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2026 BELFER ORATIONThe Great Synagogue, Sydney
2026년 7월 1일 / 강연자: Rabbi Dr. Samuel Lebens

자유의지는 환상인가? : 하스다이 크레스카스와 요세프 알보가 다시 묻는 인간의 자유
강연을 참관하며 (Rev. Dr Wonil Jung)
2026년 7월 1일, 시드니 그레이트 시나고그에서 올해의 벨퍼 오레이션 (Belfer Oration)이 열렸습니다.
강연자는 Rabbi Dr. Samuel Lebens – 분석철학과 유대 사상의 교차점에서 독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학자입니다.
이날 그가 청중 앞에 던진 물음은 단순하면서도 묵직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인가?”
중세 유대 철학자 하스다이 크레스카스와 요세프 알보를 중심으로, 자유의지를 둘러싼 700년의 지적 대화를 짚어 가는 강연이었습니다.
아래는 그날 강연을 듣고 자료를 참고하여 정리한 기고문입니다.

시대적 질문 – 신경과학과 알고리즘의 시대에
오늘날 자유의지에 관한 물음은 철학 강의실 만의 것이 아닙니다.
신경과학은 우리의 뇌가 의식보다 먼저 결정을 내린다고 말하고, 유전학은 성격과 기질이 상당 부분 타고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지 미리 계산하고, 광고는그 예측을 현실로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Lebens는 강연 서두에서 이 질문이 현대 과학의 산물이 아님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이미 14세기 스페인의 유대 사상가들이 같은 물음을 붙들고 씨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은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던진 더 깊은 질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세기 1:27

크레스카스와 알보 – 두 철학자의 시대와 사상
강연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었습니다. 하스다이 크레스카스 (Hasdai Crescas, 1340 ~ 1410)와 요세프 알보 (Joseph Albo, 1380 ~ 1444)입니다.
이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지만, 자유의지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크레스카스는 14세기 스페인 사라고사 (Zaragoza)에서 태어난 랍비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는 당시 유대 사상계를 지배하던 마이모니데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합리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1410년경 히브리어로 저술한 『빛의 주님 (Or Adonai)』에서 독자적인 우주론과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물리학에 능통했으며, 무한에 관한 그의 논의는 훗날 스피노자와 근대 물리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대 사상사에서 크레스카스는 ‘외부로부터 유대 철학을 비판한 사람’이 아니라 ‘내부에서 토라의 언어로 재구성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요세프 알보는 크레스카스의 제자로서 스페인 카스티야 (Castile)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1413 ~ 1414년 토르토사 논쟁 (Disputation of Tortosa)에 유대교 대표 논객으로 참여했는데, 이 논쟁은 기독교 측이 유대교의 탈무드 해석을 공격하며 강제 개종을 압박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 알보는 1425년경 유대 신앙의 근본 원칙들을 체계화한 『이카림 (Sefer ha-Ikkarim,원리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유대 철학의 핵심을 세 가지 근본 원리 – 하나님의 존재, 토라의 신적 기원, 상벌 – 로 압축하며, 중세 유대 사상의 집대성으로 평가받습니다.
알보의 사상은 이후 수세기 동안 유대 교육의 기초 텍스트로 사용되었으며, 스피노자를 비롯한 근대 사상가들에게 비판적 대화의 상대가 되었습니다.
“크레스카스는 유대 철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비판자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언어로 논박했다.” – 해리 울프슨 (Harry A. Wolfson, 1887 ~ 1974), 크레스카스의 하나님 비판

크레스카스의 결정론 – 하나님의 인과 사슬 안에서
크레스카스의 핵심 주장은 명료합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선행 원인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 (Determinationism)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격, 교육, 환경, 감정, 과거 경험,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 이 모든 것이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말은 상당 부분 착각일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크레스카스는 이것이 도덕적 책임을 없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 인과적 구조 속에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을 하지 못할 지라도 여전히 도덕적 존재이며, 욕망과 혐오의 감정을 통해 자신의 삶에 참여합니다.
Lebens는 이 지점에서 크레스카스가 단순한 결정론자가 아니라 ‘부드러운 결정론 (compatibilism)’의 선구자였음을 강조했습니다.
“인간은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책임 있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그 구조 안에서 응답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 하스다이 크레스카스 (Hasdai Crescas, 1340 ~ 1410), 빛의 주님 (Or Adonai)

알보 (Albo)의 반론 – 율법이 가능하려면 자유가 있어야 한다
스승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었던 알보는, 그러나 자유의지 문제에서 결정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무엇인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이 물음은 토라가 단순한 종교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 – 응답을 전제로 하는 관계 – 임을 전제한다고 강조합니다.
알보의 논리는, 만일 인간이 처음부터 선택할 수 없는 존재라면, 순종도 불순종도, 회개도 용서도 모두 의미를 잃는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의지를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언약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 (全知)와 인간의 자유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내가 오늘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는 생명을 택하라.” – 신명기 30:19
알보에게 이 구절은 단순한 권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자발적 존재라는 사실의 선언입니다.
선택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선택의 자유를 전제합니다. 이 점에서 알보는 마이모니데스 (12세기)와도 생각을 같이 합니다.
마이모니데스는 ‘하나님의 지식이 인간의 선택을 강제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의 범주 안으로 끌어내리는 오류를 범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두 입장의 공존 – 유대 전통의 지적 겸손
Lebens는 이 지점에서 유대 사상 전통의 독특한 면모를 짚어 냈습니다.
크레스카스와 알보, 마이모니데스는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견해는 반박되었지만 삭제되지 않았고, 후대의 랍비들은 그 논쟁 자체를 배움의 자산으로 삼았습니다.
탈무드가 힐렐과 샴마이의 상반된 견해를 함께 보존하는 것처럼, 이 논쟁도 살아있는 대화로 전수되었습니다.
탈무드는 이러한 논쟁을 ‘하늘을 위한 논쟁 (Machloket l’shem Shamayim)’이라 부릅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대화입니다.
18세기의 위대한 랍비 빌나 가온 (Vilna Gaon)은 이 균형을 일생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를 깊이 신뢰하면서도 인간의 노력을 조금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섭리를 믿기에 인간은 더욱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는 하나의 목소리를 만드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여러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는 전통이다.” – 조나단 색스 (Jonathan Sacks, 1948 ~ 2020), 차이의 존엄성

기독교와의 대화 –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저는 이 강연을 들으며 이 논의가 유대교 안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상기시킬 수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피코 델라 미란돌라 (Pico della Mirandola)는 창세기 1장 26-27절을 독창적으로 해석하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형성해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짐승처럼 낮아질 수도 있고 천사처럼 고귀한 존재로 성장할 수도 있다 – 하나님의 형상은 완성된 본질이 아니라 열린 가능성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전통 역시 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자유를 회복시킨다고 했고, 루터는 의지의 노예성을 말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구원을 은혜의 영역으로 돌렸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서로 모순이 아니라 인간 이성을 넘어서는 신비 안에서 공존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C. S.루이스는 철학보다 사랑의 언어로 자유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로봇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다. 그래서 자유는 거부할 위험을 동반하면서도 필요한 선물이다.” _ C. S.루이스 (C. S. Lewis, 1898 ~ 1963), 순전한 기독교

삶의 공동 저자 – 강연의 정수
레벤스는 자유를 단순히 ‘원인 없는 선택’으로 이해하기보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저자 (Author)’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논의를 따르면 우리는 우리 삶의 절대적인 창조자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역사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책임있게 써 내려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창조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우리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공동 저자 (Author)가 될 수 있다.” – 2026 Belfer Oration, The Great Synagogue Sydney
이 문장으로 크레스카스의 겸손과 알보의 책임, 마이모니데스의 신비, 피코의 가능성, 칼빈의 주권, 루이스의 사랑, 그리고 조나단 색스의 언약이 하나의 그림으로 묶여졌습니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조건들 안에서도 응답하고, 선택하고, 의미를 빚어 가는 능동적인 존재 (Author)입니다.
이것이 탈무드가 수천 년 동안 자유의지 논쟁을 폐기하지 않고 살아있는 대화로 유지해온 이유일 것입니다. 완벽한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추구와 긴장의 여정 속에서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가며 – 자유는 책임이다
700년이 넘도록 유대교와 기독교는 자유의지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크레스카스와 알보의 논쟁도 결론 없이 열린 채로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설명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끝없이 성찰해야 할 신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날 강연이 남긴 분명한 것은 성경은 인간을 운명의 희생자로 그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 운명의 절대적 주인으로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확연한 각인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잘못을 회개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유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자유는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선택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써 내려가는 거룩한 책임 (Author)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크레스카스와 알보가 스페인의 격변기에 붙들었던 그 질문은, 여전히 2026년 7월, 시드니의 대회당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지혜를 찾는 생명의 자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내가 오늘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는 생명을 택하라,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 신명기 30:19
* 2026 Belfer Oration – Rabbi Dr Sameul Lebens 강연 참관 기고문 / The Great Synagogue, Sydney / 2026. 7. 1.

제공 = 소장 정원일 목사 (호주이스라엘연구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