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 / 책세상 / 2014.11.5
메를로 퐁티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를 한국내 최초로 번역하여 소개한 책이다. 메를로 퐁티가 몸의 현상학이라는 철학을 정립한 후 후설 현상학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초기 사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글들을 묶은’기호들’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메를로 퐁티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몸의 현상학, 회화와 언어의 표현 형식에 대한 탈근대적 이해 등 그의 존재론과 예술론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언어와 회화는 개념적 언어가 아닌 침묵으로 표현되며, 철학은 예술의 표현 형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를로 퐁티에게 있어서 개념이 아닌 침묵, 사유가 아닌 표현, 일의적 의미가 아닌 다의적 의미라는 예술의 존재 형식은 철학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다. 이러한 그의 예술적, 철학적 입장은 근대 철학을 뒤흔든 해체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장르 통합적인 현대 예술과, 규범과 가치들이 혼란에 빠진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 목차
들어가는 말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해제-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에 나타난 언어와 회화의 표현성]
1.메를로 퐁티의 생애와 저작
2.메를로 퐁티의 존재론적 현상학
1)메를로 퐁티의 ‘몸의 현상학’
2)’살’의 존재론
3.예술론
1)회화: ‘살’의 가시화
2)언어와 회화의 표현성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 저자소개 : 모리스 메를로 퐁티
1908년 태어나 1952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임명되어 철학을 가르치다가 1961년 사망했다.
그는 신체 행위와 지각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몸의 현상학이라는 독자적인 철학을 구축했다.
한때 사르트르와 함께 사회주의적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현실 사회주의에 회의를 느끼고는 정치 활동은 물론 사르트르와도 결별했다.
저서로《행동의 구조》,《지각의 현상학》,《변증법의 모험》,《의미와 무의미》,《기호들》 등이 있으며, 사후《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눈과 정신》 등이 출간되었다.
*생애 및 활동
메를로퐁티 (Merleau-Ponty)는 1908년 3월 14일, 프랑스 로슈포르에서 출생했다.
유복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메를로퐁티는 그의 어머니가 외도를 해서 낳은 아들이었고, 메를로퐁티라는 이름도 외도 당사자인 실제 아버지를 따른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다.

- 교직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파리의 리세 루이르그랑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장 폴 사르트르 (메를로퐁티는 이후에도 사르트르와의 교우를 유지한다)와 같은 시기 파리 고등사범학교 학생이 되어, 1930년 철학교수자격시험을 차석으로 합격했다.
처음 보베 (1931 ~ 1933)에서 시작하여, 샤르트르의 리세 마르소 (1934 ~ 1935)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이후 파리 고등사범학교 (1935 ~ 1939)에서 조교를 하다가 제5보병연대에 징집되어 이후 제59경보병사단 참모부 (1939 ~ 40)에서 복무한 메를로퐁티는 이후 리세 카르노 (1940 ~ 1944)와 리세 콩도르세 (1944 ~ 1945)의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에서도 교사직을 맡게 된다. 마침내 메를로퐁티는 1945년 소르본에서 《행동의 구조》(1942)와 《지각의 현상학》(1945)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메를로퐁티는 이어서 리옹 대학교 인문대학 철학 부교수 (1945)로, 이후 심리학 정교수 (1948년 1월)로 임용되었다. 1949년 학기부터 메를로퐁티는 파리 대학교 인문대학 교육심리학 부교수에 임용되어 1950년 1월 특임교수가 되었다.
마침내 메를로퐁티는 1952년 정교수가 되어 1961년 사망할 때까지 이전에 앙리 베르그송, 에두아르 르 루아, 루이 라벨과 같은 이들이 이름을 빛낸 콜레주 드 프랑스 철학 교수직을 맡게 된다. 메를로퐁티의 첫 강의는 “철학의 찬미”라는 제목을 달았다.
메를로퐁티는 잡지 〈현대〉가 창간된 1945년 10월부터 장 폴 사르트르와 결별한 1952년 12월 (이 “결별”은 1953년 7월 일어났다)까지 그곳의 운영위원 중 하나이자 정치면의 논설 기자였다.
메를로퐁티는 또한 정치에 참여하여, 1958년 총선을 목표로 하여 비 (非)공산주의 및 반드골주의 좌파를 한데 묶은 민주세력동맹 (UFD) 단일화에 동참했다.
53세의 나이로 메를로퐁티는 1961년 5월 3일 저녁, 집무실에 앉아 데카르트의 《굴절광학》을 핀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중대한 저작, 가히 자신의 걸작이 될 그 책을 미완성으로 남겼다. 바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페르라셰즈 묘지 (52구역)에 묻혔다.
클로드 르포르는 메를로퐁티의 유언집행자였다. 정신과 의사이던 부인 수잔 졸리부아는 2010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메를로퐁티는 1940년 결혼하여 외동딸 마리안 (1941 ~ 2019)을 낳았다. 마리안 쪽으로 후손이 있다.

- 사르트르와의 결별
《현대 Les Temps Modernes》는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가 주축이 되어 1945년에 창간한 월간 잡지이다.
2차 대전 당시 ‘사회주의와 자유 Socialisme et Liberté’ 라는 비밀단체를 결성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함께 했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리고 메를로퐁티 등은 전후의 지식인을 결집하고 변화된 세계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치했고,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인 사업으로《현대》지 창간을 계획한다.
보부아르의 회고에 따르면 《현대》지 창간에 대한 결심은 2차 대전 중인 1943년에 이루어졌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리고 일군의 지식인들은 전후에 이데올로기를 제공할 의무를 느끼고, 그것을 구체화할 어떤 행동을 결의하게 된다.
잡지의 이름인 《현대》는 당대의 문제를 파고들고자 했던 취지에 맞춘 것인데, 모두가 짐작하듯이 당시 사르트르가 좋아하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를 염두에 둔 것이다. 잡지명으로는 조금 밋밋한 면이 없지 않으나,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의 일에 가담하고자 했던 애초의 의도에 부합한다는 생각에 그대로 결정되었다.
사실 종이가 부족했던 전후의 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 잡지에 편입되는 방식 대신에 새로운 잡지를 창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잡지를 창간하기로 한 것은 ‘현실을 담아내고자 하는’ 그들 의 목표가 기존 잡지의 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전후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창출이라는 포부를 갖고 갈리마르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NRF (Nouvelle Revue Française)》에서 이미 풍부한 경험을 쌓은 장 폴랑의 도움에 기대어 새 잡지 출간을 결정한다.
창간사에서 사르트르는《현대》지를 통해 ‘종합적 인간학’의 구축에 소박하게나마 기여하고자 하는 야심찬 기획을 드러낸다. 우선 그는 잡지의 의도와 목표를 분명하게 밝히면서 기존 잡지와의 뚜렷한 차별화를 선언한다. 그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분석정신과 종합정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와 결정론 등, 당시의 세계를 지배하며 나누고 있는 대립항들을 제시하고, 《현대》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출발한다는 점을 표명한다. 그리고 지식인 잡지와 대중 저널리즘의 중간적 입장을 견지하기 위한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또한 철학과 문학으로 양분되어 왔던 기존 잡지의 틀을 깨고 두 진영을 함께 다루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철학과 문학을 하나의 잡지 안에 포섭하고, 분석을 통해 종합을 지향하려는 의지,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까지 수용하려는 열린 태도, 이것이 《현대》가 내세운 목표였다.
한국전쟁 시기, 사르트르는 잡지 〈현대〉에다가 자신의 기사, 〈공산주의자들과 평화〉(1952년)를 누구에게도 통보하지도 않고 실었다.
1950년을 기점으로 사르트르가 취한 태도는 어렵사리 지지를 받기는 받았으나, 메를로퐁티는 잡지 운영에 있어 사르트르가 마르크스주의 글을 썼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점을 두고, 이 기사는 1952년 12월호에 실린 선행하는 기사가 없이는 실릴 수 없다며 그를 불렀다.
전화 통화는 2시간 동안 팽팽하게 이어졌는데, 이후 둘 사이의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불일치와 정치적, 철학적 의견 차이뿐만 아니라 성격 차이까지 잘 드러난 세 통의 긴 편지가 이어졌다.
이 편지들은 파리 고등사범학교 학생 시절부터 이어져 온 둘의 우정이 깨졌음을 – 프랑수아 에발트에 따르면 둘 중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던 결별을 – 보여준다.

* 철학
당시의 유명한 현상학적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코기토적이고 관념적인 입장에 반대하여, 몸과 의식의 독특한 관계를 정립하였다.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후설의 현상학, 특히 생의 세계에 대한 후기의 사색을 발전시켜 행동의 구조와 지각세계의 연구로부터 출발하였고 관념론과 실재론의 전제를 모두 배척하고 관념으로도 사물로도 환원할 수 없고 인간적 실재의 이의성 (二義性)을 조명하는 동시에 정치·역사·언어·예술 등 제 문제에 독특한 전망을 열려고 하였다.
– 《행동의 구조》(1942)
『지각의 현상학』(1945)과 더불어 그의 학위논문이 된 것으로서 인간을 문자 그대로 ‘세계-내’의 ‘존재’로서 파악하고자 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다키우라 시즈오 (滝浦静雄) · 기다 겐 (木田元)에 의한 일본어 역 (みすず書房, 1964)이 있다. 근대 이래의 인간과학이 언제나 물질인가 정신인가, 즉자인가 대자인가와 같은 양자택일에 빠져 있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새롭게 성립한 게슈탈트 심리학 등에 의거하여 고전적 반사설과 조건반사학설 등을 재검토함으로써 자극은 그 물리적 특성보다도 오히려 공간적 내지 시간적 배치에 의해 작용하는 ‘게슈탈트’라는 점을 해명한다 (두 개의 곡물 더미 중에서 언제나 상대적으로 <엷은 회색> 쪽을 선택하는 쾰러의 닭의 예 등을 참조).
또한 어떤 반사회로만을 고립적으로 다루는 것도 불가능한 바, 개개의 행동에 그 ‘중추영역’을 지정하고자 하는 ‘기능국재론’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특히 골드슈타인 등의 자료를 원용하여 역설하였다.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는 유기체 자신이 게슈탈트가 되고 있는 것이지만, 다만 신경 활동의 부분들을 모두 동일시하는 극단적인 전체론이 아니라 특정한 부위가 유기체 전체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절충적 국재론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인간의 지각과 행동에 관한 근대 이래의 존재론에 중대한 변경을 압박하는 것이 된다. 게슈탈트는 반드시 자극의 물리적 특성과 생체의 해부학적 구조에는 의존하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동물에 의해서도 지각되는 이상, 지성의 판단의 결과 등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러한 인간의 행동 자신도 ‘혼합적 형태’와 ‘가환적 형태’ 그리고 ‘상징적 형태’라는 구조의 분화를 지닌다. 그것은 대부분 자연 조건에 유착된 첫 번째 구조 (그것은 이른바 ‘본능’보다도 좀 더 닫힌 것으로 생각된다)로부터 신호에 반응할 수 있는 두 번째 구조를 거쳐, 순수한 의미와 가치 자체로 열려 있는 인간적 구조에 이르는 계층구조이다.
따라서 그것은 당연히 실체적인 구별이 아니라 게슈탈트로서의 유기체의 행동이 통합화되는 정도의 다름인 것이다. 또한 그는 이에 거의 대응하는 것으로서 ‘물리적 질서’와 ‘생명적 질서’ 그리고 ‘인간적 질서’라는 계층을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른바 ‘물질’, ‘생명’, ‘정신’을 역시 구조의 다름으로 다시 파악하고, 구조의 철학 안으로 명확한 위치 부여를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다키우라 시즈오 (瀧浦靜雄), <현상학 사전> 참조.

– 《지각의 현상학》(1945)
1945년에 나온 이 책은 메를로퐁티의 철학적 주저로, 후의 정치·미술·언어 등 다방면에 걸친 사색은 주로 이 책에 기초를 두었다.
지각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세계 내에서 대상을 발견하고 또한 타인과 자기를 인식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이 지각 내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반성은 과학이 항상 전제하면서도 조명하지 못하는 지각적 의식의 원초적 신념을 형성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재발견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심리학의 경험주의적 · 주지주의적 제개념을 비판함으로써 현상적 장 (場)으로서의 세계에 되돌아가야 할 필요를 말하고 그 중심 인물을 이루는 자기의 신체에 대해 사물이라고도 관념이라고도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방식을 조명한다.
신체는 세계에 상주함으로써 습관적 층 (層)을 침전시키고 행동의 자유로운 환경을 주는 것이지만, 예컨대 과거에 손이나 발을 절단한 사람이 상실한 부분에 아직도 통증을 느끼는 환각에 사로잡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습관적 신체는 물리적 실제도 아니고, 또 단순한 관념으로 해소되지도 않는다.
인간의 세계에 고유한 중후함을 부여하는 것은 해방과 예속·진리와 오류의 가능성을 어느 것이나 나눌 수 없게 내포하고 있는 양의적 (兩義的)인 신체의 존재이며, 지각의 해명은 여기에 조명을 비침으로써 자유 문제만이 아니라 의미의 침전으로서의 문화나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구체적인 취급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육체성
지각 연구의 출발점으로서 메를로퐁티는 “몸자체”가 단지 물체, 과학의 연구 가능한 대상일 뿐만이 아니라, 경험의 지속적인 조건이라는 점, 세상과 자신의 투사를 향한 지각의 시작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을 재인식하고자 한다. 메를로퐁티는 또한 의식의 내재성이 있다는 점과, 지각의 분석을 가능케 하는 몸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지각의 탁월성은 곧, 지각이 활동적이고 기본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경험의 탁월성을 의미한다.
메를로퐁티의 연구는 고로, 메를로퐁티가 본인의 사상과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육체/정신 범주의 이원론적 존재론과는 대조되는, 의식의 육체성과 육체적 지향성의 재인식으로 상징되는 분석을 창시했다. 메를로퐁티는 그 다음으로 순수 자유와 순수 결정론 사이의 양자택일을, 대자적 육체 (corps-pour-soi)와 대타적 육체 (corps-pour-autrui)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세상의 개인들의 생애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 과학
.심리학
메를로퐁티는 또한 게슈탈트 심리학 연구에 주목했으며, 현상학을 통한 정신분석의 일치와 대립의 해석과, 특히 심리사회학과 장 피아제의 저서에 관한 평가를 시도하기도 했다.
.사회학과 인간학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뿌리와 더 나아가 상호주관성의 분석을 하고자, 메를로퐁티는 사회학적, 인간학적 연구의 본성, 특히 ‘철학과 사회학’과 ‘마우스부터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까지’에 실린 논문들에 대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지각의 탁월함과 살아있는 몸에 관한 메를로퐁티의 논문들은 상호주관성의 혁신적인 이해를 가져왔으며, 이 같은 이유로 그의 논문들은 사회학 연구에 있어 영향을 끼쳤다.
앞서 언급한 연구는 여러 방법에 차용되었는데, 특히 다음의 방법들을 들 수 있다.
1) “몸자체”라는 주제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와 실천 사회학에서 역할을 맡았다.
한편 피에르 부르디외는 철학 공부 말엽에 메를로퐁티와 함께 논문을 저술하는 것과 사회학자가 되는 것 사이에서 망설였다.
2) 실천 지향성이 행해지는 것에 관한 알프레드 쉬츠의 사회학적 현상학 작업과의 비교.
3) 새롭게 대두한 실용적 사회학과의 대립.
.역자 : 김화자
김화자는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10대학 철학과에서 ‘형식들의 논리학과 미학’ 부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숭실대에서 조형 예술과 영상 예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미켈 뒤프렌의 미적 지각〉등이 있고,《비잔틴 세계의 미술》을 옮겼다.

○ 출판사 서평
흔히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철학을 ‘모호성의 철학’이라고 한다. 메를로 퐁티 이전의 프랑스 철학은, 인식 주체로서의 인간이 세계를 통일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세계에는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헛된 믿음에 집착했다.
반면 메를로 퐁티는 인간을 분리되어 있는 정신과 육체의 결합체로 보는 시각에 반대하고, 자명한 것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몸의 실존적 상황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전통적인 철학적 전제를 전복시키는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이후의 현대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그 중요성에 비해 그의 삶과 철학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설다.
메를로 퐁티의《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046)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글로, 몸의 현상학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정립한 후 후설 현상학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초기 사상에 대해 문제 제기한 글들을 묶은 《기호들 Signes》 (1960)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분량은 짧지만 메를로 퐁티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몸의 현상학 그리고 회화와 언어의 표현 형식에 대한 탈근대적 이해 등 그의 존재론과 예술론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에서 그는 언어와 회화는 개념적 언어가 아닌 침묵으로 표현되며, 철학은 예술의 표현 형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