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특집
새 시대 포스트모던과 기독교 인간교육(1)
한상진 교수(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 <목차>1. 들어가는 말
2. 새 시대의 현상 2.1 모던 2.2 포스트모던 2.3 삶의 근원으로서의 위기 2.4. 과학주의의 위기 3. 기독교교육의 과제 4. 새 시대를 위한 기독교 인간교육의 방향성 4.1.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인간 4.2. 죄인으로서의 인간 4.3. 구원의 대상으로서 새롭게 된 인간 – 화목하고 영화로운 인간 4.4. 교육을 필요로 하고 교육이 가능한 인간 4.5.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인간 존재 5. 나가는 말 |
1. 들어가는 말
현대와 같이 급변하는 시대에서 기독교교육의 패러다임의 새로운 변천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난해한 시도이다. 왜냐하면 급변하고 다변하는 사회에도 불구하고 총신대학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에 입각하여 개혁주의 신학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동시에 그의 주권사상을 사회 전반에 선포하는 메신저인 증인으로서의 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 인식의 한계와 절대적인 판단 근거의 난해한 규명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공통으로 인식하는 테마 역시 여러 가지 방향성으로 분리시킬 수 있는데, 이런 주제 논쟁들은 물음표에서 시작하여 느낌표, 마침표로 대체하기를 원하는 것이 현대 심포지엄의 경향이다. 주제의 다양한 접근방식과 방향설정 하에서 개별적인 결론들이 정당화 되어진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단정은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하는 요소인 동시에, 인간 인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주제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물음에서부터 -기독교교육이 현대인들이 다변사회 속에서 새롭게 요구하는 삶의 가치와(Wert) 규범(Norm)을 간과하고, 이런 사회현상에 무관심하게 대처하여 온 것을 지적하고- 기독교 신앙 교육적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을 근원으로 하는 기독교교육의 인간이해가 기독교교육의 중요한 테마로서 인식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더욱더 다양한 사고에서 표출된 방향성들이 삶의 보편성 속에 나타나는 한계성과 함께 구체적인 행위들을 새롭게 확대 해석해주는 가능성이 열려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와 미래의 대안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한 인간이해를 통하여 기독교교육의 새로운 가치의 장을 실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시대마다 나타나는 각종 위기적인 현상들을 살펴보고, 그런 현상들에 대처한 기독교교육의 필요성과 그 과제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기독교교육은 인간이해에서 출발한 인간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인간존재에 대한 성경적 탐구를 통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 그리고 죄인인 인간을 교육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함을 피력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각종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자”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인간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의 교육을 행하셨다. 인간만이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써 교육을 통하여 죄로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참된 인간교육이고, 동시에 모든 교육의 근간을 이루어야 함을 본 논문에서는 밝히고자 한다.
2. 새 시대의 현상
21세기 새 천년을 위하여 지구촌 전체가 국경과 민족 종교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인류 전체가 축제분위기였다. Millenium은 라틴어 Mille(천)와 annum(년)의 복합어이다. 이 뜻의 사전적 의미는 세계적 평화와 번영의 황금기이다.
이러한 전 세계의 분위기는 천년의 역사적 전환기와 더불어 미래를 위하여 수많은 계획과 희망을 갖고 있기에, 새로운 세기는 어떠하며, 새로운 천년은 어떠한 것인지 자문자답해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와 희망 가운데서도 어떤 수의 힘이나 에네르기, 그리고 수의 신비성에 대하여 분명히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새 천년 새 시대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역사의 주체자로서 그의 세계를 통치해 가신다는 규명성 때문이다. 이런 새 천년, 새 시대, 21세기 등 수에 관한 연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계수 될 것이며, 형성되어 가는 시간의 목표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심판의 주님으로서 인간을 판단하시며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인 복음을 이 세상 지구촌 모두에게 전파되는 시간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천년, 새로운 시대에 바뀌어 질 패러다임이 존재하는가 하면 바뀌어서는 안 될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주권통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 더 기독교 교육적인 측면에서 “새 천년”, “새 시대”를 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기독교교육의 기능과 역할, 내용과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왜 시도하려는 것인가를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새 천년”, “새 시대”는 이미 2000년 전 예수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새 시대의 맥락은 예수와 함께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21세기가 진정으로 “새 천년”, “새 시대”로 전개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삶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새 시대의 활동에 상응하는지 스스로 비판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법칙의 하나인 새 시대의 기독교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70년대와 80년대의 주요담론(Kommunikationen)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좌우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형성이었고, 80년대 후반과 90년대의 초반을 거치면서 중심적 담론이 새로운 변화상에 대한 삶의 의미성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현상으로 대체되어지고 있다. 더욱이 대담론들의 약화와 탈중심화와 더불어 공존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현상들에는 대체담론으로서 “포스트모던”, “정보화 시대”,“ 세계화”, “21세기…”, “신 사회 운동”, “새 천년 교육”, “신과학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2.1. 모던(Modern)
모던(Modern)은 라틴어 모데르누스(modernus)에서 파생하였는데, 그 의미는 “현재의”, “고대의 것이 아닌”이란 형용사이다. 모데르누스 용어 자체가 5세기 말 로마 문헌 가운데서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기독교 공인 이후”의 로마와 “공인 이전”의 로마를 구별하기 위한 표현들이었다. 이런 언어의 과정에서 “모던”이란 용어는 한 시대가 그 이전 시대와 구별함으로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의식을 논할 때 표현되어진 역사적인 언어라 할 수 있다. 모던이라는 개념이 “전” 시대와의 분리보다는 “전”, “후”시대의 구별적인 분류의 의미가 강하다.
우리는 모던이 근대 서구세계의 형성을 뒷받침해 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 지구촌을 서구적으로 변용 시킨 시대정신(Zeitgeist)의 뿌리를 근대적인 것(Moderne) 혹은 근대성(Modernität)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시대정신의 핵심은 “이성”에 대한 신뢰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시기는 종교개혁,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들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법칙이 지배하던 종교 개혁적인 틀이 붕괴되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뿌리를 내림에 따라 인간 능력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이런 사상은 근대철학의 기초를 놓았던 데카르트에서 발견된다. 그의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명제였던 “하나님 존재하시고 말씀하시므로 인간은 존재한다”와 아이러니한 명제였다. 이런 명제는 삶의 인식적인 뿌리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성이었다. 인간의 이성 능력에 대한 신뢰는 인간을 우주와 사물의 중심적 위치에 두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주와 사물의 중심을 차지하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초월적인 주권성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모던(modern)의 자연관은 하나님을 세계에서 추방하고 자신을 그 중심에 두고 자연을 대상화했다. 이런 수학적 자연관은 과거에 가졌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사라지고 자연을 이용 가능한 상대로 대상화했으며 따라서 자연은 그 유용성에 따라 규정되게 만들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죄악성과 더불어 부패한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통치 방식들, 그리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인식을 거부하고 인류세계는 자기 가능성을 실현함으로서 미래를 향해 무한히 진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런 혁신은 과학기술을 통한 산업사회와 이로 인한 생산력 증대를 통해서 더욱 더 확고해진다.
모던은 몇 가지 기본적이며 중심이 되는 현상들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분화(Diffrenzierung), 합리화(Rationalisierung), 개인화(Individualisierung), 규율화(Domestizierung), 감성화(Emotionalisierung), 외향화(Aussenorientierung), 성찰화(Reflektierung) 등의 중심적인 발전 원리이다. 이런 현상에 더 첨가한다면 공간의 확대, 거리 격차의 혁명적인 단축, 그리고 시간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 등이다.
분화의 경우 사회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법, 언론 같은 여러 전문영역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말하며, 그 이유는 사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의 증대에 있다. 사회의 분화가 진전이 되면 될수록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분화의 현재 모습은 요즘 논하는 “전문화”현상이다. 개인화는 집단적인 사고방식에서 자유롭게 된 개인적인 영역의 발전과 또한 주관적인 사고 행위의 사회적인 연관성이다. 외향화는 인간의 행동규범의 원칙이 개인적으로 내면화 된 틀을 따르던 것으로부터 개인적인 성찰(Reflektion)이 없이 외부적인 자극에 거울처럼 반응하는 행동의 변화를 말한다. 유행에 민감하다든지 타인의 평판이 자신의 평가보다 중요하다든가 등은 이에 해당된다. Jürgen Habermas의 대표되는 성찰화라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변화를 들 수 있는데, 같은 규범이라도 그 정당성이 과거와는 달리 무조건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왜 그런가에 대해서 묻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분화나 합리론의 과정에 지배적이며 발전적인 근원이 된 사회 부분은 경제, 법, 행정, 교육 등의 분야를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의 경우도 교리의 조직화, 합리적 운영체계와 행정의 효율성, 부서와 제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분화와 합리화의 과정에 많이 지배되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새 시대와 현대성이 가져온 결과는 기독교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정치적, 종교적 관용이다. 즉 모던은 종교개혁적인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다양한 세계관으로 변천한 것이다.
2.2. 포스트모던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모더니즘 내부에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변화를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데 post의 의미는 그 단어적인 성격이 “후기”, “이후” 또는 “탈”, “해체”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post란 접두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탈 근대사상”, “후기 근대사상”, “후기 산업사회”, “후기 자본주의” 등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으며 이 현상은 모더니즘과의 연속성을 전제로 하는 경향이 있고, “해체” 및 “탈”이라 했을 때에는 단절이나 비판적 극복을 강조한다. 이러한 의미는 모던의 세계관이 가진 한계와 모순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극복하고자 하는 이런 사상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명은 각각의 입장과 전공분야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post 뒤에 붙는 modern이라는 언어는 대개 17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계몽주의 시대와 함께 프랑스 혁명과 휴머니즘을 거치면서, 현대에는 하나님, 인간, 자연, 세계, 삶과 관련하여 이전과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이성과 감성의 조화에 대한 규명이라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첫째, 이성 중심주의가 낙관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중심존재와 당위성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다. 이성에 의해 진리라고 믿어졌던 획일적이고 절대성에 대한 의문들이 다양성과 상대성의 열린 태도를 보인다. 둘째, 독선적인 이데올로기와 이분법적 획일화된 서열제도의 경쟁적인 해체를 주장하면서 다원적인 권력분산과 소외자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과학주의, 즉 경직되고 왜곡된 기계론적 과학주의 대신 유기적 은유로 대신한다. 셋째, 인간의 이성 외의 다양한 영성(Spirituality)을 강조한다. 포스트모던 사고는 근대 이후 이성과 관념의 세계에 대하여 회의하며, 과학적인 합리성의 절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척도로 세계를 다르게 보는 대안적 이성의 세계를 다양하게 보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그 자체가 체계적 이론을 거부하는 열린 사유의 개념이기 때문에 긍정과 부정이 교육적인 분야에서 논의된다. 포스트모던 교육은 우리 시대의 정신을 말해주고 사고 방향을 제시하는 개념으로 긍정하는가 하면, 또 다른 실패의 개념(Fehl-Begriff)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런 긍정과 부정의 변증 속에서 공통성은 고도의 정신활동이 요구되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포스트모던의 개념이 나타나며 동시에 우리의 정신세계를 바쁘고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의 공통적 특징은 “나는 생각한다.”(cogito)를 중심으로 흘러온 전통적 논리와 주제에 대한 존재론적 거부이다.
모던 주장과는 달리 포스트모던의 발전 동력은 끝난 것이 아니다. 단지 기술, 과학 같은 한쪽 부분만의 불균형적으로 발전한 것과 전문가 영역의 분리와 그것들의 실제 생활과의 중재 가능성의 사실이 모두 합쳐져서 포스트모던적인 모던이 병든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극복은 칼빈과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의 계속적인 발전의 프로젝트로서 전개되어야 한다. 현대의 발전이 진전됨에 따른 직업화와 전문성의 증가는 기독교교육의 이론과 실천의 관계성 속에서의 학문적 과제가 교회의 변천과 시대적인 사명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유익을 위하여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사상은 철학과 문화, 교육, 종교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원인들을 내재하고 있다. 첫째로 근대에 일어난 인간 중심의 이성주의는 기독교 신앙을 대체하고 수정하면서 이성의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절대주의 시대를 열었다. 과학은 객관성이 결여된 종교를 분리시켜 삶 속에서 절대 진리의 주체가 되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게 되었다. 절대 진리의 부정은 자연히 세속적이고 상대주의적인 다원주의의 경향을 나타낸다. 둘째, 근대에 발생한 이성주의 낙관론은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세계 도처에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중동전쟁, 유고전쟁 등의 인간의 사악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셋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경제주의적 사고에 익숙해지면서 경제 논리가 중심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경제논리는 과거의 모든 권위로부터 우선하여 사회 전반의 지배적인 경제 가치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교육적인 한계성과 그 가능성의 중요한 관계를 이룬다. 이성에 기인한 과학문명과 물질문화의 풍요로움이 야기된 문제들이 인간의 종교성을 부인하고 억압한데 기인하였다는 반성과 함께, 보다 더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려는 대중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다원적인 분위기 속에서 관용과 타협의 길을 모색하는 종교다원주의 형태는 신학적 독선주의나 교파주의의 극복과 정치적 연합운동의 추구 등으로 표출된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인 변화가 바로 이런 포스트모던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시대의 보편적인 종교현상이라고 규정한다. <다음호에 계속>
한상진 교수(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