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7월 16일, 미합중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의 아내 메리 토드 링컨 (Mary Todd Lincoln, 1818 ~ 1882) 별세
메리 토드 링컨 (Mary Todd Lincoln, 1818년 12월 13일 ~ 1882년 7월 16일)은 미합중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의 배우자이자 전 영부인이다.

– 메리 토드 링컨 (Mary Todd Lincoln)
.출생: 1818년 12월 13일,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사망: 1882년 7월 16일(63세),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성별: 여성
.국적: 미국
.직업: 영부인
.배우자: 에이브러햄 링컨 (1842 ~ 1865)
.자녀: 장남 로버트 토드 링컨(1843~1926), 차남 에드워드 베이커 링컨(1846~1850), 삼남 윌리엄 월러스 링컨(1850~1862), 사남 토머스 태드 링컨(1853~1871)
켄터키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매리는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었다. 토드 하우스에서 살았으며, 10대에 학교를 마치고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로 가서 결혼한 누이 엘리자베스 에드워즈와 한동안 살았다.
그녀가 에이브러햄 링컨과 결혼하기 전, 링컨의 오랜 정적이 될 스티븐 A. 더글러스와 교재를 하고 있었다. 그녀와 링컨은 네 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셋이 단명을 했고 장남만이 그녀보다 더 오래 살았다. 그들이 스프링필드에 15년간 살았던 집은 지금도 스프링필드에 있다.
매리 링컨은 성인기에 편두통과 여러 질병으로 고생을 했다.
링컨이 대통령직에 있을 때는 내조를 했으며, 포드 극장에서 링컨이 암살당할 때도 옆에서 목격을 했다.

○ 생애 및 활동
켄터키 렉싱턴의 명문가에서 은행가인 로버트 스미스 토드와 엘리자베스 파커 토드의 딸로 7명의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가문은 노예소유주였으며, 안락하고, 세련된 환경에서 자라났다.
매리가 여섯 살때 모친이 죽자 2년 후 아버지는 엘리자베스 베스티 험프리즈와 결혼을 하여, 그들 사이에 아홉명의 자녀를 두었다.
1832년부터 현재의 매리 토드 링컨 하우스로 알려진 곳에서 살게 되었으며, 이곳은 렉싱턴에 위치한 고급스런 14개의 방을 갖춘 집이었다.
두번의 결혼으로 매리는 전체 15명의 친족을 두게 되었으며, 그들 중 아홉명이 배다른 형제였다.
매리의 고조부 데이빗 레비 토드는 아일랜드의 카운티 롱포드에서 출신이며, 펜실베이니아를 통해 켄터키로 이주해 왔다.
그녀의 외고조부 새뮤얼 매도웰은 스코틀랜드 출생으로, 이민을 와서 펜실베이니아에서 사망을 했다.
다른 토드의 조상들은 잉글랜드 출신이었다.
매리는 어린 나이에 만틀루 부인이 소유한 학교에 보내져서 프랑스어와 문학에 집중된 과정을 이수했다.
그래서 그녀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했으며, 춤과 드라마, 음악, 사교를 공부했다.

20세의 나이에는 위트가 넘치고, 사교적으로 여겨졌으며, 정치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문처럼 그녀도 휘그당원이었다.
1839년 10월부터 매리는 그녀의 언니 엘리자베스 포터 에드워즈와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전 주지사의 아들이었던 니니언 W. 에드워즈와 결혼한 엘리자베스는 당시에는 매리를 잘 돌보아 주었다.
매리는 스프링필드의 젠트리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었다.
한창 떠오르는 젊은 민주당원이자 변호사인 스티븐 A. 더글라스와 다른 여러 사람과 교제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교제 대상으로 선택한 이는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사교성이 뛰어나고, 화려함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링컨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이었지만, 1842년에 연애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링컨의 변호사 업무도 순조롭게 성공하여 연수입이 1200달러에 달했다.
이것은 당시 주지사의 보수와 같은 금액이었다. 대신, 순회 재판소를 돌지 않으면 안되어 하루 50킬로나 말을 타야했다.
그러나 메리는 경제 관념이 없었고, 질투와 히스테리 증상이 심해 가정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가정이 지옥이었기 때문에 정치에 열중한 것이 아니라 링컨이 정치에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가정 생활이 소홀히되어 메리의 성격이 일그러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미국의 작가, 데일 카네기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것은 그의 결혼에 비교하면 비극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링컨과 메리 토드는 네 명의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 에드워드 베이커 링컨, 윌리엄 월러스 링컨, 태드 링컨이 있었지만, 장남을 제외한 셋이 젊은 나이에 죽었다.
링컨의 암살이 정신이상을 초래해 64세를 일기로 죽을 때까지 정신 병원에서 보냈다.
그녀는 1882년 7월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별세했다.
- 주요 생애
메리 토드 링컨 (Mary Todd Lincoln)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의 부인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퍼스트 레이디’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인물이다.
남부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정치적 야망과 높은 교육을 갖추었으나, 남북전쟁과 남편의 암살, 4명의 아들 중 3명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평생 우울증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녀의 생애를 관통하는 주요 사건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생애 초기와 결혼: 1818년 켄터키주 렉싱턴의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839년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로 이주해 1842년 당시 가난한 변호사였던 에이브러험 링컨과 결혼했다.
백악관 시절과 논란: 남북전쟁 기간 동안 남부 출신이라는 이유로 북부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았고, 영부인으로서 백악관 개보수에 과도한 예산을 지출해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비극적인 가족사: 슬하에 4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에디, 윌리, 태드 등 3명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큰 슬픔을 겪었다. 1865년 남편의 암살을 곁에서 직접 목격한 후 심리적 트라우마와 건강 악화에 시달렸다.
말년: 남편이 사망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정신 건강 문제로 인해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에 의해 잠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후 유럽에서 머물다 1882년 여동생의 집에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가족관계
- 배우자
에이브러햄 링컨 (1842년 결혼 ~ 1865년 사별)
- 자녀
장남 로버트 토드 링컨 (1843~1926)
차남 에드워드 베이커 링컨 (1846~1850)
삼남 윌리엄 월러스 링컨 (1850~1862)
사남 토머스 태드 링컨 (1853~1871)
○ 저작
메리 토드 링컨은 생전에 직접 저술한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담은 기록은 주로 가족, 친구, 정치인들과 주고받은 방대한 양의 서한 (편지) 형태로 남아있으며, 이는 후대 역사학자들에 의해 책으로 엮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관련 도서는 다음과 같다.
Mary Todd Lincoln: Her Life and Letters: 저스틴 터너 (Justin G. Turner)와 린다 터너 (Linda L. Turner)가 1972년에 펴낸 책으로, 메리 토드 링컨이 남편 에이브러햄 링컨, 아들, 지인들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와 기록을 집대성했다.
The True Mary Todd Lincoln: 베티 볼스 엘리슨 (Betty Boles Ellison)이 쓴 전기적 저서로, 영부인으로서의 오해와 진실, 편지 및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그녀의 삶을 재조명했다.
- Bibliography
Baker, Jean H. (1987). Mary Todd Lincoln: A Biography. New York: W.W. Norton & Company.
Packard, Jerrold M. (2013). The Lincolns in the White House: Four Years That Shattered a Family. New York: St. Martin’s Press.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