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설교문 – 2026. 10. 4 (시드니 우리교회)

제목: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본문 : 에베소서 3장 14절 -21절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에베소서 3장 14-21절)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히시길 빕니다. 1968년 제가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처음 두학기 동안 배운 과목 중 하나는 헬라어였습니다. 몇해전 천국으로 가셨지만 그 때 우리들에게 헬라어를 가르쳐 주셨던 박창환목사님은 당시 한국의 개신교 신학교 중에서는 처음으로 헬라어 교본을 지은 분이셨습니다. 아시다싶이 신약성경 27권은 모두 다 헬라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배우는 것은 필수과목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학기 동안 초급 헬라어를 수강한 후 그 다음 학기엔 헬라어로 쓰여진 원전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때 우리가 처음으로 읽었던 책이 에베소서 였습니다. 한글로 된 헬라어 사전 하나도 없던 시절, 우리는 불과 6장 밖에 않되는 이 짧은 에베소서를 읽는데 꼽박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때 처음으로 사서 읽었던 그 헬라어 성경책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도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25년 전 시드니 우리교회에서 에베소서 한 책을 가지고 꼽박 1년 가까이 주일 낮예배 때 마다 설교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그런 소중한 배움의 추억이 있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총 주제는 <교회란 무엇인가?>입니다. 1장 1,2절의 인사 말씀과 마지막 6장 21절 이하의 축복를 빼고 나면, 에베소서는 처음 1, 2, 3장은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며,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다>라는 말씀을 똑똑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4, 5, 6장은 <그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배와 섬김, 전도와 교육을 포함하여 교회 안에서 성도의교제와 가정 생활, 결혼과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이웃관계, 사회에서의 상하관계> 등등을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본문은 저자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읽는 에베소교회 교우들과 오늘의 독자인 우리 모두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문입니다. 그는 <교회론> 이라 할 수 있는 이론 부분과 그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는 실천편 사이에서 그의 독자들을 위하여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기도문은 이미 앞에서 개역 개정판으로 읽었지만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쉽게 번역된 <표준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릎을 꿇고 어버지께 빕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여, 주님의 풍성한 영광으로 성령님께 명하시어, 여러분들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신구교회가 함께 읽는<공동번역>으로도 한 번 더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기도드립니다. 넘쳐 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힘을 돋구어 주시고 굳세게 해 주시기를 빕옵나이다>
사도 바울의 이 기도문을 좀 자세히 분석해 보면 3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성도들을 강건하게 해 주시고 굳세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는 영안이 열려 깨닫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바울이 드린 이 긴 기도문은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과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건강하게 해 주시옵소서.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믿음의사람들이 되어 튼튼한 믿음 속에서 잘 자라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아침 저도 똑같이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여기에 모인 우리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강건하게 해 주시옵소서, 영적으로 건강하여 병들지 아니하고 튼튼한 영혼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요즘은 어딜가나 건강 이야기가 제일 큰 화두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였다 하면, 건강 이야깁니다. 건강을 염려하고 건강 인사를 나누고 건강을 위한 운동, 음식, 맛집, 비타민 이야길 나누곤 합니다. 친구들 사이의 카톡방도 아침 마다 이곳 저곳에서 온갖 건강에 좋다고 하는 운동과 음식 이야기로 가득채웁니다. 만나고 헤어질 때, 제일 흔하게 나누는 인삿말도 <그 동안도 건강하셨어요? 별일 없으셨지요? 다시 뵐 때 까지 건강하셔요. 평안하세요. 아프지 마셔요> 같은 말들입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는 서로서로 건강과 평안을 비는 인사를 제일 많이 합니다. 백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예전 6,70년대, 우리 한국에 있을 때, 영화배우 박노식씨가 어린 아이들과 같이 잔듸밭에서 공을 차며 놀다가 넘어지면서 무슨 비타민 광고 CF를 하면서 한 말입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우리 아이들 기르다 보면 이런 저런 잔병치례를 많이 합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마다 젊은 부모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그럼 어른들은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야 걱정마라.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다!” 서구 기독교 역사는 2천년이 넘잖아요. 한국교회는 이제 겨우 100년 조금 넘었잖아요. 그러니 거기에 빗대면 한국교회는 이제 대여섯살쯤 밖에 않되는 겁니다. 우리교회를 비롯한 이민교회도 그 긴 서구 교회 역사에 견주면 이제 모두 서너살 정도 밖에 않되지요. 그러니 자주 아프기도 하고 사고를 치고 또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다 <성장통>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은 <아프면서 크는 겁니다> 교회도 크느라고 아픈 겁니다. 넘어지지 않고 걷는 애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파보지 않고 건강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련과 아픔이 없이 성숙해 지는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건강이란 몸과 마음이 온전하여 활력이 있고 병이 없어서 튼튼한 상태>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를 교회에다 적용해 보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도란 겉으로 보거나, 속으로 보거나, 별 탈이 없이, 튼튼하고, 온전하여, 활력이 넘쳐,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추려 보면 3가지 인데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란, 첫째론 병이 없어야 하고 둘째론 활력이 넘쳐야 하고, 셋째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하는 교회를 이르는 말입니다. 교회도 우리네 보통 사람과 꼭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체격과 몸집이 크면 그것을 건강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게 아닙니다. 체중이 100kg, 120kg, 150kg이고 등치가 크고 골격이 장대하고 살이 쩠다고 해서 “그 사람 참 건강해!” 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오히려 걱정하잖아요? 살좀 빼고 체중 좀 줄여야 하는데…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 건물이 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헌금이 많이 나오고 이런 저런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냐? 아닙니다. 과체중인 사람이 하나도 부럽지 않듯이 과체중 교회도 절대로 부러워 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과 그런 교회, 단체, 조직들은 비정상입니다. 어서 체중조절을 해서 다른 작은 교회들을 도와드리며 더불어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허지만 그 반대로 자신을 미화 하면서 작은 것을 정당화해서도 않됩니다. 과체중이 건강을 헤치듯이 저체중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체중이 30kg, 40kg 밖에 않나가면 그것 역시 대단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적당해야 합니다. 체구가 크다고 해서 건강한 것이 아니듯이 교회도 외형만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건강한 교회는 아닙니다. 또 그 반대로 지나치게 저체중이 절대로 건강한 것이 아니듯이 지나치게 작은 교회와 성도들이 건강한 것이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성도들의 이름과 얼굴과 그 심령의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적정 상태를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과유불급입니다. 저는초창기 이곳 시드니에서 천명 이상 모이는 큰 교회에서도 목회해 보았고 또 처음 퍼스에서 한 2,30 명 정도 되는 교회에서도 목회를 해 보았는데 목사 한 사람이 진정으로 내 양들의 이름과 형편과 처지와 신앙 상태를 잘 알고 아침에 그들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하기에 적절한 숫자는 한 2백에서 3백 명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교회이름을 <튼튼한 교회>라고 지은 곳이 여러 곳이나 나타납니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과 미국에도 <튼튼한 장로교회, 튼튼한 감리교회, 튼튼한 성결교회, 튼튼한 침례교회>를 비롯하여 <튼튼한 교회 연구소>도 많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들 건강하고 튼튼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 까지도 <튼튼한 교회>라고 이름을 짖는데 막상 우리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허약한 교회, 병든 교회, 앓는 교회들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작지만 튼튼한 교회도 있고 커도 병든교회가 있습니다. 작아도 건강한 교회도 있지만 커도 암에 걸려서 고생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큰교회 교인들은 자기들은 믿음은 좋다고 생각하는데 작은 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은 항상 초신자라고 생각한다 / 큰교회 교인들은 주인의식이 강한데 작은교회 교인들은 나그네 의식이 크다 / 큰교회 교인들은 별로 한 일은없으면서도 기가 살아 있는데 작은 교회 교인들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기가 꺽이여 있다. / 큰교회 목사가 설교를 길게 하면 말씀이 충만하다고 하고 작은 교회 목사가 설교를 길게 하면 실력도없으면서 말만 많다고 한다 / 큰교회 목사가 설교를 짧게 하면 핵심만 집어주신다고 하고 작은교회 목사가 설교를 짧게 하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 큰교회목사가 성경공부반을 열면 교인들을 잘 훈련 시킨다고 하고 작은 교회 목사가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면 별걸 다 만들어서 괴롭힌다고 한다> 이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세상에서는 크고 많은 것이 선이고 성공이고 위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교회는 그래서는 않됩니다. 세상은 사이즈로 말하고 드러난 것으로 점수를 매기지만, 하나님은 마음과 진실, 심령의 열매로 채점하십니다.
그럼 건강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미국 남침례교회의 목사 Mark Denver 교수가 지은 책 <건강한 교회의 9가지 특색>에 의하면 건강한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특징은 <회심을 체험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십자가 체험, 나 같은 죄인 건지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로 형성된 교회가 진정으로 건강한 교회요, 튼튼한 교회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거품처럼 된 결정적 요인은 껍대기 신자들이 교회의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민교회도 체질적으로 연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로 만나고, 고백한, 개인적 경험이 없이 그냥 교회에 나와 등록하고 세례 받고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허약 체질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 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말이지요. <공동묘지에 무덤이 많이 늘어 났다고 해서 성장되었다고 말해서는 않된다> 사울과 같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리하여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는 체험이 있어야만 비로서 참으로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얍복 나루터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는 체험을 통하여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맞고 자빠지고 넘어지면서도 하나님을 만나 야곱이란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었던 그 밤, 그 체험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빈 배를 몰고 돌아왔을 때 주님의 명령에 따라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 보고 난 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 소이다> 라고 두 손 들었던 베드로의 회심이 있어야만 우리는 실로 건강한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이의 회심스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건강하지 못하고 자꾸만 앓고 비실거리며 흔들리며 세상과 믿지 않는 사람들로 부터 비난을 받는 이유는, 바로 우리 교회의 구성원들이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할 뿐이지, 개인적이며, 인격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이 없거나, 약하거나, 분실 된 데서부터 비롯 된 것입니다.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건강한 신앙인이 되고 우리 교회들이 건강한 교회를 회복하는 길은 처음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해야 우리의 약해진 신앙, 상실된 체험, 병든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물론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하는 데는 요구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는데는 약, 운동, 시술, 수술을 비롯한 여러가지 의료적 방법이, 그 증상에 따라 달리 처방됩니다. 우리 중에는 의사 선생님들과 의료인들이 여러분이 계십니다. 그 분들은 한결같이 약하고 병든 인간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시느라 옴 몸과 마음을 다 하십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의료인들이 보살피시는 정성에 비하면 저는 여러분들의 영적 건강을 보살핀다고 하는 목사로써 그 10분지 1에도 못 미치는 사람으로써 참 미안하고 부끄러울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는 여러분들의 영적 건강 상태를 보살펴야하는 목사로써 우리들의 잃어버린 영적 건강을 회복하는길, 한 가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고져 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잘 먹고 잘 마시면 됩니다. 물 잘 마시고 밥 잘 먹으면 건강해 집니다. 음식이 만병의 약입니다. 비타민, 아닙니다. 영양식, 아닙니다. 식당 밥, 아닙니다. 맛집 기행, 아닙니다. 엄마밥입니다. 집밥입니다. 하루 세끼, 할머니와 엄마와 아내가 차려주는 밥, 그거 잘 먹으면 건강해지고 잃은 건강 찾을 수 있습니다. 예전 우리 어른들은 숫가락 놓으면 그게 죽는 것이라 했습니다. 먹으면 살고 못 먹으면 죽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뭘 먹어야 살고 뭘 못 먹으면 죽을까요? 당연합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설교 말씀입니다. 찬송과 기도 입니다. 예배입니다.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잘 먹어야 다시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니라, 마태 4:4>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하루 세끼 식사 꼭 챙겨드시듯이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반듯이 주일 예배 잘 드리고 영혼의 양식, 거르지 말고 읽고, 보고, 들아야 합니다. 성경말씀 가지고 이래 저래 설명하고 토 달아서 보내는 카톡이나 유트브가 아니라 본인이,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되씹을 때 우리 영혼은 건강해 집니다. 모든 영적 질병은 말씀의 밥맛을 잃을 때 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영적 건강의 회복은 말씀의 밥맛을 다시 찾아낼 때 부터 희망이 솟아납니다. <여러분, 개구쟁이라도 괜찮습니다. 튼튼하게만 자라주십시요.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영혼의 양식, 매일 매일, 매 주일 마다 잘 먹고 잃어버린 건강 회복하시고 날마다 활력이 넘치고 건강하게만 살아주십시요. 이것이 아마도 요즘들어 설교 할 때마다 이게 나의 마지막 부탁일지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드리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심령의 무릎을 꿇고 기도드립니다. 주께서 사랑하시어 몸버리시고 피 흘려 속량해 주신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강건하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날마다 신령한 하늘의 만나, 맛있게 먹게 해 주시사 튼튼한 영혼, 건강한 신앙 속에서 하루 하루 승리하는 삶, 이어가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참되고 영원한 하늘 양식 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 10. 4 (시드니 우리교회)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