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 7월 2일, 명나라의 태조 홍무제 (太祖 洪武帝, 1328 ~ 1398) 타계
명 태조 (明 太祖, 1328년 10월 29일 / 음력 9월 18일 ~ 1398년 7월 2일 / 음력 윤 5월 10일)라는 묘호로도 잘 알려진 홍무제 (洪武帝 朱元璋)는 명나라의 초대 국왕 (재위 : 1368년 ~ 1398년)이다. 본명은 주원장으로 원나라 말기 반원 운동의 핵심에 있었던 홍건적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 홍무제 (洪武帝)
.본명: 주원장 (朱元璋)
.출생: 1328년 10월 29일, 원 호주 종리현 (現 안후이성 추저우시 펑양현)
.사망: 1398년 7월 2일 (69세), 명 남경 응천부 황궁 서궁 (現 장쑤성 난징시 쉬안우구)
.능묘: 효릉 (孝陵)
*초대 황제
.재위기간: 1368년 1월 31일 ~ 1398년 7월 2일
*오왕 (吳王)
.재위기간: 1364년 2월 12일 ~ 1368년 1월 31일
*오국공 (吳國公)
.재위기간: 1356년 8월 5일 ~ 1364년 2월 12일
명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묘호와 시호를 합쳐 태조 고황제 (太祖 高皇帝)라고 한다.
명나라는 일세일원제를 따랐으므로 보통 연호인 홍무를 붙여 홍무제 (洪武帝)라고도 하는데, 창업군주들이 늘 그렇듯 본명인 주원장 (朱元璋)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세력 휘하에 차례로 있으면서 장강 이남의 경쟁자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남경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후 북벌을 단행하여 강북의 원나라를 만리장성 이북으로 밀어내어 천하통일을 완성하였다.
명암이 공존하는 황제로, 왕권 강화를 위해 개국공신을 비롯한 많은 신료들과 그 가족들을 잔혹하게 숙청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원나라 말기의 난세를 극복한 명군이기도 하다.

○ 생애 및 활동
호주 (濠州) 종리현 (鍾離縣) 한족 빈농가문에서 태어나 힘든 성장기를 보내다 10대 후반에 황각사 (皇覺寺)라는 절에서 출가하였다.
탁발승 (托鉢僧)이 되어 여러 곳을 전전하다 20대 초반에 홍건적(紅巾賊)에 들어가 곽자흥의 휘하에서 활약하였고, 곽자흥의 양녀 마씨 (馬氏)와 결혼하였다.
곽자흥의 군대가 분열되자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아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원나라 강남(江南)의 거점인 남경(南京)을 점령했다.
1366년 스스로 오왕(吳王)이라 칭하고 각지의 군웅들을 굴복시킨 뒤 1368년 스스로 자립해 황제에 올라 대명(大明)을 건국했다.
이후 그는 한족 왕조 회복의 기치를 명분으로 하고, 지방관의 행정, 입법, 군사 권한을 분산시켜 서로 견제하게 하는 한편 중서성을 혁파하고 6부 상서들에게 직접 결제받는 등,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황권 강화를 꾀하였다.
반원(反元) 반몽골과 한족의 국가 재건을 기치로 북벌군을 일으켜 직접 지휘, 1388년 몽골족을 만리장성 밖으로 축출하고 중원을 통일했다.
왕조 성립 뒤에는 지역 토호 및 공신세력을 숙청하고 지방관 파견과 제후국 봉지 임명 등으로 중앙집권적 체제를 확립시켰다.
또한 한족의 문화를 부흥시키려 노력했다.
유교 사상에 따라 자급자족 농경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고, 대외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공신들의 대량숙청을 감행하는 비정상적인 공포정치를 펼쳤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시호는 고황제(高皇帝)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