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 (Gombrich)의 ‘세계사’와 ‘서양미술사’
에른스트 곰브리치 (Ernst Hans Josef Gombrich, 1909년 3월 30일 ~ 2001년 11월 3일)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영국의 사학자 (미술사학자)로 《세계사》, 《서양미술사》 등의 저자이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Ernst Gombrich)
.본명: Ernst Hans Josef Gombrich
.출생: 1909년 3월 30일, 오스트리아
.사망: 2001년 11월 3일 (92세)
.국적: 영국
.성별: 남성
.직업: 미술사학자
.분야: 미술사
.학력: 빈 대학교
.주요저서: 곰브리치 세계사,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서훈: 1966년 대영 제국 훈장 3등급 (CBE) 수훈, 1972년 기사작위 (Knight Bachelor) 서임, 1988년 메리트 훈장 (Order of Merit; OM)
“나는 방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상식을 원할 뿐입니다. 내 유일한 방법이지요.”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영국의 미술사학자다. 1909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교에서 예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하였고 런던 대학교 미술사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미술과 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에서 이제 막 전공 공부를 시작하는 미대 학부생, 그리고 대학원생까지 읽는 두꺼운 책을 만들어낸다.
전 세계적으로 700만 부 이상 팔리며 2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 1950년 출간)》의 저자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사학자 중 한 사람이며 1966년 3등급 대영제국 훈장 (CBE)을 받은 데 이어, 1972년에 기사작위 (Knight Bachelor)에 서임되었다.
그 뒤 1988년에는 1등급 훈장에 준하는 상위훈장 메리트 훈장 (Order of Merit, OM)을 받았다.

○ 생애 및 활동
에른스트 곰브리치 (Ernst Hans Josef Gombrich)는 1909년 3월 30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에서 예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하였다.
1935년 훗날 ‘템즈 앤드 허드슨’을 세운 발터 노이라트로부터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6주 만에 원고를 완성하여 이 책 『곰브리치 세계사』를 냈다.
1936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런던 대학의 바르부르크 문화학 연구소의 일원이 되었고, 1976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미술사를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외에 옥스퍼드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도 강의했다.
1972년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75년 오스트리아의 과학과 예술 분야 명예 십자 훈장, 1977년 독일의 공로 훈장, 1975년 에라스무스 상, 1976년 헤겔 상, 1984년 오스트리아의 명예 기장, 1985년 발잔 상, 1988년 영국 메리트 훈장, 비트겐슈타인 상, 1994년 괴테 상을 받았다.
『곰브리치 세계사』를 영어로 번역하던 2001년 11월 3일에 세상을 떴다.
쓴 책으로 『서양미술사』, 『예술과 환영』, 『이미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등이 있다.

○ 곰브리치 세계사
곰브리치는 애초에 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를 대신할 의도로 이 책을 집필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복잡한 전문 용어가 아닌 쉬운 말, 총명한 아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 책을 그렇게 쉽게 읽히도록 썼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외는 것’보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으며, 왜 지금까지도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세계사의 수많은 사건 중에서 인류에 끼친 영향력과 오늘날까지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 가치를 기준으로 책을 쓴 곰브리치는 문명을 발전시킨 인류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옛사람들이 저지른 과오를 분명히 비판했다.
알파벳의 탄생이, 종교와 학문의 발달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하였다.
반면에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업적 뒤에는 스페인 모험가들이 황금에 대한 욕심으로 원주민을 향해 저질렀던 잔혹한 행위가 있었고, 인도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상인들이 스페인 모험가들과 다를 바 없는 만행을 인도인에게 저질렀다고 썼다.
곰브리치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간이 여러 가지 잘못을 계속해서 저질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곰브리치는 오늘날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있으므로 ‘모두가 희망한 더 나은 미래’가 정말로 도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서로 도우며 살아가려는 여러 나라들의 노력이 있으므로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 특징
곰브리치의 미술사 연구는 소위 ‘시대정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거대담론이나 형식들 속에 내재된 ‘통일성’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르네상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곰브리치는 그런 류의 서술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미술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하나의 ‘아이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던 엘빈 파노프스키와는 대조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고, 시대별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양식이 있다고 믿었던 하인리히 뵐플린과 같은 이들과도 구별된다. 따라서 곰브리치는 파노프스키나 뵐플린과 같은 특정한 방법론의 선구자들과는 다른 방법론을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개별 예술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 (혹은 재현) 하고자 했느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론적인 배경을 매우 강조하는 학자들의 책에 비해서는 비교적 읽기 쉬운 편에 속한다.
사실 이런 특징들은 헤겔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에 뿌리를 둔 역사서술에 대한 반발이었다. 곰브리치는 독일계 학자였지만, 독일 학계에 널리 퍼져있는 이 같은 풍토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개별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예술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전자가 거시사적인 관점에서 미술사를 바라본 것이라면, 곰브리치의 연구는 미시사에 가까운 것이다.
– 비판 : 미시사적 미술사학의 문제점
정확히는 곰브리치보다는, 곰브리치적인 미시사적 미술사학의 태도를 가졌을 때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다. 곰브리치에게 있어 미술은 다른 무엇도 아닌 미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같은 시각은 현대에 접어들어서 크게 비판 받는 부분인데, 곰브리치는 사회, 철학, 경제와 함께 미술이 변화한다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했고 곰브리치보다 한두세대 뒤에 태어난 학자들은 오히려 이 같은 부분들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 세대 학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미술이 다른 사회구성요소들과 동떨어져서 존재한다는 시각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특히 예술/비예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현대미술의 사례들을 놓고 보았을 때, 곰브리치의 주장은 지나치게 현실에서 동떨어진 면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또한 개별 화가들의 행적들을 통해서 점차 발전해나가는 역사를 보여주려는 곰브리치의 시도는 시도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문제되지는 않지만, 미술사는 이런 서술방식에 지나치게 몰두해버리면 자칫 역사서술인지 경전인지 헷갈릴 지경으로 흘러 갈 수 있다. 즉, ‘영웅주의적’ 서술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는 곰브리치와 비슷한 방식으로 교양서들을 쓰는 문필가들이 주로 범하는 오류들이다. 비판자들의 입장에서 이런 서술 방식들은 ‘명작’과 ‘거장’, ‘남성’ 이라는 이른바 기득권자들의 미술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