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정치가, 번역가 보에티우스 (Boethius (480년경 ~ 524년경)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세베리누스 보에티우스 Anicius Manlius Severinus. 로마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정치가, 번역가. 480년경 로마에서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485년 집정관을 지낸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멤미우스 심마쿠스의 보호 아래 성장했으며 이후 그의 딸 루스티키아나와 결혼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다.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 치하에서 고위 관직에 올라 510년 단독 집정관, 522년 아들 두 명이 동시에 집정관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같은 해 최고 관리인 시종무장관에 임명되었다. 523년 비잔티움 제국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원로원 의원 알비누스를 변호하다 반역죄로 고발되어 면직되고 투옥된 뒤 524년 파비아 인근 감옥에서 처형되었다. 투옥 기간 중 『철학의 위안』 De consolatione philosophiae (필로소픽)을 저술했다. 로마 가톨릭·성공회·루터교에서 순교자로 공경받으며 로마 가톨릭 축일은 10월 23일이다.
마지막 로마인이자 최초의 스콜라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Categoriae, 『해석학』 De Interpretatione, (『범주론』에 대한 입문서인) 포르피리우스 Porphyrius의 『입문』 Isagoge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주해했는데, 이는 12세기까지 라틴 학자들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저술들이었으며 중세 스콜라 신학의 토대를 형성했다. 또한 포르피리우스의 『입문』에 대한 주해에서 보편자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핵심 논쟁인 실재론 realism과 유명론 nominalism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다섯 편의 「신학 소고집」 Opuscula Sacra에서는 삼위일체론,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분석했는데, 특히 ‘위격’ persona, ‘본성’ natura, ‘실체’ substantia를 엄밀하게 정의하여 이후 중세 신학의 개념적 도구를 제공했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아벨라르두스, 아퀴나스 등이 보에티우스의 신학 소고집을 주석, 강의 교재로 사용했다. 『철학의 위안』은 산문과 시를 번갈아 사용하는 형식으로 운명, 진정한 행복, 섭리, 악의 문제, 신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탐구한 저작으로 명시적인 그리스도교 언급 없이 위로와 희망의 철학을 전개했으며 이것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신자, 비신자 모두에게 폭넓게 읽힐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라틴어 원문은 『라틴 교부 전집』 Patrologia Latina (PL) 63~64권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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