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考古學, Archaeology)
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은 물질과 동식물, 인류가 지난 시대에 남긴 흔적을 찾아내고 이들의 말없는 역사를 밝히는 학문으로 사회과학의 일종이다.
인도 유럽어 Archaeology, Archéologie, Archäologie 등의 여러 낱말은 고대 희랍어의 “아르햐이올로기아” (arxaiologia, arxaios: “오래된, 원천의” logos: “학”)에 유래한다.”말없는 역사”라는 표현에서 짐작하듯이 고고학은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관계한다. 물질과 동식물, 인류가 남긴 흔적과 사건을 기록하고 이를 가능한 한 객관으로 해석해 역사 연구의 뜻이 있다면, 고고학은 사라졌거나 쉽게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과거 인류의 흔적을 추적하고 발굴하여 지난 시대 인류의 문화와 문명 이해에 초점을 두므로 역사시대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살았던 장소 바로 그 곳에서 고고학 연구의 첫 장이 씐다. 예컨대 신라 문화와 그 시대 생활상을 고고학상으로 밝히려면 신라인이 살았던 대한민국을 탐사하고 그 유적지와 주거지를 문자 그대로 “파헤쳐” 보는 수밖에 없다. 고고학에 내재한 이런 특수한 전제조건으로 말미암아 고고학은 수시로 지방과 문명을 좇아 나름대로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키게 되었다. 즉 고대 희랍과 로마의 고전 고고학, 이집트 고고학, 기독교 고고학은 고고학 분야 중에서 독립되고 가장 발달된 분야다. 고고학과 관련된 학문으로서는 역사학, 지리학, 지질학, 생물학, 건축학, 음악사학, 미술사학, 인류학을 손꼽는다.
그러나 고고학은 단지 역사의 물증을 발견하는 학문이 아니다. 고고학은 인간의 흔적 뿐만 아니라 물질, 동물과 식물, 지질의 흔적도 다루기 때문이다. 생물고고학, 지질고고학 등이 하위분야에 속하면서 고고학이 역사학, 혹은 인문학에 속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 고고학의 개요
고고학은 과거 인류들이 남긴 물질적 자료(즉 고고학 자료)를 통해 당시의 문화, 즉 행위, 사회적 조직, 이념 등을 복원하고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변화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Sharer and Ashmore, 1993)이다. 이걸 연구하는 학자가 고고학자다. 인류 시대 이전의 생명의 역사를 연구하는 고생물학과는 엄연히 다른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시대를 가리지 않고 연구 대상이 된다. 흔히 문헌기록이 없거나 부족한 선사시대 혹은 고대만을 고고학으로 연구한다고 생각하지만, 중세 및 근대도 그 적용 방식은 고대와 다를지언정 고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로 들어서도 일제강점기에서 6.25 전쟁, 5.18 민주화운동 시기까지 발굴조사 및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사와 관련하여 고고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경우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탐색 작업 및 5.18 당시에 계엄군에 의한 학살의 장소로 추정되는 광주교도소의 발굴, 내지는 대한민국 국방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6.25 전쟁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이 있다.
○ 고고학의 역사
고고학은 호고주의(好古主義)라는 과거 유물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했다. 학문적인 성격은 아니였으며 옛날의 번쩍이는 물건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써 르네상스 때에는 주로 딜레탄트(Dilettant)라 불렸다.
19세기가 되면서 지질학 원리가 확립되고 진화론이 나타나며, 인류의 태고성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면서 고고학은 점차 학문적 성격으로 변화하게 된다. 찰스 라이엘이 동일과정설을 주장하게되고 이 영향 속에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나타난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프랑스 솜 강에서 고인류의 인골과 석기, 골기가 발견됨에 따라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닌 진화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아가 크리스티안 톰센에 의해서 3시대법이라는 시대구분론이 주장되게 되었고 이후 존 러복에 의해서 구석기와 신석기를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부터는 이러한 고고학의 태동기를 거쳐 근대적 학문으로써 자리잡게된다. 플린더즈 페트리와 피트 리버스는 발굴의 몇가지 원칙 및 조사 방법론, 연구 방법론을 주장하였으며 오스카 몬텔리우스는 진화론에 입각한 형식학적 방법을 체계화시켜나갔다. 이러한 방법론의 등장 속에서 고든 차일드는 마르크스 주의에 입각하여 유럽 및 중동의 선사시대 유물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광범한 편년체계를 완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이주, 전파주의적 관점의 해석을 하였으나 자연과학적 분석방법이 나오면서 그의 이론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유물, 유적을 이해하는 방법론과 관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주와 전파라는 비교적 단순한 해석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루이스 빈포드에 의해서 이른바 과정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고학을 과학의 분야로 간주하여 인간 행동의 일정한 법칙을 찾으려했으며 연역적인 방식으로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다양한 이론과 방법론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의 중범위 이론이 대표적이며 연구 방법들 중에서는 민족지고고학, 실험고고학 등이 해당한다. 과정주의 고고학의 풍조가 거치면서 단순히 유물의 기술(記述)의 수준에서 벗어나 왜 유물(또는 유물의 조합)이 어떠한 문화 속에서 관계를 맺어가고 변화해가는지 원인과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고고학은 완연한 학문으로써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이안 호더, 크리스토퍼 틸리 등에 의해 이러한 과정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후기 과정주의적 고고학으로 접어들었다. 특히 과정주의 고고학에서 내새운 몇가지 관점들을 비판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간 활동의 이면에 일률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은 없다는 것이었다. 일반화, 진화론 일변도의 주장과 이론 등을 배격하고 다양한 관점의 고고학─ 구조주의 고고학, 상징주의 고고학, 마르크시즘 고고학, 재귀주의 고고학, 젠더 고고학, 동성애 고고학, 비판 고고학 등을 주창하였다. 다만 후기 과정주의의 등장이 과정주의의 종언은 아니며, 후기과정주의의 해체주의적인 질문들은 여전히 현대 고고학에 있어서 큰 질문이자 과제이며 현재의 고고학은 과정주의적 관점과 후기 과정주의적 관점이 병존하고 있다.
○ 고고학의 방법론
– 시대 구분
19세기 초 덴마크의 학자, C.J.톰센은 인류의 도구 발전 단계를 따라 선사시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구분하는 3시대 구분법( Three-age system)을 주장하였다. 톰센의 제자, 보르사에(Jens Jacob Asmussen Worsaae)는 층위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톰센의 이론을 가다듬는다. 그 후 영국의 학자, 존 러벅(John Lubbock)이 석기시대를 구석기와 신석기로 분리하며 선사시대를 5시대로 구분하게 된다.
그러나 이 구분법은 유럽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다른 지역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죠몬 시대가 지나자 중국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청동과 철기 문화를 한꺼번에 받아들여 청동기와 철기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각 나라의 고고학자들은 유럽의 시대 구분법을 벗어나 독자적인 시대 구분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국 고고학에서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원삼국시대(초기철기시대, 삼한시대), 삼국시대로 시대를 구분한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 실존의 유명한 고고학자
크리스티얀 톰센
오스카 몬텔리우스
고든 차일드
프랑수아 보르도
루이스 빈포드
○ 고고학의 종류
인류 고고학
역사고고학
지질고고학
동물고고학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