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년 8월 13일, 프랑크족의 왕비이자 성녀 라드공드 (Saint Radegund, 520? ~ 586) 별세
성녀 라드공드 (Saint Radegund, 독: Radegundis, 프: Radegonde , 520년경 ~ 586년 8월 13일)는 6세기 경의 프랑크족의 공주로서 푸아티에에 성십자 수녀원을 건립했다.

– 성녀 라드공드 (Saint Radegund)
.프랑크족의 왕비
.출생: 약 520년경
.선종: 586년 8월 13일
.부모: Bertachar
.배우자: 클로타리우스 1세 (532 ~ 561)
.교파: 로마 가톨릭교회
.시성: 9세기
.축일: 8월 13일
.수호: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지저스 칼리지의 수호성인
성녀 라드공드 (520경 ~ 586)는 6세기 튀링겐의 공주이자 프랑크 왕국의 왕비로, 왕위와 권력을 내려놓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수도원을 세운 성인이다.
9세기경 기독교의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몇몇 잉글랜드 교회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지저스 칼리지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 생애 및 활동
520년 무렵 게르만 지역의 튀링겐의 세 왕 중의 하나였던 베르타카르의 딸로 태어났다.
숙부인 헤르만프리트가 아버지와 싸워 그를 죽이자 그녀는 숙부의 집으로 끌려갔다.
헤르만프리트는 이후 프랑크족의 왕인 테우데리히 1세와 동맹을 맺고 다른 형제인 바데리크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그러나 헤르만프리트는 튀링겐 지역을 손에 넣은 후에 테우데리히와 나누겠다는 약속을 배신하고 만다.
531년 테우데리히는 자신의 동생인 클로타르 1세와 함께 튀링겐으로 돌아와 헤르만프리트를 무찌르고 왕국을 정복했다.
클로타르는 라드공드를 메로빙거 왕조의 본거지인 갈리아로 데려가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라드공드는 클로타르의 여섯 아내 (혹은 정부)의 한 명이 되었다.
클로타르와 그녀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으며, 클로타르 1세가 그녀의 형제를 죽이자 그를 떠났다.
누아용에서 주교의 도움으로 푸아티에에 수녀원을 세우고 신에 귀의하였다.
이 수녀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정되는 유물로 유명하다.

– 사후
잉글랜드의 5개의 사목구 성당이 그녀에게 봉헌되었고, 세인트 폴 대성당과 글로스터 대성당, 리치필드 대성당, 엑세터 대성당의 채플 또한 그녀에게 바쳐졌다.
1191년에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도버 옆에 세인트 레드군드 애비뉴가 세워졌다.
12세기 무렵, 그녀와 성 마리아를 기리는 수녀원 근처에 세워진 학교에서 유래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지저스 칼리지는 그녀를 수호성인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에도 그녀를 기리기 위한 많은 장소들이 있다.
- 사후 공경과 신심의 확산
즉각적인 추앙과 기록: 선종 직후 투르의 그레고리오스와 비서이자 시인인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 등에 의해 삶이 기록되고 성덕이 널리 알려졌다.
푸아티에의 수호성인: 그가 건립한 성십자 수녀원과 무덤은 수많은 순례객이 찾는 성지가 되었으며, 지역 사회의 영적 구심점이 되었다.
근현대적 재조명: 19세기 푸아티에의 에두아르 피에 주교 등에 의해 ‘프랑스의 거룩한 왕비이자 조국의 어머니’로 추대되며 국가적 신심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 수호성인으로서의 역할 및 축일
축일: 8월 13일
수호 대상: 프랑스 및 영국의 여러 교회, 케임브리지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 (과거 성녀 라드공드 수도원 터에 설립), 피부병 및 어려운 결혼 생활 등.
○ 주요 생애 및 업적
출생과 정복: 튀링겐의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프랑크 왕국의 클로타르 1세에게 정복당한 뒤 끌려와 그의 왕비가 되었다.
자비와 봉사: 왕비 시절에도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을 직접 돌보며 자선 활동에 힘썼다.
수도원 건립: 남편과의 갈등 및 종교적 신념을 위해 왕비 자리를 떠나 푸아티에에 성 십자 수녀원을 세웠다.
사후 공경: 거룩한 삶을 인정받아 사후 9세기경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유럽 여러 교회와 대학(예: 케임브리지 지스 칼리지의 전신)에서 기억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