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논단
새 시대 포스트모던과 기독교 인간교육(3)
한상진 교수(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새 시대의 현상 2.1 모던 2.2 포스트모던 2.3 삶의 근원으로서의 위기 2.4. 과학주의의 위기 3. 기독교교육의 과제 4. 새 시대를 위한 기독교 인간교육의 방향성 4.1.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인간 4.2. 죄인으로서의 인간 4.3. 구원의 대상으로서 새롭게 된 인간 – 화목하고 영화로운 인간 4.4. 교육을 필요로 하고 교육이 가능한 인간 4.5.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인간 존재 5. 나가는 말 |
3. 기독교교육의 과제
기독교 교육학은 과거에 주로 주일학교 교육으로 이해되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막연히 성경 교육으로서 성경 교수 방법과 교안작성, 교회 학교 관리와 각부 지도 및 상담, 그리고 공과 집필 등이 기독교 교육학의 관심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 교육이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과 더불어 가정과 학교, 사회 등의 포괄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그의 섭리가 미치는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이런 범위의 설정은 새로운 대답을 요하는 기독교 교육학의 철학적인 과제이다.
교육 및 철학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아래서 학문과 삶의 일상적인 관계성을 포괄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이런 탐구에서 신앙의 기본 개념들과 더불어 학문의 타당성은 역사적이고 철학적,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동시에 상이한 문화권 아래서 시대적 변천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른 실천 학문으로 고유하게 확대하여 나가는 것이다. 더욱더 통합적인 학문으로써 인간의 본질 이해로부터 이론과 실천의 관계, 시대적이고 사회 문화적인 형상, 인접 학문들과의 상호관계들과 다양한 방법론적인 여러 현상을 기독교 교육적 관점 하에서, 기본 개념들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과제를 가진다.
이러한 과제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올바른 기독교 신앙교육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이런 질문은 “기독교적”이라는 형용사의 모호성을 의식하고 기독교인 존재의 본질을 숙고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교육의 포괄적이고 개별화된 임무를 현재화하고 서로 연계되는 교육의 형태들을 신앙의 의미 안에서 세분화되는 것이다. 즉 교육은 기독교인들을 통하여 어떻게 수행되는가이다.
셋째, 기독교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자의적으로 비교하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함을 고백할 때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존재(Cristsein)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서 생명으로 부르시고, 삶을 유지시키면서 죄로부터 의롭다함을 칭하시고, 사망에 빠진 상태에서 건져 내사 새 생명을 주시고 봉사하게 하심으로 그의 구속성 속에서 기독교인 됨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은 이를 증명한다(빌 3:1,2). 그렇다면 기독교적이라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으로부터 규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넷째, 신앙은 인간에게 그 본질의 깊이에서뿐만 아니라, 그 전체 존재 안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신앙은 인간으로 하여금 근원자에 대하여 최종적인 것을 향하여 삶을 살도록 능력을 준다. 인간은 세계의 다양한 형태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개발시키면서 그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방식이 미치는 모든 영역 속에서 과제와 문제성을 직시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다섯째, 기독교사는 학생들을 교육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삶 안에서의 교육을 논한다. 교육은 어린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들을 개발해 주고, 그를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 임무를 완수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은 가정과 사회, 국가와 경제, 문화와 교회에서 미래의 사회활동에 대한 책임을 갖도록 신앙적인 전인성을 개발시키는 것이다.
교육의 의미 규정에서 Herman Nohl이나 Martin Buber같은 학자는 기독교인은 종교개혁자들이 전해준 전승을 귀하게 여기라고 강조한다. 놀은 20세기 초엽에 교육학적 개혁 운동들이 “형식적인 요인”들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한탄하면서 개인의 자기 책임성, 새로운 공동체, 자만성, 노동의 조화성 등 모든 곳에서 책임을 지고 사회를 형성하고 노동하는 목적들의 통일성을 근거 지우는 내용적 규정이 결핍되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들은 교육의 내용과 신앙의 내용을 구체화시켜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교육시키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여섯째, 교육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수행된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의 방향설정과 지침은 가르침과 정보를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는 인간 삶과 존재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계획된 교육과정에서만 역사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 속에서 인격적으로 역사 하신다.
일곱째, 교육은 하나님 안에서 인간 본인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경건성과 더불어 인간을 구원하신 구원자로서 그에게 경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4. 새 시대를 위한 기독교 인간교육의 방향성
기독교 교육을 위하여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인간 이해란 물음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진술의 해석은 성경에 의해 증거를 받는 하나님의 형상(Image Deo)개념(창 1:27)에 나타난다. 이 개념은 성경에서 출발하는 인간학의 발단으로 성경적 인간학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런 언급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인간에 대하여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이기 위하여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전승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Der Mensch als Eberbild Gottes)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기독교 교육적인 인간 이해들을 논할 수 있다.
4.1.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인간
(Gott als Schöpfer des Menschen Und Der Mensch als Geschöpf)
피조물로서의 인간 이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주로서, 세계의 주인으로서 인간과 세계를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교육시키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인간의 세계와의 관계가 드러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라는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인간의 세계와의 관계로부터 또한 인간과의 관계와 인간을 향한 행위가 이해되어진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믿는다. 창세기 2:7에서 “여호와는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존재와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인간은 자신의 저작자가 아니다. 인간의 의미는 생명을 보존하시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분의 섭리와 보호하심에 있다.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인간학적인 규정이다. 이 규정은 인간이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인간에게 적용되는 ‘할 수 있음’의 한계성을 제시하는 이해 개념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전도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건 인간의 창작물이나 어떤 형상이 아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1:23 이하의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는 말씀이 증명하고 있다. 성경은 확실하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근원적인 관계를 인식하고 있는 바, 이 관계는 전도되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인간의 형상에 따라 만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적인 산물들(문화, 법, 사회, 학문, 과학 등)은 이런 관계성과 함께 판단의 지배를 받는다.
4.2. 죄인으로서의 인간
(Der Mensch als Sünder)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뿌리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스스로를 만물의 척도로 만들고 인간 능력의 무제한성을 신뢰하여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자기의 손안으로 생명도 옮기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에 대한 설명에서 죄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 혹은 같아지려고 유혹받는 데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의 존재 가치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것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자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죄의 근원적인 본질, 곧 창조자와 피조물의 혼동 관계는 현대의 과학과 학문을 논하는 과학자와 지도자들에게 무거운 경고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의 ‘인간 타락사’는 죄를 존재와 행위로써 규정한다. 즉, 그의 피조됨에 만족하지 않고 창조자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행위로써 죄인이 된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근원적인 규정성을 부정하면서 본질적인 임무를 위반하는 것으로써 자기 자신과 동료 인간으로부터의 단절과 소외이다. 죄는 인간 존재의 방향성들을 세계 이해 속에서 빗나가게 만드는 것이고, 잘못된 행위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죄를 행한다. 죄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현상이고 본질이다. 인간의 죄, 곧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죄인으로서 귀착된다(Zurückverwisen).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완전한 죄인이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재한다는 진리를 인정하는 자는 바울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롬 7:24)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4.3. 구원의 대상으로서 새롭게 된 인간- 화목하고 영화로운 인간
(Der Mensch der Verherrlichung)
타락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이 구원은 인간의 인위적인 교육이나 학문으로 되지 않고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상실된 형상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형상 개념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인간관계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로써만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과 구원을 생각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궁극적인 존재자이시며 초월자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는 율법의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새로운 삶으로 이끄셨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화목 가운데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 : 24)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앞서 논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새롭게 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하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의 피조물이 된다(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이렇게 연결된 가운데 자유롭게 된 인간으로서 그의 피조성으로 되돌아 간 인간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고 찬양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비참함에 있는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구출해 내신 분이시다. 바울의 인용에 따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하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두 가지 본질적인 질문들을 논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인간에게서의 하나님의 형상성은 무엇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는가? 둘째는 하나님의 형상성을 지녔다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형상성은 인간이 피조세계 내에서 창조자의 대변자로서 그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자로부터 유일무이한 존엄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기능적인 유용가치로서의 인간 본질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존엄성의 존재, 즉 위탁자, 대변자이다. 인간에게 부여된 하나님 형상성은 본질적인 피조물로서 받은 인간의 독특성이다 : 이는 하나님의 형상성으로 창조된 인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in Ordung) 안에 있다는 점에서 영광과 존엄성이 진술된다. 이런 인간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써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대리인 직분을 수행하는 인간으로의 존재이다. 이런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말미암아 상실되어졌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여기에서 죄지은 인간, 반란하는 인간, 하나님과 갈등하는 인간, 그리고 사회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으로 이해한다. 창조자로부터 이탈하여 인간적인 공동체와 자신의 이웃과 동료 인간을 파괴하는 노예로서, 타락한 인간의 본질을 보여 준다. 우리는 그 길을 잃어 버렸고, 본질성으로부터 떨어졌으며, 그 존엄과 본질적인 인간 존재를 상실하고 방황하는 인간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자신이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존엄, 그에게 부여된 유일한 영예, 곧 하나님 앞에서의 영예이다. 요한복음 5:44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는 말씀은 인간이 되돌릴 수 없이 상실하였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사람에 대하여 논하고 있음도 기억해야 된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4) :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에 걸맞게 의와 거룩함의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해 주고 있다. 즉, 옛사람은 죄인이며 ‘육신’이고, 하나님의 계명에 대적한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하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피조물이 된다(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되고 이렇게 연결된 가운데 자유롭게 된 인간으로서 그의 피조성으로 되돌아간 인간이다. <다음호에 계속>
한상진 교수(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