(시드니생명나눔교회, smhan2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