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소설가 에우클레이데스 / 유클리드 (Euclid of Alexandria, BC 300년경)
에우클레이데스 (고그: Εὐκλείδης, 기원전 300년경) 또는 영어식 이름으로 유클리드 (Euclid, 또는 Euclid of Alexandria)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소설가이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어느 나라 수학자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재위 기간 (기원전 323년~기원전 283년) 동안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부탁으로 최초의 대학이자 도서관,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활동하였고 (하지만 이 대학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정확한 위치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알려진 정수론 및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한 업적을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다.

– 유클리드 (Euclid of Alexandria)
.국적: 그리스
.분야: 수학
.영향을 받은 사람들: 아이작 뉴턴, 이븐 알하이삼,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 등
유클리드 (Euclid)라는 이름은 영어식이고, 본인이 사용했을 코이네 그리스어로는 ‘에우클리데스’ (Ευκλείδης)다. 고전어로는 에우클레이데스로 읽는다. 그는 기하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서인 ‘원론’ (Στοιχεῖα, 스튀키아, Elements of Geometry)을 남겼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절의 기하학은 오늘날의 수학과 같은 말로 사용되었으므로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과도 같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프톨레마이오스왕은 뛰어난 수학자인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왕은 기하학이 너무 어려워 유클리드에게 물었다.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유클리드는 “왕이시어.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도록 만들어 놓은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격언은 워낙 오래된 말이라서,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이 말이 유클리드가 당시 이집트의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했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또 다른 제자 한 명도 “이렇게 딱딱한 정리들을 배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노예 한 명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자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 주어라. 저놈은 자신이 배운 것으로부터 반드시 본전을 찾으려는 놈이다.”
아테네 학당에서 오른쪽 아래에 컴퍼스를 들고 있는 이가 바로 유클리드이다.
ὅπερ ἔδει δεῖξαι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라틴어로 번역하면 Quod Erat Demonstrandum가 된다.

○ 생애 및 활동
에우클레이데스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εὖ (에우; 잘, 좋게) + 고대 그리스어 κλέος (클레오스; 알려짐, 평판)의 합성어이며, “평판이 좋음, 유명함”이라는 뜻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삶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많지 않고, 그에 관한 소량의 언급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에 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언급마저도 그가 살았던 세기 후에야 프로클로스 (고그: Πρόκλος)와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 (고그: Πάππος)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
프로클로스는 5세기에 쓰여진 그의 저서 ‘주석이 달린 원론’을 통해서 에우클레이데스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에우클레이데스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사이의 기하학의 왕도에 대한 일화는 후세의 창작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다른 고대 그리스 수학자인 메나이크모스와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 사이의 일화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 주요 업적
-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에우클레이데스 (유클리드)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고그: Στοιχεῖα)이다. 기하학 원본이라고도 불린다 (원본은 그리스어로 문자라는 뜻이다). 에우클레이데스 자신의 독창적인 내용들은 별로 없지만, 그 형태가 단순하고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당시까지 밝혀진 기하학과 정수론의 내용들을 다뤘는데, 10개밖에는 되지 않는 공리들에서 465개나 되는 명제들을 유도해냈다. 내용들 중 많은 부분들이 그 이전의 수학자들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이 수학사의 고전이 된 이유는 일정한 공리에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는 논리적인 전개였다. 공리 체계에 바탕을 둔 근대 수학은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 근원을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은 수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의 하나로, 출판된 뒤부터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까지 수학, 특히 기하학을 가르치는데 중요한 교과서로 쓰였다.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불리는 기하학의 정리들이 작은 공리로부터 출발해서 연역된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은 수백 년동안 순수한 기하학 그 자체로 여겨졌으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지금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불린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 나오는 2개의 정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은 지금도 유클리드 호제법이라고 불리며, 소수의 무한성에 대한 정리 역시 오늘날에도 유클리드의 정리로 불린다. 또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독창적 증명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공리 체계
원론이 수학사의 고전이 된 이유다. 유클리드는 일정한 공리에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는 논리적인 전개를 펼쳤는데, 이 방식이 바로 근대 수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 그리고 공준 (공리 중에서 특별히 기하학적 성질을 가지는 것, 현재는 모두 공리로 통일)이란 다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한 전제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으로, 증명하지 않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공리를 근거로 하여 증명되는 것을 정리라고 부른다.

.유클리드 기하학
그리스 수학자인 유클리드에 의해 체계화된 수학의 한 분야이다. 유클리드의 저서 원론의 제일 처음에 등장한다. 이 원론은 수학의 논리적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공리 체계’를 도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이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오랜 세월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논리 체계에 대한 모범이자, 수학의 증명법 및 형식적 이론의 모범이 되었다. 유클리드 이전에도 많은 수학자들이 유클리드가 증명해낸 성과들을 알고 있었지만, 유클리드는 이러한 명제가 포괄적이고 연역적이며 논리적인 시스템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보여 주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좌표를 사용하지 않고 공리에서 명제로 논리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좌표를 사용하는 해석기하학과는 대조적인 합성 기하학의 예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적용되는 위상 공간을 ‘유클리드 공간’ (Euclidean space)이라고 한다.
[5개의 공준]
원론에는 5개의 공준(=공리)가 등장하는데 다음과 같다.
1.서로 다른 두 점이 주어졌을 때, 그 두 점을 잇는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임의의 선분은 더 연장할 수 있다.
3.서로 다른 두 점 A, B에 대해, 점 A를 중심으로 하고 선분 AB를 한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릴 수 있다.
4.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임의의 직선이 두 직선과 교차할 때, 교차되는 각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180도)보다 작을 때, 두 직선을 계속 연장하면 두 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은 쪽에서 교차한다. (평행선의 공리, 제5공준)
이 다섯 가지의 공준을 가지고 이루어진 기하학을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부른다.
한 가지 재밌는 내용을 덧붙이자면, 유클리드 본인도 기하학 공리 중 앞의 4개는 명백해 보였으나 평행선 공리는 이것이 정말 공리가 맞는지, 즉 혹시 앞의 4개로부터 연역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클리드를 포함한 후세의 수학자들은 기하학의 문제를 증명할 때 가급적 평행선 공리를 쓰지 않고 증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평행선 공리가 공리인지 아닌지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잘 되지 않자 19세기 수학자들은 전략을 바꿔, 평행선 공리가 거짓이라고 가정하면 모순이 발생함을 보이고자 했다. 그런데 원래 의도와는 달리, 평행선 공리를 거짓으로 하는 새로운 공리계를 만들었더니 아무런 모순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르러 로바체프스키와 야노스 볼리아이 등에 의해 제5공준을 부정하는 기하학이론 체계가 완성되면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이름이 붙고, 제5공준을 받아들이는 기하학을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부르게 된다. 간단한 예로 공 위의 세 점을 잇는 삼각형을 그리면 각각의 선분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며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크다 (구면기하학 또는 리만기하학). 또한 말 안장 위의 세 점을 잇는 삼각형을 그리면 세 내각의 합은 180도 보다 작게 된다 (쌍곡기하학).
.유클리드 호제법
원론에 나오는 두 개의 정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이다.
두 자연수 A, B에 대하여 A를 B로 나눈 나머지를 R이라 하면, A와 B의 최대공약수와 B와 R의 최대공약수는 같다는 성질을 이용하여, B를 R로 나눈 나머지 R1을 구하고, 또 R을 R1로 나눈 나머지R2를 구하는 것을 반복하면 최대공약수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유클리드 호제법이라고 하며 명시적으로 기술된 가장 오래된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 현존하는 기타 저서
《원론》 말고도 현존하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주어진 값》(고대 그리스어: Δεδομένα, 데도메나) 은 기하학에 대한 책이다.
《현상》(고대 그리스어: Φαινόμενα, 파이노메나) 은 구면 기하학을 다룬다.
《광학》(고대 그리스어: Ὀπτικά, 옵티카)은 광학을 다루는 그리스 최고 (最古)의 문헌이다.
《도형의 분할에 대하여》(고대 그리스어: Περί διαιρέσεων βιβλίον, 페리 다이이레세온 비블리온)는 주어진 도형을 주어진 비로 분할하는 문제를 다룬다. 아랍어 번역으로 부분만이 현존한다.
《거울 광학》(고대 그리스어: Κατοπτρικά, 카톱트리카)은 거울을 사용한 기하학 문제를 다루며, 아마 후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 손실된 저서
이 밖에도, 문헌에는 에우클레이데스가 집필했다고 수록되어 있는 여러 책들이 전해 오지만, 이들은 짧은 인용을 제외하고는 현존하지 않는다.
《원뿔 곡선》(고대 그리스어: Κωνικά, 코니카)은 원뿔 곡선을 다룬다. 후에 페르게의 아폴로니오스가 이 내용을 확장하였다.
《포리스마》(고대 그리스어: Πορίσματα, 포리스마타). ‘포리스마’ (고대 그리스어: πόρισμα)는 어떤 기하학적 작도가 가능할 조건을 제시하는 수학적 정리이다.
《착오의 서(書)》(고대 그리스어: Ψευδάρια, 프세우다리아). 논리적 오류를 다룬다.
《곡면 궤적》(고대 그리스어: Τόπων τῶν πρὸς ἐπιφανείᾳ, 토폰 톤 프로스 에피파네이아). 이차 곡면에 대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랍 문헌에서는 에우클레이데스가 집필했다고 하는 여러 역학에 대한 책들이 등장한다.

○ 일화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절의 기하학은 오늘날의 수학과 같은 말로 사용되었으므로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과도 같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프톨레마이오스왕은 뛰어난 수학자인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왕은 기하학이 너무 어려워 유클리드에게 물었다.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유클리드는 “왕이시어.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도록 만들어 놓은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격언은 워낙 오래된 말이라서,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이 말이 유클리드가 당시 이집트의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했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위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와의 대화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에우클레이데스의 강연 도중에 한 제자가 “교수님, 수학은 너무 지루합니다. 도대체 그걸 배워서 어디다가 써먹을 수 있죠?”라고 묻자, 에우클레이데스는 하인을 불러서 “여봐라, 배운 것으로 반드시 이득을 얻으려고만 하는 저 친구에게는 동전 세 닢만 주고 강의실 밖으로 쫓아내라.”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일화를 볼 때, 에우클레이데스는 배우는 그 자체를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성격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