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서의 뒷담화
Hole 8 (일파만파)
Par 4 Blue Red
거리 338m 291m
인덱스 13/32 14/32
제주도에서 넘버 원-투 하는 골프장이 블랙스톤과 나인 브릿지이다. LPGA 경기를 하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나인브릿지는 도지사 빽으로도 부킹하기 어렵다는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클럽이다.
멤버가 초대하지 않으면 치기 어렵다는 나인브릿지에서 라운딩할 수 있다면 그건 대박 사건이다.
제주도를 유난히 좋아한 연유로 은근쓸적 버킷리스트에 라인브릿지에서 골프치는 것을 넣었다. 한국에 남아있는 쥐꼬리만한 인맥을 동원해서 라운딩 부킹을 시도했으나, 매번 들려오는 메아리는 “미안하다.”
골프장 하나 부킹할 인맥이 없다니, 참 인생 헛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슬쩍 밀려온다. 인연이 안되면 빨리 포기하라는 wife의 부처님같은 충고를 들어야 할 순간이다. 그래도 내 버킷리스트인데 마지막 줄을 놓으면 안되는데. 이 버킷리스트는 언제나 가능할까? 이마에 주름만 하나 더 는다. 그러나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은인은 먼 한국이 아니라 매주 라운딩하는 같은 클럽 멤버인 홍 선생님이었다.
실망감으로 인생 포기한 사람처럼 라인브릿지 부킹을 못했다는 하소연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제주도 사시는 친구분께 전화. 부킹 완료. 몇 개월 동안 인맥 관리에 피땀 흘린 노고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에 일어나는 짜릿한 반전. 구원의 손길은 먼 곳이 아닌 늘 가까운 곳에 있다는 교훈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겨본다.
한국에서 골프치려면 내기는 기본, 우기는 것은 선택이다. 호주 촌놈이 한국에 가서 가장 힘든 것은 웨어웨이도 좁고. OB(out of bound)가 많다는 것이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가뜩이나 좁은 훼어웨이가 더 작아 보인다. 훼어웨이 보다는 오른쪽 숲 속, 왼쪽 워터, 가운데 벙커만 크게 보이는 상황이면 게임은 하나마나다.
역시 긴장감에 어깨는 더욱 경직되고 스윙은 아웃사이드인. 바나나 슬라이스로 오른쪽 숲속으로 OB. 2벌타. 인생살이‘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 했는데, 골프에서는 ‘자신감 잃으면 지는’것이 여실히 증명된다. 기대 이하의 결과에 골프장 적응이 안되서라고 위로해 보지만, 돈 잃고 기분 좋은 놈은 없다는 명언은 진실임을 재삼 뼈져리게 느껴진다.
다음 날 라운딩은 이빨 꽉 물고 열심히 ‘아자! 아자! 고진감래라 했던가. OB를 냈던 첫 홀에서 par를 잡고 기분 좋은 출발이다. 어제 잃은 돈도 만회하리라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데 왠 ‘일파만파’ 하나의 물결이 많은 물결을 일으킨다는 뜻인데, 촛불집회에서나 쓰던 말이 왠 골프장에서. 캐디까지 나서서 한국 멤버 편을 들기 시작한다. 첫 홀에서 한 사람이 파를 하면 모든 사람이 다 파로 인정해준다고. 한국에 가면 한국 법을 따라야 하나. 참 싫다. 기분 좋은 출발에 찬물을 끼얹더니 자신감도 아울러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한국을 떠난 지가 오래 되서인가? 적응이 잘 안된다. 원칙보다는 임기응변이 더 가용비가 높은 것 같다. 또 하나 멀리하고 싶은 것은 일등만 박수받는 문화이다.
제주도 넘버 원, 투라는 블랙스톤과 나인 브릿지에서 쳤다고 하면 자주 받는 질문이 ‘어디가 더 좋아요?’이다. 비교해서 꼭 일등을 줄 세워야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르겠다.
이등의 장점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았으면 좋겠다.
“골프에서 실수는 불가피하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 보다 그 실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좋은 플레이어로 가는 지름길이다.”
마이클 림
mcilim@hotmail.com
백세 인생이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백세까지 사는 것이 희귀한 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환갑 전이라기보다는 왠지 50대 후반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살갑게 들리는 나이다.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는 것이 끔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낀다. 골프는 내 인생의 후반전을 좀더 활기차게 보내기 위한 선택이고, 이 컬럼을 쓰는 것 역시 좀더 풍성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전에 종교간의 대화 모임이었던 길벗 모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도반, 좋은 길벗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같이 굳은 심장에 약간의 설렘이 속삭인다. 골프를 통한 새로운 도반, 길벗들이 인생 후반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Michael Lim, www.crazygolfdeals.com 한국 마켓팅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