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수치심은 공감을 견디지 못합니다
상담실에서 한 내담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자신의 수치스러운 경험을 털어놓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습니다. 얼굴은 굳어 있었고, 혹시라도 판단받거나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오래전 제 자신의 수치스러운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내용은 달랐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음을 나누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내담자가 말했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 한마디와 함께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수치심이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공감은 그렇게 사람을 살립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의 책 *『수치심 권하는 사회』*가 떠올랐습니다. 원제는 I Thought It Was Just Me, 우리말로 하면 “나만 그런 줄 알았다”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수치심의 본질을 잘 보여 줍니다.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은 비밀, 침묵, 그리고 비난을 먹고 자란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수치스러운 경험을 숨깁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향해 말합니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수치심은 어둠 속에서 점점 더 커집니다.
하지만 수치심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감(Empathy)**입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안전한 사람에게 털어놓고, 그 사람으로부터 “나도 그런 적이 있어.”,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는 공감의 말을 듣는 순간, 수치심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괴물처럼 커졌던 감정도 누군가와 연결되는 순간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수치심은 죄책감과도 다릅니다.
죄책감은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며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치심은 “내가 잘못된 사람이다.”라고 속삭입니다. 행동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을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신을 숨기게 하며, 깊은 고립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때로는 알코올이나 도박, 인터넷 중독과 같은 여러 문제의 밑바탕에도 이러한 수치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치심은 대부분 어린 시절 가까운 사람들의 말과 태도 속에서 시작됩니다.
부모나 교사, 혹은 중요한 어른의 무심한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에는 오래 남습니다.
“왜 그것밖에 못하니?”
“너는 정말 창피하다.”
“너 때문에 망신당했다.”
이러한 말은 행동을 바로잡는 훈계가 아니라, 아이에게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실수는 시간이 지나 잊혀져도, 그때 느꼈던 수치심은 평생 마음속에 남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어린 시절 교회에서 한 어른에게 “지저분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말일 수도 있지만, 어린 마음에는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행동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브레네 브라운은 이러한 수치심을 극복하는 힘을 **’수치심 회복탄력성(Shame Resilience)’**이라고 말합니다. 먼저 자신의 수치심을 알아차리고, 완벽주의와 사회적 기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치유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또한 사람을 통해 회복됩니다.
혹시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둔 수치심 때문에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더 이상 혼자 견디지 마십시오. 당신을 판단하지 않고 진심으로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수치심은 침묵 속에서는 자라지만, 공감 속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그리고 치유는 누군가와 연결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서미진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