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7월 17일, 프랑스의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 (Jules-Henri Poincaré, 1854 ~1912) 별세
쥘 앙리 푸앵카레 (Jules-Henri Poincaré, 1854년 4월 29일 ~ 1912년 7월 17일)는 프랑스의 수학자이다.
수학의 많은 부분에 업적이 있다.

– 쥘 앙리 푸앵카레 (Jules Henri Poincaré)
.출생: 1854년 4월 29일, 프랑스 낭시
.사망: 1912년 7월 17일 (58세),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
.분야: 수학
.소속: Corps des Mines, University of Caen, Lower Normandy, Sorbonne, Bureau des Longitudes
.출신 대학: Lycée Nancy, 에콜 폴리테크니크, Corps des Mines
.지도 교수: 샤를 에르미트
.지도 학생: 테오필 드 동데 (Théophile de Donder)
.주요 업적: 균일화 정리, 삼체 문제, 푸앵카레 대칭, 푸앵카레 반평면, 푸앵카레-버코프-비트 정리, 푸앵카레-벤딕손 정리, 푸앵카레 쌍대성, 푸앵카레 원판, 푸앵카레 재귀정리, 푸앵카레 추측, 푸앵카레-호프 정리, 호몰로지
.수상: Gold Medal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1900), 실베스터 메달(1901), 마테우치 메달(1905), Bruce Medal(1911)
쥘 앙리 푸앵카레 (Jules-Henri Poincaré, 1854 ~ 1912)는 수학, 물리학, 천체역학, 과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업적을 남긴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다.
근대 위상 수학의 창시자이자 100년간 미제로 남아있던 ‘푸앵카레 추측’의 제안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푸앵카레 군’, ‘푸앵카레 정리’ 등을 통해 상대성 이론과 카오스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고, 수학적 직관주의를 강조하며 과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철학적 통찰도 함께 남겼다.

○ 생애 및 활동
1854년 4월 29일 프랑스 낭시에서 태어났다. 정치인 레몽 푸앵카레의 사촌이다.
1873년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수석으로 입학,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샤를 에르미트의 가르침을 받았고, 1875년 차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수석 졸업을 하지 못한 이유는 미술과 체육에 재능이 없어 평균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았고 (수채화 점수 0점 등), 당시 에콜 폴리테크닉 필수과목인 군사학 분야에서도 학점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푸앵카레가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볼 무렵 1870년부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져 그가 살던 알자스-로렌이 전쟁터의 한복판이 된 탓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어 일시적으로 성적이 저조했을 뿐 학창시절 내내 두각을 나타냈다.
참고로 알자스-로렌 지방은 예로부터 자원에 기반한 공업지대로 잘 개발된 지역이라 독일과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도 상당한 부촌이었다. 덕분에 이 지역이나 이 지역 기반의 가문에서 태어난 엘리트 수학자 및 과학자, 예술가, 고위 관료들이 많았다. 특히 학계에서는 이들이 어릴 때부터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익히며 자랐다는 점이 큰 자산이었다. 푸앵카레 이후 세대의 니콜라 부르바키 역시 핵심 멤버 다수가 이 지역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양차대전 이후 파리 집중 현상 때문에 조금 덜할 뿐 어느 정도 영향력이 남아있는 편이다. 오늘날 파리에서 손꼽히는 명문 사립학교 에콜 알자시엔(École Alsacienne)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독일에 합병된 알자스 주민들이 파리로 옮겨와 세운 학교이다.
에콜 폴리테크닉 졸업 이후엔 에콜 데민 (광산전문학교)에 들어가 1879년 졸업했다. 이 학교는 에콜폴리테크닉 졸업생을 대상으로 광산계 고급공무원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로, 한국으로 치면 고급공무원 연수원 정도의 개념이다. 상술했듯 당시 프랑스의 광산 공무원은 국가 요직이었기 때문이다.
1897년 소르본 대학교에서 미분방정식에 관한 연구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광산감독 공무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캉(Caen) 대학에서 수학강사로 임용되어 학계에 진입했다.
1879년에 캉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당시부터 독일의 펠릭스 클라인과 편지로 교류하며 대수학을 연구했고, 그 업적으로 소르본 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수학만이 아니라 물리학에도 상당히 능해서 소르본 대학교에서도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강의했고, 여러 논문을 남겼다. 당시부터 독일의 펠릭스 클라인과 편지로 교류하며 대수학을 연구했고, 그 업적으로 소르본 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수학만이 아니라 물리학에도 상당히 능해서 소르본 대학교에서도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강의했고, 여러 논문을 남겼다.
이렇게 20대 후반부터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때부터 파리에서 사망할 당시까지 소르본 대학 교수, 에콜 폴리테크닉 교수를 역임했다.
1887년 32세의 나이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1906년부터는 회장직을 역임했다. 1909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었다. 워낙 학력이 뛰어났고, 어릴 때부터 학벌로도 프랑스 학계의 정석 출세코스만을 밟아왔기 때문에 마리 퀴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는 거의 없다. 특별한 정치성향은 없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 편에서 서서 경찰 측이 제시한 증거를 과학적 소견으로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10년 58명의 노벨물리학상 후보 지명자들이 꼽은 69개의 후보자 지명 중에서 34개로 가장 많은 지명을 받았었다.
그러나 1910년 수상자는 판데르발스였다. 1910년이 푸앵카레가 노벨상을 받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고 판단했지만 아쉽게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1911년, 1912년에도 후보지명은 받았으나 끝까지 노벨상을 수여받지 못하고 1912년 7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 컨벤셔널리즘
푸앵카레는 수학과 과학의 이론을 컨벤션 (편리성에 근거를 둔 규약)이라고 하는 규약주의를 주장하였다. 과학 이론에 기하학을 응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유클리드 기하나 비유클리드 기하 같은 수학적 진리는 당연하게도 경험과 선천적인 것에 호소하여 어느 쪽이 참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는 무관하게 단순하고 추상적인 규약·약속에 의해 성립된 것이며 둘 다 독자적으로 성립하는 수학적인 진리다. 따라서 어떤 기하학 체계를 과학 이론에 응용할지에 대해 진위성 (眞僞性)을 묻는 것은 미터법의 진위성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으며, 단지 우리가 응용할 때 보다 편리하고 대상과 잘 부합하는 쪽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이론이 규약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임의의 것이 아니라 응용되는 측면에 따라 스스로 규정되는 것이다. 예컨대 과학 이론에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경우, 어떤 수학을 기반으로 수학적 모델을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과학적 사실과 연계할지는 그것이 응용되는 경험적 세계의 구조에 따라 규정된다. 마찬가지로 물리학 등 실험과학의 이론도 규약적 성격을 가지며, 이러한 과학의 고도 원리는 이미 직접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므로 역시 규약이라 보아도 좋다. 이 컨벤셔널리즘 (규약설 또는 편의주의로 번역된다)을 중심으로 하는 푸앵카레의 과학론은 현대에도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고전 역학의 경우 뉴턴의 운동법칙을 기반으로 하든지 라그랑주 역학으로 하든지 둘 다 옳으며 어느 쪽이 맞는지 진위성을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다.
– 주요 업적
대수적 위상수학에서 호몰로지의 개념을 정의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푸앵카레 추측을 제기하였다. 삼체 문제에 대한 연구로 결정론적 복잡계를 발견하여, 현대적인 혼돈 이론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기여했으며, 당시 스웨덴의 왕 오스카 2세가 상 (prize)을 건 태양계의 안정성 문제에 도전함을 계기로 삼체 문제를 연구하여 혼돈 이론에 업적을 남겼다. 또한 중력파를 제안하였고 양자역학에서 양자화를 정의하였다. 과학 철학에도 기여하였다.
.Summary
Poincaré made many contributions to different fields of pure and applied mathematics such as: celestial mechanics, fluid mechanics, optics, electricity, telegraphy, capillarity, elasticity, thermodynamics, potential theory, quantum theory, theory of relativity and physical cosmology.
He was also a populariser of mathematics and physics and wrote several books for the lay public.
Among the specific topics he contributed to are the following:
algebraic topology (a field that Poincaré virtually invented)
the theory of analytic functions of several complex variables
the theory of abelian functions
algebraic geometry
the Poincaré conjecture, proven in 2003 by Grigori Perelman.
Poincaré recurrence theorem
hyperbolic geometry
number theory
the three-body problem
the theory of diophantine equations
electromagnetism
the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the fundamental group
In the field of differential equations Poincaré has given many results that are critical for the qualitative theory of differential equations, for example the Poincaré sphere and the Poincaré map.
Poincaré on “everybody’s belief” in the Normal Law of Errors (see normal distribution for an account of that “law”)
Published an influential paper providing a novel mathematical argument in support of quantum mechanics.

○ Honours
– Awards
Oscar II, King of Sweden’s mathematical competition (1887)
Foreign member of the Royal Netherlands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1897)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899
Gold Medal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of London (1900)
Bolyai Prize in 1905
Matteucci Medal 1905
French Academy of Sciences 1906
Académie française 1909
Bruce Medal (1911)
– Named after him
Institut Henri Poincaré (mathematics and theoretical physics center)
Poincaré Prize (Mathematical Physics International Prize)
Annales Henri Poincaré (Scientific Journal)
Poincaré Seminar (nicknamed “Bourbaphy”)
The crater Poincaré on the Moon
Asteroid 2021 Poincaré
○ 주요생애 및 업적
쥘 앙리 푸앵카레 (Jules-Henri Poincaré, 1854 ~ 1912)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 물리학자, 과학철학자다.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현대 위상수학과 카오스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고,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태동기에도 지대한 공헌을 남긴 ‘마지막 보편적 천재’로 평가받는다.
- 주요 생애
신동과 학업: 1854년 프랑스 낭시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암기력과 추상적 사고 능력을 갖췄으며, 에콜 폴리테크닉 (École Polytechnique)과 파리 광산학교를 졸업했다.
학자의 길: 미분방정식 연구로 파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칸 대학교 및 파리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평생 연구에 매진했다.
말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하는 등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받다가, 1912년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 주요 업적
위상수학 (Topology)의 창시자: ‘형태의 본질은 끊지 않고 변형 가능한 구조’라는 위상적 사고를 확립하여, 현대 기하학 및 물리학의 필수 기반인 기본군 (Fundamental Group) 개념 등을 정립했다.
푸앵카레 추측 (Poincaré Conjecture) 제안: 3차원 공간의 본질을 묻는 난제로, 약 100년이 지난 2003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 증명하기 전까지 수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해결 문제였다.
카오스 이론 및 동역학계 창시: 삼체 문제 (Three-body problem)를 연구하던 중,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발견하며 현대 카오스 이론의 서막을 열었다.
상대성 이론 및 물리학 공헌: 아인슈타인보다 앞서 로렌츠 변환의 수학적 대칭성을 완성했고,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E=mc^2)에 근접하는 등 특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토대를 닦았다.

○ 저서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쥘 앙리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é)는 수학, 물리학뿐만 아니라 과학의 본질에 관한 명저들을 남겼습니다.
- 대표저서
대표적인 4대 과학철학 저서로는 『과학과 가설 (1902)』, 『과학의 가치 (1905)』, 『과학과 방법 (1908)』, 『최후의 사상 (1913)』이 있다.
과학과 가설 (La Science et l’Hypothèse, 1902): 수학, 물리학, 천문학의 기본 개념을 분석하고 과학적 가설의 역할을 규명한 대표작이다.
과학의 가치 (La Valeur de la Science, 1905): 과학 진리의 객관성과 수학적 직관의 본질에 대해 논의한 저서다.
과학과 방법 (Science et Méthode, 1908): 과학자의 창조적 사고 과정과 수학적 발견의 원리를 서술했다.
최후의 사상 (Dernières Pensées, 1913): 푸앵카레가 사망한 후 출간된 유고집으로, 수학의 미래와 양자역학 등에 대한 견해를 담았다.
- Publications
Leçons sur la théorie mathématique de la lumière (in French). Paris: Carrè. 1889.
Solutions periodiques, non-existence des integrales uniformes, solutions asymptotiques (in French). Vol. 1. Paris: Gauthier-Villars. 1892.
Methodes de mm. Newcomb, Gylden, Lindstedt et Bohlin (in French). Vol. 2. Paris: Gauthier-Villars. 1893.
Oscillations électriques (in French). Paris: Carrè. 1894.
Invariants integraux, solutions periodiques du deuxieme genre, solutions doublement asymptotiques (in French). Vol. 3. Paris: Gauthier-Villars. 1899.
Valeur de la science (in French). Paris: Flammarion. 1900.
Electricité et optique (in French). Paris: Carrè & Naud. 1901.
Science et l’hypothèse (in French). Paris: Flammarion. 1905.
Thermodynamique (in French). Paris: Gauthier-Villars. 1908.
Dernières pensées (in French). Paris: Flammarion. 1913.
Science et méthode. London: Nelson and Sons. 1914.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