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탐심(Covetousness)
(눅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 청한 점심을 같이 하신 후에 그 집에서 나오셨을 때, 수만 명이나 되는 군중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군중들 중에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말씀을 하신 내용입니다.
아마 그 사람의 형 되는 사람이 유산을 다 차지하고 동생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는가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에게 자기 형에게 명하여 유업을 나누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 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라고 말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예수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욕심 많은 자기 형에게 명령해서 자기에게 공정한 대우를 해 주라는 부탁을 한 것이었는데, 예수님은 조금 언짢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서 이 세상의 재물을 갖고자 하는 마음을 보시고, 마음이 불편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눅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한 부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려주십니다. 그 이야기의 골자는 어떤 사람이 재물을 쌓는데 인생을 보내고, 앞으로의 인생을 그 쌓인 재물을 사용하며 풍족하게 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그렇게 재물을 모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취하면 그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곧 이 말씀은 사람이 재물을 좇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 당하고 영벌에 처해지면, 부자로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시면서, 예를 들어서 하늘을 나는 새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들에 백합화를 보면서 인생의 지혜를 깨우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살면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욕심은 좋지 않다는 교훈을 많이 들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별로 하지 않고, 세상에 다른 사람들처럼 조금 더 가지고, 조금 더 우위에 서려는 생각이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이 정도면 욕심 없이 사는 것 아니야?‘라고 자만해 할 때도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에 대하여 물어보았던 재물이 많은 청년의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런 자만심, 즉 욕심을 다스리며 살고 있다는 자만심에 경종을 울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자청년에게 영생의 길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좇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우리들은 이와 같이 소유한 것을 나누어줄 줄 알아야, 예수님을 좇을 준비가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것이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우선 준비해야 할 것이 재물을 움켜쥐지 말고,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일은 열심히 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것에 앞서,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아직 예수님을 좇을 준비조차 안 되었다는 것을 이 재물이 많은 청년에 대한 이야기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탐심에 대해서는 십계명에서도 언급되어 있는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는 율법의 조항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어다.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
죄
십계명을 어기는 것은 벌을 받아야 하는 중죄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을 통칭하는 말인데, 그 죄는 욕심에서 시작된다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15)
즉 욕심은 죄가 되고, 그 죄의 형벌은 (영적)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선과 악
죄는 사망을 불러 왔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죄가 되어 사망이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도 죄인이요, 그 아담의 후손들도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처럼 되어보려는 교만이 첫째 문제였으며,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아 보이는 그 선악과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여서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들 시대에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하나님의 뜻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는 것이니,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재물을 좇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서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이라도 매력을 느껴서 따르거나 숭배하게 되면, 그것은 우상숭배의 중대한 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모든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골 3:5)
이렇게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재물, 돈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보다 돈, 재물에 관심을 더 쏟고 열심을 내는 분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위시하여 우리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우리들에게 멍에를 씌운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멍에를 진 우리의 모습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하는 어리석은 모습이며, 하나님이 아닌 재화의 능력을 믿고 경배하는 죄에 노예가 된 모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옛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아래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16:12-14)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부분 중 중요한 것은 탐욕을 부린 것이며, 거짓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였고, 거짓을 행하므로 악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게 행하는 것들, 즉 죄에 대하여 엄중히 처리하지 않고, 자신들의 죄를 감추려고 백성들의 죄도 묻어두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탐욕을 부리며 살고 있는데도, 우상숭배의 중대한 죄를 저지르며 살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 종교 지도자인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시정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소유를 다른 민족에게 다 빼앗기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며, 이 예언은 이로부터 40여년 후에 실제로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그 백성들은 노예가 되는 역사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 인류에게 일어날 구속역사의 예고편이며,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예레미야의 이런 경고는 지금 이 마지막 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경고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재화에 탐심이 만연한 우상숭배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들은 멸망의 위기에 가까이 와 있으며, 우리들이 가진 소유, 특히 우리들의 가족들을 사탄에게 빼앗기는 위험에 가까이 와 있는 것입니다.
조금 실감나게 이야기하자면, 전쟁이 벌어진 전쟁터에서 우리들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우리가족들의 안전보다 먼저 생각하게 될까요? 물론 당연히 가족들의 안전부터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위험에 처했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혹은 죽을 지경이 되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재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현재 영적 전쟁터에 살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선과 악의 어느 한편에 속하게 되어 있으며, 만일 하나님의 뜻과 달리 재화에 대한 탐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악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죄인이고, 죄로 인하여 영적 사망에 이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죄를 들추어 내려하지 않고, 감언이설로 성도들을 죄에 대하여 둔감하게 하는 시대입니다. 예를 들자면, 교회들은 교회재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있습니다. 교인이 몇 명이고, 헌금이 얼마나 걷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시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 재화를 쌓기도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 시대는 분명 재화를 좇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우리들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영혼구원, 그리고 가족들의 영혼구원의 걱정보다는 각 개인의 축재, 출세를 위하여 줄달음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개인적인 우상숭배로, 죄이며, 곧 영적사망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그 옛날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이며, 또한 그 말씀을 상기시킨 오늘 본문의 말씀에 따라 인생의 목표를 수정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상기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성도님들은 오늘의 이 말씀을 들은 이후로는 탐심을 버리시고, 매사에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중심을 두고, 생각하고 계획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자신이 구원받고, 가족들도 살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