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 잡담과 뒷담화

잡담 (Chat)과 뒷담화 (Gossip)
10여년 전 시드니에서 처음 인문학교실을 시작했을 무렵 우리는 <인문학의 기초>로 부터 출발했었다. 인문학의 목적과 정의, 인문학의 방법론과 역사를 비롯하여 생각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는가, 같은 문제를 놓고 한 1년 가까이 씨름했었다. 그 후 우리는 <인문학의 주제>를 펼치어 놓고 발제도 하고 책도 읽고 토론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인문학이 주제로 삼고 있는 것들은 퍽 여러가지이지만 특별히 우리는 <사람, Saram>을 가지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 존재는 무엇인가?> 하면서 여러 번에 걸쳐 열심히 공부했다. Homo erectus 직립적 인간 / homo sapiens 생각하는 인간 / homo habilis 도구를 쓰는 인간 / homo movens 이동하는 인간 / homo aestheticus 심미적 인간 / homo artex 예술적 인간 / homo politicus 정치적 인간 / 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 / homo duplex 이중적 인간 / homo technicus 기술적 인간 / 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을 거처 homo hundred 백세인간 / 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쓰는 인간에 이르기 까지 30여개도 더 되는 인간에 대한 다양한 개념들을 통하여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갖었었다. 그 때 우리는 거이 3백여권이 넘는 <추천도서 목록 Bibliography>를 만들어 우리교실의 권장도서로 삼았다.

이즈음 나는 그 때 추천했던 책 중에서 마이클 가자니가 (Michael S. Gazzaniga)가 쓴 <왜 인간인가? Human : The Science Behind what makes your Brain Unique>를 다시 펼쳐들었다. 미국 칼리포니아대학 (UC)의 심리학과 교수이며 세계적 뇌과학자요 신경과학자로 알려진 가자니가가 쓴 이 책은 2008년에 처음 출간 되었으며 한국어로는 2009년 번역가 박인균선생이 옮겨 추수밭에서 초판이 나왔다.
4부, 9장으로 되어져 있는 이 책에서 저자가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인문학자들과 우리 인문학친구들이 문제로 삼는 것과 흡사하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른 동물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것으로 오직 인간들만이 지니고 있는 인간고유의 특성과 능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자니가는 560여 쪽이 넘는 이 방대한 책에서 자신의 전공에 따라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의 뇌가 그렇게 되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과는 구별되는 여러가지 특성들이 있다. 그는 정치-사회적 관계, 윤리 도덕적 태도, 감정을 다루는 기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창조해 나가는 능력, 특별히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예술적 감성과 능력은 그 어떤 동물도 결코 모방하거나 따라올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지닌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써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요소>라고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가자니가는 이 모든 <인간 특유의 인간됨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인간이 지닌 뇌>의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뇌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짖게 하는 고도의 사회적 행동은 <인간이 지닌 뇌는 다른 동물들이 지닌 뇌와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제 1부 <인간, 그 최소한의 조건>에서 가자니가는 인간의 뇌 자체의 질량이 크거나 뉴런의 숫자가 엄청 많거나 전두엽이 뛰어나게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대신 그는 인간의 뇌는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선천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모듈, Module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가자니가는 이렇듯 과학이나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모듈> 개념, 즉 과학적, 공학적 개념을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심성에다 연결 시킴으로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요소>는 인간의 뇌가 미치는 영향이라고 본다.
제 3부 <인간, 그 영광의 조건>에서는 예술을 논의한다. 가자니가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 만이 지닌 고유한 특성은 예술>이라고 본다. 인간은 음악, 미술, 시, 소설, 희곡, 건축, 소리 같은 것을 통하여 현상과 본질을 함께 찾아간다.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오직 인간 심성의 경향성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세포의 도움, 뇌신경계의 역활을 통하여 추구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제 4부 <인간, 그 한계를 넘어서>에서도 가자니가는 오늘날 우리는 <파이보그, fyborg>의 단계를 넘어서 <사이보그, cyborg>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모든 과학기술은 파이보그, 즉 과학적 단계를 넘어서서 사이보그, 즉 인간상호간의 공감과 연대, 사랑과 협동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마음과 심성에 의해서만 가능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세포가 인간의 심성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이루어 진다는 것이 가자니가가 이 책에서 펼치는 주장이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특별히 흥미를 갖는 파트는 제 2부 <인간, 더불어 살기의 조건>이다. 다른 파트도 이런 논리 위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특히 여기에서 가자니가는 인간이란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메카니즘을 지님으로 다른 동물들과는 구별이 되는데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보아온 긍정적 요소 이외에 부정적 요소도 함께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잡담, 뒷담화, 속임수, 사기의 기술 같은 것들이다. 인간사회는 집단화를 거듭하면서 그 관계가 아주 복잡해지게 되어서 상호협력 만이 아니라 상호 갈등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고 차별화하는 요인 중에는 이와 같은 잡담과 뒷담화, 거짓과 기능적 사기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인간 집단 속에는 윤리적, 도덕적 판단이나 이성적 사고와 이타주의적 행위, 공감하는 마음, 존경심, 신뢰, 협동, 희생, 충성, 그리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도덕적 모듈 (module)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집단은 타인에 대한 경멸과 분노, 배타심과 미움, 불신과 거짓에 이어 자기 중심주의와 탐욕 같은 비도덕적 모듈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런데 도덕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 사회는 비도덕적이고 비과학적인 것들도 함께 성장시켜 왔다. 우리는 고도의 과학기술과 함께 고도의 악도 함께 만들어 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가자니가는 인간집단의 이런 부정적 요소들도 모두가 인간의 뇌세포가 만들어 놓은 결과라고 본다. 인간의 뇌세포는 좋은 역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은 잡담을 즐기는 동물이요, 뒷담화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들이 나누는 모든 대화의 약 80%는 잡담이다. 건설적 대화는 20%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인간의 뇌세포가 그래야만 인간은 행복하고 평안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잡담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오히려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잡담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지금 보다 더 무서운 혼란과 무질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 가자니가의 말이다. 적당한 잡담들이 우리 사회와 우리들의 관계를 이만큼이라도 든든하게 붙잡아 주고 있다. 잡담만이 아니라 뒷담화와 험담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통적 사고로 볼 때, 이런 것들은 협오스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뒷담화와 속임수란 인류 모두가 다 죽고 사라지기 전 까지는 결코 없어질 수가 없는 것들이다. 진실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불가능한 것 처럼 위선과 가식이 없는 세상도 결코 가능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적 속임>과 <도덕적 위선>은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고 인간관계를 지속 시켜 가기 위해서 인간의 뇌세포가 창조해 낸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드리고 긍정적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자니가에 의하면 잡담과 뒷담화는 인간만이 지닌 특성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잡담이나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잡담을 하고 뒤에서 수군대는 것은 당신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특성은 인간의 뇌세포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 보다 비교적 잡담이나 뒷담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동시에 잡담이나 뒷담화를 적게 하는 편이라고 해서 고상한 척 해서도 않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잡담을 계속하고 뒷담화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팔자요 운명이다. 가자니가의 거듭된 결론이다 <인간들이 이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모두 다 우리 인간의 뇌세포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즈음 나는 정치, 종교를 포함하여 여러 부분에서 전보다는 잡담이나 뒷담화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늙어가면서 아마 뇌세포의 기능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홍길복 (2026.8.24)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