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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삶의 원동력 감정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하루를 기대감으로 잠시 그 순간에 머물러 생명 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표하며 깨어 있는 그 순간의 신비를 만끽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피곤하다, 오늘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 군! 또는 도시락을 싸야 해! 일어나기 싫어!” 라고 하며 일어나서 잠깐의 여유를 가지기 보다는 일어나자 마자 습관처럼 핸드폰을 바쁘게 열어서 주식의 현황을 살피거나 실시간 뉴스를 보고 또는 라디오 음악을 틀고 바로 오늘해야 하는 일들을 머리 속에 바쁘게 떠올리며 아침부터 종종거리며 하루를 급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겉으로 평안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물 속에서 발을 움직이고 있는 백조처럼 살아갈 때가 많은 것을 본다. 어떤 때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서도 가족과 하루 하루 잘 놀고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고 바쁘다. 늦잠을 자도 될 텐데 일찍 일어나서 꼭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혼자 나가서 산책을 하고 부엌을 정리를 하는 일을 한다. 심지어 과거에는 출산 후 쉼을 얻고 있을 때도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가 빨리 갈까 봐 걱정하느라 쉼의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일까? 사람마다 원동력의 힘이 다른데 필자는 그 원동력을 감정이라고 하는 것에서 오늘 찾아보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외부의 자극들이 너무 좋아 보여서 그것에 흥분하고 마음이 빼앗겨 그것들을 추구하느라 분주할 수 있다.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은 새로운 아이템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으로 흥분해서 그것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곤 한다. 바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감정은 열정과 또 그것이 되지 않을 때는 분노로 반응하게 된다. 그 감정들이 우리로 하여금 분주하게 움직이게 한다. 최근 베트남에 필자가 방문을 하면서 한인 교포분을 만나 봤는데 나이가 지긋이 있으신 분이신 데도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며 도전을 하면서 살고 계셨다. 우연히 대화를 하다가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템에 대해서 나누게 되었는데 그 분이 그것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면서 당장이라도 그 일을 시작할 것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이런 분이 전형적으로 새로운 자극에 잘 반응하시고 그것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달려가는 사람이다. TCI 기질 및 성격 유형 검사에서 이런 사람은 ‘자극 추구’의 기질적 성향이 아주 높은 사람으로 나오게 된다. 그에 비해서 외부의 위험 요소에 민감한 사람들은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고 조심하느라 염려와 걱정 또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분들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필자 같은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을 항상 생각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고 안전하도록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일의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하니 준비하고 열심히 살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왠지 나쁜 일이 생길 것 같고 가끔 그 예감이 들어맞으니 매사에 종종거리며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위험 회피’의 기질적 성향이 높은 사람들이다. 기질에 따라서 주요하게 사람들이 경험하는 감정들이 다를 수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어떤 사람은 열정, 분노, 어떤 사람은 안전, 불안, 어떤 사람들은 인정과 공감이라고 하는 감정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감정을 잘 다스려져야 하고 잘 이해되어야 하는 면이 있다. 그렇지 않을 때 감정은 충동적인 힘이 되어서 누군가를 파괴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고 소통을 방해하는 불편한 도구가 된다. 최근 나온 드라마 중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이라는 Netflix 시리즈가 있는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히어로와 같은 초능력이 있지만 심리와 정신과 관련된 장애 즉, 우울증, 불면증, 비만으로 인해 초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이것을 오늘 주제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좋은 장점들이 있고 기질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자신을 잘 계발한다면 히어로처럼 누군가의 삶에 기여하며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상처로 인해 또는 어린 시절에 부족한 훈련으로 인해 감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고 때로는 적절하게 감정을 잘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에게 있는 좋은 장점과 자원들이 드러나지 못하게 되어 실패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자원과 장점들이 있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우울증, 불면증, 비만의 문제를 고쳐야 초능력을 다시 발휘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그 감정을 잘 다스릴 때 신이 주신 자신의 자원과 강점을 잘 발휘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고 참을 수 있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감정을 억압하고 누르는 것이 신체의 건강을 헤치고 오히려 정서적인 질병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억눌린 감정은 화산처럼 폭발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감정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나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감정과 사고와 행동, 신체 반응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지를 잘 살펴보고 이해를 하는 것이다. 평소에 나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감정이 올라오는 어떤 순간을 경험할 때 자신을 잘 이해해 보도록 자신의 감정을 기록해 보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올라올 때 나의 신체는 어떻게 반응을 하는 지를 관찰하고 적어 보고 그 때 나의 감정은 어떤 감정인 지 혹시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감정은 없는 지를 살펴보고 그리고 나서 나의 행동은 그 감정으로 인해 어떻게 바뀌었는 지 또는 반응 했는 지를 적어보고 마지막으로 이 사건과 관련하여 나에게는 어떤 생각들이 있었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학지사에서 나온 ‘기분 다스리기’ 라는 책에서는 한 사람의 상황, 신체반응, 기분, 생각의 다섯가지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 상호작용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이렇게 내 자신의 감정과 관련된 요소들을 살펴보기 시작할 때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더 나아가 감정이 압도하는 힘에 이끌려 충동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게 된다. 삶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인 감정을 잘 다스림으로 우리 안에 있는 자원과 강점이 잘 발휘되어 이 세상에서 조화롭고 또 타인의 삶에까지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감정에 잘 도달하기 최근 ‘선재 업고 튀어’에서 열연을 한 변우석이 인기가 급증하였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그의 팬이 된 우리 딸은 팬 미팅에 참석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참석을 위한 표를 하나 끊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결국 2분 안에 표가 매진되어서 우리 딸은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관계의 ‘간격’ 안도현 시인의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에는 ‘간격’이라는 시가 나온다. 그 시에는 숲을 이루는 나무는 어깨와 어깨가 맞대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간격이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그 간격들이 있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게 한다고 시인은 자신의 깨달음을 묘사하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은 위에서 시인이 묘사한 간격을 통해 숲을 만들기 보다는 어깨와 어깨가 맞대어져서 숲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어떤 모임에서 그런 일을 경험했다. 회원들은 개성이 있어서 자신만의 간격을 존중받아야 하는데 새로 임원이 되신분이 타인의 간격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지시하며 동조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쉽게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나무들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다가 잘 죽는 것처럼 간격없는 나무를  만들려는 시도는 숲을 파괴시켰고 몇 그루의 나무를 상하게 하여 모임이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 개개인을 나무라 생각하고 그 사람이 모인 체계가 숲이라고 본다면, 그 숲은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작은 문학회가 될 수도 있고 또 작은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사람 개개인의 간격을 존중함으로 체계를 이루어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서 체계를 만들어 나가려고 할 때는 부딪힘은 있을 수 밖에 없고 숲의 좋은 환경은 파괴되어진다. 가정에서의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자신을 찾아가느라 부모와 간격을 두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간격을 독립된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당연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아이의 정서가 조금 더 잠잠해 질 때까지 그리고 스스로 부모를 찾아올 때 까지 기다려 준다면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숲은 여전히 아름답고 더 질서가 잡혀 나갈 수 있는데 그 간격을 가족간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신호로 여기며 다시 간격이 없는 어깨와 어깨를 맞댄 관계로 돌아가자고 요구하기 시작할 때 가정이라고 하는 숲은 휘청거리기 시작하게 된다. 나무가 자라면서 성장할 때 마다 화분 갈이를 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어릴 때는 스스로 생존할 수가 없어서 부모와 어깨를 맞대로 살았지만 사춘기가 되면 자신의 공간을 가지고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으로 활동하려고 한다. 그 때 간격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좋은 부모는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함으로 간격을 허락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간격이 있는 행복한 가정숲을 이루는 방법이다. 지인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딸 하나를 둔 부모가 있었는데 딸이 시드니로 대학을 갔다고 한다. 그러자 부모가 시드니로 이사를 했는데 아이가 한 학기를 마치자 학교를 멜번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자 부모는 함께 멜번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아이가  이번에는 휴학을 하고 아예 한국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부모는 또 한국으로 따라 들어갔고 한국에 있던 아이는 얼마되지 않아 다시 호주로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로 끊임없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려고 하나 외부사람의 눈에는 ‘그 딸이 얼마나 숨이 막혔으면 계속해서 부모를 떠나려고 할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처럼 간격이 없이 밀착된 관계가 어떻게 관계를 힘들게 하고 가정을 파괴시키는 지를 우리는 보게 된다. 부부 관계에서도 간격이 중요하다. 너와 나는 간격이 필요없는 한 몸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있는 정화되어지지 않은 감정을 그냥 막 배우자에게 쏟아놓는다면 배우자는 한 몸이 아니라 쓰레기통이 되어지는 것이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 가정이라고 하는 체계를 이루어 살지만 거기에서도 건강한 간격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가족이 다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라고 하는 나무만 생각하고 배우자나 가족의 다른 나무의 특성과 성장 환경과 필요의 부분은 무시하는 사람이다. 어깨와 어깨를 맞대는 나무를 요구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나무에 붙어서 기생하는 나무들만 일방적으로 원하는 사람인 것이다. 적당한 거리가 있으면서 서로의 온기를 함께 느끼는 부부는 함께 숲의 비젼을 공유하며 숲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각자의 개성, 즉 다른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존중해 준다. 또한, 사람과 사람의 간격도 사회적인 관계를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최근에는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너무 중요시 여기다 보니 그 간격이 너무 넓어져서 따스함과 온기를 잃어버리고 나무 하나 하나가 개별적인 숲을 이루어가는 느낌도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너무나 어깨와 어깨를 맞댄 관계들에서 상처를 많이 입고 이제는 가까이 가는 것조차 피하게 되어서 양극화된 모습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하게 된다.예전에는 교회에서 목사님이 심방을 가게 되면 집안 문을 활짝열어 주고 집의 모습이 어떠하든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는데 요즘은 이야기를 들으니 집 가까운 카페에서 목사님을 만나고 심방을 받곤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라도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자신의 간격을 고수하면서도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따스함을 추구하는 모습은 귀하나 어떤 면에서는 온기를 조금 더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은 더 다가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한 분이 있는데 이 분은 사람과의 관계를 잘 조절을 못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조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 과하게 의존을 하면서 계속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 그렇게 갑자기 간격을 좁히면서 다가오니 상대방은 부담스럽고 그 관계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점점 힘듦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은 적당한 관계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거절을 하게 되는데 그 사람은 그것을 상처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섭섭함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변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이제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 안경을 부정적 안경으로 바꾸어 끼면서 상대방과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게 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런 관계의 패턴을 가지고 있으신 분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간격이 어떤 것인지를 사회적 관계에서 재학습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자신의 간격이 타인에 의해서 쉽게 침범당했기에 건강하고 적절한 간격을 지켜 나가고 또 친밀한 관계에서 그것을 적절히 세워나가는 법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무와 나무의 간격이 숲을 이루게 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건강한 공동체의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간격이 필요하다. 그 간격을 지켜나가기 위해 때로는 “ No” 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한 발걸음 더 다가가거나 한 발걸음을 더 뒤로 물러서야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적절한 간격을 위해 다가감이 필요한 지, 물러섬이 필요한 지, 또는 ‘ 아니요 ‘ 나 ‘예’가 필요한 지를 살펴보고 건강한 숲을 이루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비출 수 있도록 적절한 간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