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일상에 숨겨진 ‘행복의 지뢰밭’을 걷다
우리는 종종 행복을 아득히 먼 곳, 혹은 거창하고 특별한 성취 속에서 찾으려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삶의 진정한 기쁨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으며, 반드시 거대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닙니다. 시선을 낮추고 걸음을 늦추어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발견해 낼 수 있는 작고 소중한 행복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매일 학교를 오가는 길, 차가운 건축물 벽돌 틈바구니를 비집고 푸르게 솟아난 풀포기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기어이 싹을 틔워낸 그 생명력을 보노라면, 말 없는 자연으로부터 크나큰 인내와 끈기를 배우게 됩니다. 또한 뜰의 나뭇가지 사이에서 들려오는 정다운 새들의 지저귐은 어떤가요. 저마다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조화롭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입가에는 어느새 옅은 미소가 번지고 조화로움이 주는 아름다움에 깊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시선을 위로 향하면 행복의 무대는 더욱 넓어집니다. 끝없이 펼쳐진 높고 푸른 창공을 바라보며 답답했던 가슴을 활짝 펴기도 하고, 캄캄한 밤하늘에 쏟아질 듯 수놓아진 별들을 올려다보며 마음에 깊은 안도감과 경이로움을 맛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위로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따뜻한 연결 역시 일상의 큰 행복입니다. 정다운 사람들과 마주 앉아 소박하지만 따뜻한 칼국수나 된장국 한 그릇을 나누어 먹는 순간, 우리는 그 속에서 뭉클한 기쁨과 행복을 노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루가 저문 적막한 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간 속에 홀로 앉아 묵상과 기도를 올릴 때면, 오롯이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깊은 내면의 평화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곤 합니다.
결국 행복이란, 찾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 삶의 길목마다 널려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발을 딛는 곳곳마다 기쁨이 터지는 ‘행복의 지뢰밭’과도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일상의 지뢰밭을 기꺼이 밟으며, 곳곳에 숨겨진 작지만 위대한 기쁨들을 온전히 누려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 길을 걷다 마주친 작은 들꽃이나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처럼 내 마음을 머물게 한 소박한 순간들을 노트에 짧게 기록해 보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그 위대한 여정을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주는 기쁨, 받는 기쁨
최근 필자는 여러 모임에 참석하며 참으로 따뜻한 경험을 하고 있다. 모임을 주관하는 분들이 참석자들에게 건네는 조그마한 고마움의선물들 덕분이다. 그 크고 작음을 떠나,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정성을 건네받을 때 우리 마음에는 잔잔한 파문이 인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 순간, 우리 뇌의 보상 회로는 활짝 열린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는 도파민을 분비해 쾌락을 안겨주고, 옥시토신을 통해 타인과의 끈끈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채움이 주는 확실한 은혜다.
하지만 우리 삶의 신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받는 기쁨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깊고 영속적인 환희는 바로 ‘나의 것을 내어줄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선배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화장실의 비유는 무릎을 치게 할 만큼 묘한 통찰을 담고 있었다. 매일 아침 변을 볼 때마다 깊은 시원함과 감사가 넘친다는 고백이었다. 육체가 음식을 먹고 (채움) 영양분을 얻은 뒤 찌꺼기를 밖으로 내보낼 때 (비움)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듯, 우리의 영혼과 마음 역시 나에게 주어진 것을 타인을 위해 비워낼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건강을 누리게 된다.
성경은 일찍이 이 비움과 나눔의 역설을 가르쳐왔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는 말씀이나,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38)는 약속은 움켜쥐지 않고 흘려보낼 때 오히려 영혼의 곳간이 가득 차오르는 기적을 말해준다. 흥미롭게도 현대 뇌과학은 이를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는 개념으로 증명해 냈다. 남을 돕고 내 것을 나눌 때, 우리 뇌에서는 마라톤을 할 때처럼 강력한 엔돌핀이 솟구쳐 오르고 뇌의 보상 센터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받음’과 ‘줌’은 결국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완성해 가는 것일까. 우리가 받은 것을 그저 내 안에 쌓아두지 않고 다시 이웃에게 흘려보낼 때, 우리 사이에는 생물학적이고도 관계적인 아름다운 순환이 일어난다.
친한 지인과 밥을 먹는 일상을 떠올려 보자. 오늘 내가 한 끼를 대접하고, 다음번엔 상대방이 내게 한 끼를 산다고 가정해 보자.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물질적으로 계산해 보면 남는 것은 ‘0’에 가깝다. 득실을 따지면 본전이다. 하지만 그 두 번의 밥상 위를 오간 것은 결코 영 (0)이 아니다. 밥을 함께 먹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계산서에는 찍히지 않는 ‘정 (情)’이 남고 ‘사랑’이 쌓인다. 물질은 그저 오갔을 뿐이나, 그 빈자리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끈끈한 소통과 연대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듯,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은 우리 삶의 건강한 호흡이다. 때로는 감사히 받고, 받은 만큼 다시 기꺼이 내어주는 이 끊임없는 소통의 관계 속에서 우리 사회는 더없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일상의 현장에서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으며 맺어가는 이 다정한 관계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진정하고도 찬란한 행복이다. 모두 모두 행복한 주말 하루 되세요.

김병근 목사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시드니성시화운동 직전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