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복음과 용서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2)
우리들이 교회를 다니거나, 가정에서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이유는 모두 하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려 하거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지켜야 할 그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모두 부차적인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분들은 심적 또는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를 위하여, 또 어떤 분들은 사람들과의 친분을 위해서, 또는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을 마련하기 위하여 교회에 소속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어떤 사람들은 비판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이든 누구도 교회에 소속된 이유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정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방법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정죄 받아 마땅한 행위들도 어떤 경우에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초대교회에도 나타났는데, 사도바울은 그런 경우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빌 1:15)
즉 투기와 분쟁의 원인이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면, 그런 것도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즉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과 용서의 법
이렇게 복음을 방해하려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된 예로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사건으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의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죄는 엄히 다스려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에는 간음에 대한 처벌이 지금보다도 즉각적이고 엄중하여, 돌로 당장 쳐 죽이는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용서해 주십니다. 그것도 그 여인을 간음현장에서 잡아온 기세등등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그리고 율법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던 군중들 앞에서 말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시험하여 실족하게 하려고 이런 사건을 꾸몄지만, 실제로 일어난 역사는 용서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완성된 하나님의 법은 율법과는 달리 죽을죄도 용서하는 사랑의 법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법은 새 계명으로 세상에 길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연류된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들이 감히 정죄할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라도 그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새 계명, 즉 용서하는 사랑의 법을 비유적으로 다룬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께서 예화로 들려주셨던 일 만달란트 빚진 자와 100데나리온 빚진 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임금(하나님)이 개인으로서는 평생 절대로 갚을 수 없는 큰 빚(죄)을 진 어떤 관리의 빚을 모두 탕감(용서)해 주었습니다. 평생 갚을 수 없는 큰돈을 빚진 그 사람은 지금 시대로 치자면, 희대의 경제 사기범이거나 죄로 말하자면 종신형에 해당되는 중죄를 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 만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은 그가 탕감 받은 돈에 비하면 아주 적은(1/60만) 금액이었던 100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만나자 그를 옥에 잡아 가두었습니다(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호주 화폐로 환산하여 실감나게 이야기하자면, 약 150만 달라(약 30년의 연봉) 빚을 탕감 받고는 약 2달라 50센트 (1/60만) 빚진 사람을 붙잡아 옥에 가둔 격입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알게 된 임금(하나님)은 이 일 만달란트를 탕감 받은 관리를 평생 옥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어 버립니다(징계를 내리십니다). 즉 중죄인으로 다루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도 명백히 교훈하는 것은 피차 죄인인 우리들끼리는 절대로 정죄할 권한이 없으며,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자가 그 감사함을 용서라는 사랑으로 베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용서했던 죄인을 중죄인으로 다스리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로 나타나는 속죄 받은 증거
이런 현상이 지금 우리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지 않나요? 우리 자신의 죄 또는 개인적인 약점과 허물은 감추고, 어쩌면 자기가 감춘 그것들과 흡사한 어떤 상대방의 죄, 약점과 허물을 들추어내어 비난하고 정죄하려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서로가 정죄할 수 없으며, 상대방의 허물, 실수 그리고 약점을 용납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교훈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그리고 이 교훈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에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그리고 이 용서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뜻의 핵심이기도 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제사를 받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의 핵심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곧 이것이 복음의 핵심부분입니다. 이 하나님의 용서를 믿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고 들으며, 기도를 드리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는 것을 안다면, 그 복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과오를 서로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구원에서 낙오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믿는 우리 성도님들은 앞으로의 남은 생애동안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상대방을 용서하며 살겠다고 결단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것이 복음을 믿어 속죄 받은 성도의 증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게 하는 증거
이렇게 속죄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창안하여 전파한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2)
그리고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예수님은 아래 성경을 통하여 증언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 8:28)
즉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 용서의 법, 사랑의 법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전하였음을 증언하신 것입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이 복음을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이며, 이 사실을 근거로 복음은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에서 유래된 진리이며,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을 지녔다고 증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필연성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밝히고 있는 바,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되었고, 그 예언대로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증거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2)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해진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믿어 죄를 용서받고, 속죄 받은 감격으로 우리들 간에 일어나는 불화의 요인들을 서로 용서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