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빨간 차 이론과 인지적 편향
언젠가 호주에서 처음으로 ‘파제로’라는 사륜구동 차량을 산 적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타고 싶었던 차였지만 형편이 어려워 쉽게 선택하지 못하다가, 자녀가 한 명 더 생기면서 지인의 소개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길에 나가면 파제로를 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차가 어느 순간 거리 곳곳에서 보였고, 지나가는 차량 중에서도 파제로는 금세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정신건강 커뮤니티에서 일하게 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입니다. 가족 중에도, 친지 중에도, 지인들 가운데도, 심지어 자녀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우울과 불안, 정신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마치 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대상이나 정보를 한 번 의식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 그것이 주변에 갑자기 많아진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파제로 차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내 뇌가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생기면 뇌는 관련 정보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빨간 차 이론(Red Car Theory)’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빨간 차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빨간 차가 눈에 들어오는 현상입니다. 기회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어떤 목표를 품고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기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시크릿(The Secret)』이라는 책 역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믿고 집중하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자신이 갈망하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그 결과 이전에는 지나쳤던 기회를 발견하고 붙잡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의 뇌가 매우 뛰어나면서도 동시에 쉽게 속고, 또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같은 상황도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합니다. 특히 예민한 사람은 상대방의 잠깐의 표정 변화만 보고도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한 어르신이 자신의 생일에 예고 없이 아들과 며느리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식사를 대접했지만, 며느리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르신은 그것을 “내가 돈이 없어서 환영받지 못하는구나”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돈을 벌어 아들에게 보태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의 표정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당황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은 자신의 마음 상태와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불평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비난이라고 믿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후에는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험담을 했을 것이다”, “팀 전체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직장에 가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지며, 결국 해고당할 것이라는 불안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 근거보다는 추측과 해석이 생각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SNS는 끊임없는 비교와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고, 사회적 고립은 외로움과 불안을 키웁니다. 자연재해와 전쟁, 이상기후 같은 사회적 불안 요소들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안정된 직장을 얻지 못하면서 미래에 대한 절망과 불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울과 불안은 인지적 편향을 더욱 강화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세상을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모든 일이 불공평하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안이 큰 사람은 늘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이 마치 재난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망상적 사고로 이어져 현실과 동떨어진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끊임없이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편견이나 선입견, 왜곡된 해석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매일 성경을 읽으며 삶을 비추어 보듯이, 일기를 쓰거나 좋은 책을 읽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동시에 과거의 상처를 건강하게 다루는 일도 중요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특정 상황에서 과도한 반응을 일으키고, 왜곡된 해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결국 상처 뒤에는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를 무시한다”와 같은 왜곡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가 치유될수록 사람은 현실을 보다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립된 사람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기 쉽고,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찾으려 합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알고리즘이 비슷한 정보만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인지적 편향이 더욱 강화되기도 합니다. 반면 건강한 인간관계 속에서는 조언과 피드백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유연해집니다.
얼마 전 한 분이 인간관계 속에서 큰 상처를 받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언제든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와 건강한 관계입니다.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편향과 왜곡에서 벗어나 보다 지혜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서미진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