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걷는 기도

걷는 기도 (24)
파라마타 강변 새벽은
빛이 태어나기 전,
침묵이 가장 깊어지는 시간.
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것으로
자신을 말할 뿐.
강 위에 겨울 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수없이 작은 물방울들이
자기를 지우고
하나의 숨결이 되어
새벽을 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 때
그러나 길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흔들린 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안개는 세상을 감추지 않습니다.
멀리 보려는 욕심을
잠시 덮어 둘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당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멀리 보는 눈이 아니라,
한 걸음을 끝내 내딛는 용기입니다.
강은
바다를 묻지 않습니다.
오늘 흘러야 할 만큼만
조용히 흐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아도
숲을 흔들고,
사랑은 보이지 않아도
사람의 영혼을 흔듭니다.
안개가 강을 지우자,
노란 희생잎(Sacrificial leaf) 하나가
먼저 나를 바라봅니다.
먼리 있던 풍경은 사라지고,
가까이 있던 생명이
비로소 내 이름을 불러 줍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은 거대한 기적보다
작은 숨결 속에,
한 방울 이슬 속에,
한 사람의 미소 속에
더 오래 머무시는 분이심을 압니다
.
새벽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침묵으로 빛을 낳습니다.
빛은 안개와 다투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비추고,
안개는 말없이 물러납니다.
당신의 사랑도 그러합니다.
이기려 하지 않고,
다만 세상을 밝힐 뿐입니다.
오늘도 나는
답을 찾으려 걷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기 위해 걷습니다.
문득, 한 줄기 빛이 안개를 지나
내 마음에 닿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길의 끝에서
당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걷는
이 새벽길 자체가
이미 은혜였고,
이미 사랑이었습니다.

글, 사진 = 전현구 목사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걷는기도(24)의 배경음악 : Spiegel im Spiegel for Cello and Piano (Arvo Pärt)
20260707 교회 서재에서, 匍越의 [걷는 기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