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의 연맹체, 알레만니 / 알레마니 (Alemanni) 또는 알라마니 / 알라만니 (Alamanni)
알레만니 / 알레마니 (Alemanni) 또는 알라마니 / 알라만니 (Alamanni)는 게르만족의 연맹체이다.
213년 로마군의 공격을 받아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했다. 그들은 이후 수 년간 로마의 여러 속주를 크게 괴롭혔는데 260년경에는 아그리테쿠마테스를 점령하고 5세기 말에는 알자스와 스위스 북부 지방까지 영토를 넓혀 그 곳에 게르만어를 보급했다. 그러나 496년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1세에게 정복당해 프랑크 영토에 병합되었다.
알레마니는 여러 개의 게르만 부족이 합쳐져 이루어졌으며 게르만 내에서 느슨한 부족연맹체를 결성하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몇몇 부족은 뭉쳐 2명의 군지휘관 아래 군사력을 결집시켰으나 그 밖의 부족들이 쉽게 단결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그들은 중앙정부라 할 만한 것은 갖고 있지 않았다. 독일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Allemagne (알레마뉴)와 스페인어 ‘Alemania’는 이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 알라마니족 (Alamannen), 수에비족의 한 분파로서, 셈노네스족을 중핵으로 하여 형성된 서게르만계의 혼성부족
튜턴족과 더불어 독일, 오스트리아를 구성하는 주민족. 프랑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프랑크 제국 멸망후 독립하여 신성로마와 프로이센을 세운다.
알레마니족이라고도 한다. 원주지 엘베강 (江) 유역에서 3세기 초에 마인강 유역으로 이동하였으며, 3세기 중엽에는 로마 영내로 진출했다가, 357년 황제 율리아누스에게 슈트라스부르크에서 격파 되었다. 5세기 초에는 스위스 동부에서 레히강 (江), 알프스에서 라인 중유역에까지 세력을 넓혔다. 496년 프랑크왕 클로비스에게 정복되었고, 6세기 말부터는 그리스도교화가 진행되었다. 메로빙거왕조 말기에 한때 독립성을 강화하여, 부족대공 (大公) 란트프리트 밑에서 부족법전이 성문화되었다. 카롤링거왕조에는 자립성을 빼앗겨 프랑크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왕국이 해체된 뒤 부족대공 밑에서 정치적 통일을 회복하여 슈바벤대공령으로서 독일왕국에 속하였다.
– 에비족에서 갈라져 나온 한 종족으로 구성된 서게르만계 혼성부족

원주지였던 엘베강 유역으로부터 이동하여 3세기 중엽 로마령까지 진출했고, 5세기 초에는 스위스 동부에서 레흐강, 알프스에서 라인강 중류지역까지 이동했다. 496년 프랑크 국왕 클로비스에게 정복당해 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왕국이 무너진 뒤 부족대공 밑에서 정치적 통일을 회복하여 슈바벤대공령으로서 독일왕국에 속했다. Alemanni Alamanni, Alamani 라고도 쓴다.
게르만족의 일파로 213년 로마군의 공격을 받아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했다. 그들은 이후 수년간 로마의 여러 속주를 크게 괴롭혔는데 260년경에는 아그리테쿠마테스를 점령하고 5세기말에는 알자스와 스위스 북부지방까지 영토를 넓혀 그곳에 게르만어를 보급했다. 그러나 496년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에게 정복당해 프랑크 영토에 병합되었다. 알레마니족은 원래 여러 개의 게르만 부족이 합쳐져 이루어졌으며 수에비족 내에서 느슨한 부족연맹체를 결성하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몇몇 부족은 뭉쳐 2명의 군지휘관 아래 군사력을 결집시켰으나 그밖의 부족들이 단결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그들은 중앙정부라 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 기타 : 로마시대 이민족의 이동과 침략
게르만족은 BC 1800년경에 중부 독일에 살던 줄무늬토기 문화권 (Corded Ware Culture)의 전부 (戰斧) 민족이 북해 동해안으로 이주해 그곳에 살고 있던 거석문화권의 주민과 합치면서 생겨났다.
청동기시대에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로 퍼졌고 독일 내륙으로 더 깊이 침투했다.
게르만족이 호박 (琥珀) 교역을 통해 지중해와 접촉한 것은 순수한 농경문화권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의 발전을 촉진했지만, 철기시대에는 켈트족과 일리리아인 때문에 지중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게르만족의 문화는 쇠퇴했고 기후 조건의 악화와 인구 증가 때문에 새로운 땅을 찾아 좀더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중부 유럽의 켈트족과 일리리아인은 갈수록 심한 압박을 받게 되었다.
게르만족 선발대는 BC 200년 이전에 이미 도나우 강 하류에 도착했지만 마케도니아 왕국 때문에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BC 2세기말에 도나우 강이 범람했다. 유틀란트 반도에서 내려온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 및 암브로네스족은 점점 불어나는 홍수에 쫓겨 켈트족과 일리리아인이 사는 지역으로 뚫고 들어가 로마 세력권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그들은 BC 113년 카린티아 (지금의 오스트리아 케른텐)에 처음 나타났고, 이어서 프랑스 남부에 나타났으며, 마침내 이탈리아 북부에 진출했다.
BC 102년 로마인들은 튜튼족을 완전히 무찔렀고 이듬해에는 킴브리족의 군대를 섬멸했다. 그러나 슈바벤 부족은 독일 중부와 남부를 가로질러 꾸준히 이동했으며, 켈트족은 갈리아 지방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오비스투스가 이끄는 게르만족이 라인 강 상류를 건너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순트가우에서 승리를 거두어 (BC 58) 그들의 진출을 막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로마는 라인 강과 도나우 강 유역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 두 강의 건너편에 있던 게르만족은 70년경부터 게르만-라이티아 성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지역으로 밀려났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떠난 게르만 부족들 (고트족 · 반달족 · 부르군트족 등)이 150년부터 비수아 강 하류와 오데르 강에서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소동은 다른 게르만 부족들한테도 퍼졌으며, 그 결과 로마와 마르코만니족 사이에 벌어진 전쟁 (166~180)은 이탈리아 자체를 위협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성공적인 원정으로 로마는 마르코만니아와 사마르티아를 속주로 얻었지만 그가 죽은 뒤에는 이 속주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알레마니족이 마인 강을 거슬러 올라와 게르만 성벽에 이르렀다.
고트족은 200년경 동쪽으로 흑해에 이르렀다. 해마다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 부족들은 도나우 강 하류를 건너거나 바다를 건너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침략했고 키프로스 섬까지 원정해 약탈을 자행했다. 로마는 나이수스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니슈)에서 거둔 승리 (269)로 마침내 그들의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258년에 알레마니족과 프랑크족은 국경 방어선을 돌파해 라인 강 오른쪽 연안에 정착한 뒤, 갈리아와 이탈리아 쪽으로 끊임없이 침투했다. 로마는 제국 전역에 있는 도시를 요새화했다.
프랑크족과 작센 (색슨)족은 갈리아 북해안과 브리튼 섬 해안을 약탈했으며 그후 3세기 동안 게르만족의 침입은 서로마 제국의 재난이 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게르만족의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르만족은 로마 군대에 들어가 제국 영토의 이주민으로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공적을 세움으로써 로마 군대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375년에 중앙 아시아의 훈족이 동고트족을 공격했다.
이 사건은 동게르만족에게 심각한 불안을 불러 일으켰다. 훈족은 물러가지 않고 계속 배후에 남아서 많은 게르만족과 그밖의 부족들을 차츰 정복했다.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족은 겁에 질린 나머지 도나우 강의 국경을 뚫고 로마 제국 안으로 몰려 들어왔고, 발칸 반도는 또다시 게르만 군대의 전쟁터가 되었다. 로마 제국은 아드리아노플 (지금의 터키 에디르네)에서 참패한 뒤 (378), 모든 적을 제국의 영토에서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인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로마는 추방할 수 없게 된 부족들을 ‘동맹자’로 제국 안에 정착시켰다. 게르만족은 보조금을 받았고 그 대가로 군대에 병력을 공급했다. 제국은 차츰 게르만화했으며 군대의 게르만화는 거의 완전히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발칸 반도를 통해 들어온 게르만 부족들 가운데 그곳에 정착한 부족은 하나도 없었다. 395년에 제국이 동서로 나뉜 뒤, 동로마 제국 황제들은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게르만족을 서로마 제국 쪽으로 쫓아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5세기초부터 서로마 제국은 수많은 이주의 무대가 되었다.
서고트족은 발칸 반도에서 이탈리아로 밀고 들어와 410년에는 로마를 잠시 점령하기까지 했다. 406~407년에 슐레지엔 지방 및 그보다 훨씬 동쪽에 살던 게르만족과 그밖의 부족들 (반달족 · 알라니족 · 수에비족 · 부르군트족)은 훈족을 피해 라인 강을 건너 스페인까지 침투했다.
반달족은 그후 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에 독립국가를 세웠다.
이것은 게르만족이 로마 영토에 세운 최초의 독립국가였다.
훈족의 왕 아틸라가 일부 게르만족과 합세해 서쪽으로 진격하자, 로마군 사령관 아이티우스는 카탈루냐 (지금의 프랑스 샬롱쉬르마른) 평원 전투 (451)에서 게르만족의 지원을 얻어 아틸라를 무찔렀다.
발칸 반도는 3번째로 동게르만족에게 끔찍한 침략을 당했고 유틀란트 반도의 주트족과 앵글족 및 색슨족은 브리튼 섬으로 건너갔다. 프랑크족과 알레마니족은 마침내 라인 강 건너편에 정착했으며, 부르군트족은 론 강 유역을 따라 세력을 확장했고, 서고트족은 스페인을 거의 다 차지했다.
476년에 게르만 용병들은 이민족으로 로마 장군이 된 오도아케르를 이탈리아 왕으로 선언했고, 오도아케르는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켰다. 이로써 서로마 제국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에서는 황제의 지배가 계속되었고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함락될 때까지 수많은 포위 공격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5세기말경에는 서로마 제국 영토에 정착한 이민족들은 대부분 로마의 관습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민족 지도자들은 로마의 명문집안과 혼인을 맺고 황제 칭호를 채택했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게르만족은 유럽에 그들 부족의 고유한 제도와 민족적 관습, 고도로 발달한 서사시를 비롯한 구전과 예술적 전통을 들여왔다. 그들의 영향력은 로마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중부 유럽에서 가장 강했고, 로마 문화가 확립되어 있던 북부 (브리튼 섬)와 서부 (갈리아) 지역에서는 게르만족의 영향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가장 많이 로마화한 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약했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중부 유럽 지역에서는 고대 고지 독일어가 발달했고, 브리튼 섬에서는 앵글로색슨어가 발달한 반면, 남부지방에서는 공통된 라틴어의 유산을 토대로 한 중세 로망스어가 발달했다.
6세기부터 새로 나타난 게르만족 세력은 그들 고유의 이교문화를 고수하면서 동화에 저항했다.
작센족은 북부 유럽 라인 강 동쪽에 정착했다.
아바르족과 그들의 동맹 세력인 슬라브족은 비수아 강과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꾸준히 서쪽으로 이동해 도나우 강에서 동로마 제국의 허약한 수비를 무너뜨린 뒤, 남쪽의 발칸 반도와 서쪽의 중부 유럽으로 밀고 들어왔다.
567년경에 아바르족은 이미 헝가리 평야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했고 796년 샤를마뉴 대제에게 패배할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다.
동슬라브족은 580년대에 시르미움과 싱기두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을 공격해 성공한 뒤 발칸 반도로 침투했고, 다른 부족들은 북쪽과 서쪽으로 이동해 결국 엘베 강 연안의 작센족 가까이에 정착했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은 합세해 626년에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지만 실패했고 이로써 이들 이교도의 세력 팽창은 막을 내렸다. 슬라브족은 2세기가 넘도록 발칸 반도를 점령했지만 결국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동로마 제국에 흡수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