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종교개혁가 하인리히 불링거 (Heinrich Bullinger, 1504 ~ 1575)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1504년 7월 18일 아르가우 주 브렘가르텐에서 태어났다. 에메리히에서 수학하면서 공동 생활 형제회Brethren of the Common Life의 영향을 받았으며 15세에 쾰른 대학교로 옮겨 인문주의와 교부 연구에 몰두했다. 1523년 귀국하여 취리히 주 카펠 시토회 수도원 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이 시기 츠빙글리를 만나 그의 신학을 연구했다. 1529년 전직 수녀 안나 아들리슈빌러와 결혼했으며 같은 해 고향 브렘가르텐에서 아버지의 후임 목사가 되었다. 1531년 카펠 전투에서 츠빙글리가 전사하자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교회 수석 목사이자 취리히 교회 지도자로 임명되어 157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4년간 봉직했다. 한 주에 두세 차례 정기적으로 설교했으며 많은 설교가 출판되었다. 각국 군주들과 신학자, 목사, 정치인들에게 1만 2천 통 이상의 서신을 보내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영국 청교도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16세기 영향력 있는 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루터, 칼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그 중요성을 재평가받고 있다. 1536년 오스발트 미코니우스, 시몬 그리나이우스와 함께 루터파와 츠빙글리파의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의 산물인 『제1 헬베티아 신앙고백(제1 스위스 신앙고백)』Confessio Helvetica Prior을 작성했으며 이후 1566년 홀로 작성한 『제2 헬베티아 신앙고백(제2 스위스 신앙고백)』Confessio Helvetica Posterior는 스위스, 헝가리, 보헤미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채택된 개혁파의 가장 포괄적인 신앙고백으로 개혁파 전통의 이정표가 되었다. 1549년 칼뱅과 함께 성찬에 관한 ‘취리히 합의문’Consensus Tigurinus을 작성하여 츠빙글리파와 칼뱅파의 통합의 토대를 놓았으며 이 문헌은 이른바 ‘개혁파 전통’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또한 개혁 교회가 초기 교회의 가르침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논증하기 위해 애썼으며 이른바 ‘언약주의’Covenantalism의 선구자로서 구약, 신약의 단일 언약 개념을 전개하여 이후 개혁파 언약 신학의 토대를 놓았다.
주요 저술로 『제1 헬베티아 신앙고백』Confessio Helvetica Prior(공저), 『제2 헬베티아 신앙고백』Confessio Helvetica Posterior이 있으며 취리히 신학 출판사Theologischer Verlag Zürich에서 3부로 구성된 『하인리히 불링거 전집』Heinrich Bullinger Werke를 출판 중이다. 한국에는 『하인리히 불링거의 교회론』(합신대학원출판부), 『하인리히 불링거의 성례론』(합신대학원출판부)이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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