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독서발제 (2026년 9월 17일)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지음
발제 (6-8장): 최철호
제 6장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가: 포도주 같은 건축
과거 도시에는 상하구도 시설이 없었다. 조선시대때 주거들은 한강의 지류하천을 따라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실개천 주변으로 주거들이 들어서게 되고 그 옆으로 사람과 말들이 지나다니면서 도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시대의 도시는 수변공간 주변으로 빨래도 하고 상하수도 시설로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볼 수 있는데, 이후 근대에 이르러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하천의 위생문제가 심각해지고 동시에 도로의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북의 도로망은 많은 부분이 구불구불한 자연하천과도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작가는 건축가는 사회와 삶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는 건축물을 디자인해서는 안된다고 얘기한다. 건축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걸맞는 환경을 연출해 주기 위해서 건축이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너무 부족해도 안되지만 너무 과해도 안 되는 것이 건축이다.
또한 좋은 건축물은 포도주와 같다. 같은 종자의 포도라도 생산되는 땅의 토양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생산되고, 같은 밭이라도 그 해의 기후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만들어지며, 똑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포도주를 담그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포도주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서 세상에 단 하나의 포도주가 완성되듯이 건축도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땅위에 특별하게 주어진 프로그램에 특정한 건축가가
개입하여 단 하나의 디자인이 나와야 한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작가는 어떠한 건물을 짓든 그 건축물이 들어서는 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곳이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제대로 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주어진 땅에 대한 이해와 그 땅 위에서 일어날 프로그램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건축가는 경제, 심리, 인간행동, 문화, 기술, 각종 사회 현상 등 여러 가지 요소들간의 관계망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거미집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으로 작업해야 한다. 그 이후에 만들어져야 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삶이 우리 건축가가 궁극적으로 바라보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지향점이다.
지혜로운 해결책 예시 1. 뉴욕 시티콥 센터에는 도시적 사고, 경제적인 혜안, 건축가로서 타협과 중재능력, 창의적 생각, 구조적 기술력, 법규의 기발한 활용, 친환경적 사고 등 여러 장점들이 종합된 건축물이다. 제한된 규칙내에서 건축가의 창의적인인 디자인을 통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 대표적인 예로 여겨진다.
예시 2. 베트남 기념관은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기억을 최소한의 건축적 장치를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주변 컨텍스트를 이용하여 기가 막힌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최고 기념관으로서 역사와 땅과 사람을 이용한 디자인의 백미로 평가받는다.![전자책] [대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 유현준 | 을유문화사 - 예스24](https://image.yes24.com/goods/140256206/XL)
제 7장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작가는 이 장에서 교회라는 종교 건축물을 통해 건축 공간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은 단순히 문이 무겁거나 출입구가 불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간이 일반적인 일상 공간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시의 공간은 대부분 목적이 분명하다. 상점에는 물건을 사러 들어가고, 식당에는 밥을 먹으러 가며, 사무실에는 일을 하러 간다. 따라서 공간의 입구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교회는 조금 다르다. 교회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은 ‘내가 이곳에 들어가도 되는가?’라는 심리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즉, 건축적 경계가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 심리적인 경계로 작용한다.
이러한 특성은 종교 건축의 역사와 공간 구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서양의 성당이나 교회는 높은 천장, 거대한 규모, 수직으로 솟은 구조, 어두운 내부와 제한된 빛 등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상대적으로 작게 느끼도록 만든다. 밖에서 보았을 때도 높은 탑과 거대한 건물은 일상적인 주택이나 상업시설과 구별된다. 이러한 공간적 장치는 인간에게 경외감과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단순히 종교적인 상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건축가는 공간의 크기, 높이, 빛, 동선, 시선의 방향 등을 조절함으로써 사람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높은 천장은 인간을 작게 느끼게 하고, 위쪽으로 들어오는 빛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한다. 결국 건축은 단순히 사람을 수용하는 그릇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유도하는 장치가 된다.
저자는 이러한 원리가 교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현대의 도시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공간을 경험한다. 거대한 기념관이나 박물관, 정부청사, 백화점, 심지어 현대적인 상업시설에서도 사람의 동선과 시선, 체류시간을 유도하기 위한 건축적 장치가 사용된다. 즉, 종교 건축에서 발전한 공간의 심리적 효과가 현대 도시와 건축에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결국 “공간은 사람의 행동을 만든다”는 저자의 일관된 생각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공간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간의 형태와 분위기, 동선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교회에 들어섰을 때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행동하게 되는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교회의 출입구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 어떻게 사람에게 특정한 감정과 행동을 유도하는가, 그리고 도시의 공간이 인간의 심리와 삶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이 장을 통해 저자는 건축을 단순한 건물의 외형으로 바라보기보다 인간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적 장치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교회는 그 원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적인 도시 공간 역시 무심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과 관계를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제 8장 우리는 왜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할까
공원의 역사
2천년전 로마는 상수도 시스템을 만들어서 시대를 대표하는 효율적인 도시 로마를 만들었고, 파리의 경우에는 하수도 시스템을 만들어서 순환계에 더 효율적인 도시를 만들어 세계를 선도했다. 비슷한 시시 런던은 세계
최초로 도심 공원인 하이드파크를 만들어서 새로운 도시 유형을 만들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했다.
산업혁명시기 급격하게 늘어난 도시 노동자가 열악한 공장에서 일할 때 받는 충격과 비위생적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배경에서 도심속에 자연을 도입하는 도심공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공원은 석탄 매연에 찌든 런던의 허파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 이후 보스톤에서는 ‘보스턴 코먼’, 뉴욕에서는 ‘센트럴 파크’가 이어졌고, 이 때부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빌딩숲을 배경으로 한 공원의 자연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물가옆 잔디밭에서 쉬는
모습은 선진국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거실과 골목길
오래전 집앞 골목길에서 앞집 사람과 담소를 나누던 시절 골목은 거실이었다. 각자 집안에 마당이 있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이 거실이었던 것이다. 70년대까지 사람들은 자기 집 앞의 길이라는 외부 공간을 내부 공간처럼 사용했다. 동네 사람들의 거실로, 때로는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사용되던 골목길은 마이카 시대가 오면서 막을 내렸다. 축구를 하던 골목은 집집마다 차가 생겨나면서 주차장이 되었다. 자동차는 우리로 하여금 멀리 있는 공원에는 갈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가까이 있던 마당과 거실같던 골목길을 빼앗아 갔다.
우리가 TV를 많이 보는 이유
마당이 있는 주택이 넓은 평수의 아파트보다 더 넓어보이는 이유는 마당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아파트 거실의 인테리어가 고정되어 있는 반면에 마당은 때로는 비가 오고, 햇살도 비치고, 눈이 내리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는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햇살을 받은 마당과 저녁노을의 마당이 다르고, 밤하늘을 품은 마당은 또 다르다.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기도 하고 바베큐를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이벤트와 날씨는 마당의 얼굴을 항상 바꿔준다.
반면에 모든 게 고정되어 있고 매일 TV보는 일 외에 별다른 일이 없는 거실에서는 더 TV를 바라보게 된다.
적어도 TV속 드라마에서는 이벤트가 일어나고 장면이 바뀌는 모습에 더 큰 화면의 TV를 사게 된다. 아파트 발코니가 있지만 거기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은 제한적이다. 한방향을 바라보는 공간에서는 사람들끼리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하지만 정방향의 공간은 다양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간의 교류는 다양해질 수 있다. 정방향의 마당이 담을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관계성은 다양하다.
주택은 또한 천장의 높이와 모양이 다양한데, 마당으로 나가면 무한대가 된다. 이렇듯 다양한 공간 체험, 이벤트, 날씨 등이 반영된 공간은 다양한 기억으로 저장되고, 이런 기억이 모이면 작은 마당은 더 넓은 집으로 인식된다.
남산과 센트럴파크
센트럴파크 주변에는 느리게 이동하는 4차선 도로가 있고 공원주변으로는 주거공간이 빼곡하게 위치해 있다.
공원 주변에 접해있는 주거와 상업시설은 공원 공간의 성격을 바꾸어 놓는다. 뉴욕시민들은 공원에서 일광욕도 하고, 원반던지기며 야구도 하고, 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주거와 공원이 접하면서 많은 시너지 효과가 있다.
반면에 서울숲은 외롭게 따로 떨어져 있다. 대부분 고속도로에 접해 있다보니 접근성이 떨어져 활력이 넘치기 어렵다.
한편 센트럴파크는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다양한 형태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반면에 서울의 남산과 북한산은 모두 경사져 있어 사람이 서로 마주보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기 어려운 공간이다.
한강과 고수부지
서울의 상징물에 남산과 한강이 그려져 있는 심볼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한강은 서울을 상징하며 그 강폭이며 25 개에 이르는 다리의 갯수와 그 다리위의 교통량까지 계산하면 그야말로 다른 도시와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규모다.
현재 서울시민에게 있는 평지 공원은 한강 고수부지 공원인데, 이는 24 시간 사용가능하며 물가에 위치한 도심공원으로 세계적으로 유일한 공원일 것이다. 최근들어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데이트 방식중 하니는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 낮에 고수부지에 텐트 쳐 놓고 책도 보고 저녁에는 치맥을 먹으면서 논다고 한다. 밤에도 운동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심야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도 있다 한다. 한강에서 치뤄지는 여러 이벤트 행사에 프로모션을 잘 하면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팁이다.

발제 (9-10장): 김동숙
제 9장 열린 공간과 그 적들: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무실은 ‘일하는 장소’ 이상의 공간이다
유현준은 어린아이가 경계 없이 뛰어노는 열린 공간에서 출발해 학교의 교실, 군대, 직장으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삶을 바라본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규칙과 경계를 가진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 가운데 사무실은 현대인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사무실의 형태는 단순히 책상과 의자를 배치한 결과가 아니라 산업화 이후 인간에게 요구된 생산성, 시간 관리, 조직과 권력의 관계가 공간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사무실은 한 시대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시간·질서·생산성과 권력관계가 공간으로 번역된 결과다.
산업혁명은 공간뿐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바꾸었다
농경사회에서 인간은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리듬과 계절에 따라 일했다. 그러나 공장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해야 했다. 시청과 학교의 시계탑은 도시 전체가 같은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도록
하는 장치가 되었다. 런던의 빅벤 같은 시계탑도 이러한 산업사회의 시간 규율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는 휴대전화가 모든 사람을 더욱 정확한 시간 속에 묶어 놓는다. 문명은 시간을 정확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인간은 시간의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되었다.
부장님의 자리와 공간의 권력
전형적인 사무실에서는 상급자가 창문을 등지고 안쪽에 앉으며 직원들은 그 앞에 배치된다. 상급자는 고개만 들면 직원들을 볼 수 있지만 직원은 뒤를 돌아야 상급자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자리의 위치만으로도 조직의 위계가 드러난다. 직원들이 책이나 서류, 모니터를 이용해 자신의 책상 주변에 작은 경계를 만드는 것도 열린 공간 속에서 사적인 영역을 확보하려는 행동이다.
* 누가 누구를 볼 수 있는가, 누가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는가에 따라 공간은 권력의 구조가 된다.
열린 사무실은 정말 자유로운가?
열린 공간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계속 의식해야 하는 곳에서는 쉽게 피로해지고 집중력을 잃는다. 특히 사무실에서는 서로의 행동이 평가와 연결되기 때문에 개방성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대도시의 거리나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과 함께 있어도 서로 모르는 관계이기 때문에 익명성이 자유를 준다. 많은 사람 속에 있으면서도 혼자일 수 있다는 것이 대도시가 주는 독특한 자유다.
자동차와 ‘작은 사적 공간’
저자는 자동차를 현대인이 비교적 쉽게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사적 공간으로 본다. 자동차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고,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꿀 수 있다. 노래방, 비디오방, 모텔처럼 시간을 단위로 사적인 공간을 빌리는 한국의 ‘방 문화’ 역시 고밀도 사회에서 개인이 부족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사무실은 ‘열림과 닫힘’의 균형이다
좋은 사무실은 무조건 열려 있거나 완전히 닫혀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은 혼자 집중할 공간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과 우연히 만나고 자극을 받을 공간도 필요하다. 높은 천장, 비어 있는 공간, 적절한 무질서와 여유는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시간을 일정과 목표로 채우면서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 창의적인 공간에는 협업과 집중, 개방과 프라이버시, 질서와 ‘빈틈’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제 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
모닥불에서 TV까지 – 집의 중심은 어떻게 변했는가?
선사시대 사람들은 동굴의 모닥불 주변에 모였다. 불은 음식을 익히는 도구이면서 가족과 공동체를 한곳에 모으는 중심이었다. 현대의 집에서는 그 기능이 부엌의 불과 거실의 TV 로 나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술과 생활방식은 크게 달라졌지만 잠자고, 먹고, 가족이 함께 쉬는 주거의 기본 기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개인의 자의식과 사적 욕망이 커지면서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 요구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카페와 ‘방 문화’ – 도시에서 빌려 쓰는 거실
한국에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개인 공간에 대한 욕구가 커졌지만 고밀도 도시와 비싼 주거비 때문에 집 안에서 충분한 사적 공간을 갖기 어려웠다. 친구나 연인을 집으로 초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카페는 일종의 ‘파트타임 거실’이 되었고, 노래방·PC방·비디오방 같은 공간은 시간 단위로 빌려 쓰는 사적인 방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를 개인적 욕망과 공간적 제약이 만나 만들어 낸 도시적 현상으로 본다.
한강의 만리장성 – 아파트의 모양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
한강은 서울의 중요한 자연자원이지만 많은 시민에게 일상의 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이라기보다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목적지다. 저자는 문제를 판상형 아파트의 외형에서만 찾지 않는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도시의 공공 가로를 끊고 상업가로와 한강 사이의 보행 흐름을 막으면서 하나의 벽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조건 기존 아파트를 철거하고 고층 타워형으로 바꾸는 것보다 도시의 길을 한강까지 연결하고 그 길을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건물의 모양만 보면 철거가 답이 되기 쉽지만, 도시를 ‘관계와 연결’로 보면 다른 해법이 보인다.
돼지와 아파트 – 왜 아파트는 ‘사는 곳’이자 ‘재산’이 되었는가?
저자는 과거 사람들이 남는 식량을 가축에게 먹여 미래의 식량으로 저장했던 것과 현대인이 돈을 부동산에 저장하는 모습을 비교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주거 공간인 동시에 중산층이 재산을 축적하고 노후의
불안을 대비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어 왔다. 그래서 한국의 아파트 문제는 단순한 건축 문제가 아니라 경제, 노후, 욕망과 불안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오래된 것을 부수고 다시 지으려 하는가?
한국의 도시개발은 낡은 것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방식에 익숙하다. 짧은 기간에 도시를 새롭게 만들며 성공한 산업화의 경험이 반복되면서 오래된 건축을 ‘없애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자리 잡았다. 그러나 유럽의 오래된 도시도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쌓이면서 깊이를 얻었다. 오늘의 평범하고 획일적인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한 시대의 삶을 보여주는 역사적 풍경이 될 가능성이 있다.
* 도시재생은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만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축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집은 왜 계속 커지는가?
과거의 한옥에서는 하나의 방이 식사 공간이 되기도 하고 잠자는 방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냉장고, TV, 소파와 각종 가전제품이 늘어나면서 각각의 기능을 위한 공간이 필요해 졌고 집은 점점 커졌다. 가족 수는 줄었는데 집은 커진 것이다. 더 많은 물건을 사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물건을 넣기 위해 더 큰 집을 사고, 그 집을 사기 위해 다시 더 많이 일하는 소비사회의 악순환을 저자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한옥과 아파트 – 공간은 가족관계도 만든다
한옥은 마당과 대청, 여러 방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순환하는 구조다. 반면 현대 아파트는 현관에서 거실과 복도를 지나 각각의 방으로 갈라지고, 방문을 닫으면 다른 공간과 쉽게 단절된다. 아파트 구조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데에는 효율적이지만 가족 구성원 사이의 느슨한 연결을 만들기에는 불리할 수 있다. 저자는 방과 거실 사이에도 창을 두는 등의 방식으로 서로 독립해 있으면서도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집을 상상한다.
* 좋은 집은 가족을 한곳에 강제로 모으는 집이 아니라, 각자의 사생활을 지키면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집일 수 있다.
주택은 건축의 ‘줄기세포’다
저자는 주택을 모든 건축의 ‘줄기세포’에 비유한다. 작은 주택을 다양하게 설계하는 경험이 쌓여 호텔, 공공건축, 대규모 건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은 대규모 아파트 중심으로 주거시장이 성장하면서 젊은 건축가들이 다양한 작은 주택을 설계해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었다. 다양한 작은 건축이 많아질 때 건축가의 경험도 넓어지고 시민의 삶 역시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9·10장을 관통하는 핵심
제9장과 제10장은 사무실과 아파트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다루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공간을 만드는가, 아니면 공간이 우리를 만드는가?’ 사무실의 책상과 시선은 조직의 권력을 만들고, 아파트의 복도와 방문은 가족관계에 영향을 준다. 대규모 단지는 도시와 자연의 연결을 끊기도 한다. 건축은 삶을 담는 수동적인 그릇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관계를 만들어 내는 적극적인 환경이다.
* 좋은 건축과 좋은 도시는 멋진 외관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자유, 관계, 기억과 삶의 방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발제를 마치며 – 공간이 우리를 만드는 방식
여기서 저자는 단순히 “아파트가 나쁘다”라고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가능한 새로운 주거 공간을 생각한다. 후반부의 주택 평면과 ‘줄기세포 주택’에 관한 부분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즉, 개인 공간과 공동 공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공간을 가지면서도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가 중요한 질문이다.
이 책의 9 장과 10 장을 읽으면서 공간이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지금 일하고 있는 도서관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가 일하는 공간도, 우리가 사는 집도, 우리가 걷는 골목도 우리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아주 오래전 간호사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경험했던 것이 기억난다. 원자력병원이라는 좋은 직장에 합격 했다는 기쁨보다 그 공간에서 느꼈던 황량함 때문에 일주일 만에 떠났다. 반면 혜화동의 서울대병원에서는 힘든 병원생활 속에서도 골목길을 걷고, 갤러리와 카페를 찾아다니고, 명륜동 시장을 거닐면서 도시가 주는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에게 있어 ‘도시는 문화다’라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그리고 지금 일하고 있는 도서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크고 화려한 도서관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자연을 조금이라도 이 공간 안으로 옮겨오고 싶다. 식물을 놓고,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일하는 도서관을 스스로 ‘그린 (Eco) 도서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은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잠시 쉬어 가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 공간을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공간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공간이 우리를 만드는 것일까?
시드니인문학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