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회개와 교회의 지체
(욘 3: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은 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께 죄를 지은 니느웨 성이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그들의 멸망이 다가왔음을 통보받고,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차마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뻔뻔함을 보일 수 없어, 이렇게 겸손히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뒤 돌아보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자책하는 최소한의 지혜는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요나가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자, 수년전에 있었던 전염병으로 인한 재앙과 개기일식을 기억해 내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자연적 재앙과 하늘의 징조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지혜는 과학문명에 젖어있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때를 묻는 제자들에게, 하늘의 징조를 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요 근래 우리들도 네팔의 대 지진을 위시하여 많은 자연적 재앙들에 대하여 듣고 있으며, 붉은 달(Blood Moon)이 떠오르는 등 하늘에 이상한 징조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징조들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함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니느웨에는 많은 수의 사람들, 즉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사람만 해도 십이만여 명이나 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나이가 어린 어린아이거나, 또는 영적으로 깨닫지 못한 영적유아상태의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자, 곧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니느웨의 왕도 보좌에서 내려와 조복을 입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금식을 하였으며, 그 성에 있는 모든 백성과 육축에 이르기까지 금식을 명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 입니까?
오늘날 현대인들과 비교해 생각해보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세상의 지식과 교훈을 좇으며, 세상의 재물을 우상삼아 살면서도 하나님의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음을 보게 되는데, 이와는 매우 대조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제사
이렇게 자신의 죄, 즉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생각과 행동에 대한 반성과 회개가 없는 이유는 각 개인이 죄에 대한 내적인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원인이라면, 다른 한 가지는 교회 또는 교회의 지체들이, 무사안일하게 개개인의 죄에 대하여 자위적인 망상을 부추기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가 재범에 대하여 반복 적용되는 듯이 착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 6:4-6)
구약시대, 즉 제사를 지내던 시대에는 반복되는 제사를 통하여 지은 죄에 대하여 위안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복되는 제사는 그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심각성을 망각하게 하였습니다. 즉 다시 지은 죄에 대하여 또 제사를 드려 용서를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그릇된 신앙이 뿌리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위시하여 이 땅에는 죄가 만연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렇게 전체적으로 타락한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노아 때와 같이 다시 진멸할 정도로 죄로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침묵하시며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진멸하시는 대신, 친히 말씀으로, 또한 성령으로 이 땅에 예수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역사를 진행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제사를 페하시고, 단 한 번의 제사로 인류와 다시 화해하시는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 제사의 제물은 단 한 분뿐이신 성자예수이시기 때문에, 반복해서 드릴 수 있는 제사가 아니고, 딱 한 번뿐인 제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로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다는 것은 진리이지만, 그렇게 죄를 사하여 주신 후에 다시 죄를 지으면, 속죄 제사를 다시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그 죄를 다시 깨끗하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도 그런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 8:11)
즉 모르고 지은 죄는 용서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만, 용서받은 자가 다시 죄를 지을 때는 다시 용서해 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것이며, 이 사실을 성도들도 꼭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
즉 믿어 용서를 받은 후에 다시 타락하게 된다면 다시 회개하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성령과의 동거를 사모하며, 절대로 성령께서 떠나지 않도록 경건한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한 적이 없으시다면, 성령께서 우리와 동거하실 수 있도록 우리들 자신이 경건한 삶을 추구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회심 또는 거듭남의 체험은 각 개인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놀라운 내적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외적으로도 나타납니다. 이런 사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내 삶에 전과는 다른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변화는 우선 참회의 눈물, 감사의 눈물이 증거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회개하고 나면, 가치관, 역사관이 달라지고, 또한 성경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지며, 하루도 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치 않는 상태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사람들로부터 신앙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할지라도 아직 구속의 확신이 없어 불안해하시는 분이 있으시다 할지라도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 태어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분명하게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 사람이 다시 타락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실제로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성전이 된 사람이 그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문제이지, 아직 성령의 내주가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 즉 성령체험을 확실히 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철저한 회개의 과정과 함께 성전이 될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
성전이 되었다는 말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즉 성령과 동거하는 삶이 된 것을 의미하며, 실제로 살아있는 예수님이 머리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예수님이 머리인 하나님의 교회라 함은, 건물로서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가시적인 교회 건물은 간판이 교회인 건물일 뿐입니다. 이를 이해하는 방법은 우리 몸을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혀가 단 것을 느껴서 우리가 맛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면, 우리 몸 전체가 그 즐거움을 공유(감)하게 됩니다. 진정한 교회에 지체가 된 성도의 삶은 이와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교회에 소속되어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범 우주적으로 상호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끼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토록 범 우주적인 하나님의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시기 때문에, 죄인이 한 사람 회개하는 것으로 인하여 매우 기뻐하시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로 새롭게 접붙여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할, 한 성도를 고대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에 지체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인 우주적 교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성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전 우주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성도에게 악이 발붙이고, 죄라는 병이라도 든다면, 그 회개하지 않는 성도를 마치 우리 몸에서 치유되지 않는 암세포를 도려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교회라는 몸에서 도려내야 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결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 지체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성결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의 택정하신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된 성도에게는 성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초대는 성령을 통하여 일어나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면, 중생의 씻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체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지체들은 성령을 통하여 공급되는 생명수를 공급받아 건강한 지체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그 생명수인 성령의 공급을 방해하는 세력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여, 생명수를 공급받는 것이 방해되거나 중단 된다면, 생명수의 결핍으로 느끼게 되는 영적 고갈과 생명수의 결핍으로 인한 영적 부패를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어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서 잘려 버려 질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을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마 12:31-3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몸 된 교회, 살아있는 교회의 지체인지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의 씻음을 받고, 깨끗한 지체로, 생명수를 공급받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교회의 지체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된 니느웨의 회개 사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고대하시던 죄인의 회개 사건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멸망시키고자 하셨던 그 성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회개가 하나님의 결정을 바꿀 정도의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믿음의 회개는 값진 것이며, 그 회개는 우리들을 구원으로 이끌 견인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직 회개를 하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성령체험을 하고 회개한 것이 확실하다면, 하나님의 지체가 된 성도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을 지킴으로써 끝까지 교회의 지체로 보존 받고, 믿음의 결국인 구원에 이르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