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개념있는 그리스도인(3) 딤후 3:1-5
개념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종합하여 얻은 관념,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개념 없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도덕 규칙, 혹은 상식을 현저히 어긋나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아무런 반성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개념이 없다는 말은 무엇인가?
첫째는 사람에 대한 무례함이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번 겨울 얼마나 추웠는가? 그런데 그날 밤 10시경 한 주택가 피자가게에서 정씨(44)가 “애들이 먹을 거니 가장 비싸고 맛있는 걸로 가져오라”며 집 주소를 남겼다. 오후 11시가 넘어 새우와 감자칩이 올라간 특대 사이즈 피자가 정 씨 집에 도착했다. 추운 날씨 탓에 차갑게 식어버린 피자를 본 순간 정 씨의 표정이 변했다. 치즈도 굳어 늘어지지 않았다. 정 씨는 씩씩거리며 피자를 들고 가게를 찾았다. 식은 피자를 배달했다며 화를 내는 정 씨에게 배달원 주모 군(18)이 “빙판길에 오토바이를 천천히 몰다보니 피자가 배달중 식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씨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정 씨는 “식은 피자 너나 먹어라”라며 주 군의 멱살을 붙잡고 피자 2조각을 코와 입에 억지로 쑤셔 넣고 머리에 문질렀다. 결국 정씨는 불구속되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사람에 대한 무례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함부로 상대방에게 하면서 본인은 무례한 것이 아니라 친근함의 표시라고 말을 한다. 무례함과 친근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상대방이 불쾌하게 느끼면 그것은 어김없이 무례함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변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껴도 그것도 역시 무례함이다. 저희 아이들이 저에게 함부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때에는 전혀 무례하지 않지만 성도들이 있을 때에는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왜? 주변사람들이 무례하다고 느끼면 그것은 무례한 것이 때문이다. 그래서 늘 내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과 주변사람들을 배려하면서 행동하고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개념이 없는 분들은 시도때도 없이 함부로 말을 하고 반말을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사람을 존중해야 내가 존중받는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다. 예배가운데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나가면서 주차장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휴게소에서 얼굴이 벌개진다면 그게 과연 신앙인가?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 어떻게 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힐 수가 있겠는가? 신앙생활하면서 늘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혹시 손해 보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어느 순간에 속물로 변하는 것이다.
어느 교회에서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목사님이 크게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사람들이 목사님에게 비난을 하고 소리를 치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이 상황이 되자 목사님은 한 장로님을 불러 조용히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장로님, 다음 주에 당회에서 사임을 하겠다고 이야기 하겠소” 그랬더니 장로님이 “아니 목사님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만두느냐고 계속 버티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장로님! 내가 버티면 그 시위는 계속될 것이고 그러면 누가 손해이겠느냐고.. 교회가 손해보고 하나님이 손해 볼 것이 아니냐고…” 그래서 그 목사님이 사임을 하고 얼마 쉬었다가 다른 교회에 청빙을 받아 가서 아주 목회를 잘하고 있다. 목사님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하나님이 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실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한 것이다. 이게 개념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요즈음 한국 대형교회에 세습을 하는 교회들이 점점 많아진다. 교회 안에 갈등이 많아진다. 하나님은 관심도 없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있다. 이것이 무개념의 극치이다.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자식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헌신과 희생 없는 신앙생활이다. 존 라일이라는 신학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신앙은 가치 없는 신앙이다.”라고 하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희생과 헌신이 없이 하려고 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들은 40년이라고 하는 광야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인도의 간디도 7가지 사회악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1)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2)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3)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4) 인격 없는 교육(Knowledge without character), (5) 도덕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work), (6)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7) 희생 없는 신앙(Worship without sacrifice)을 이야기 하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다. 교회에 와서 무엇인가만 얻어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장사꾼이다. 그것이 설사 은혜이고, 행복이고 감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장사꾼은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없다. 물건을 사러 가면 장사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팔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장사꾼들은 물건을 팔지 않는다. 물론 손해 보면서 팔아야 할 때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없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손해 보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장사꾼이다. 세상에서 무슨 법인 이사를 하면 월급을 받고 그 만큼의 댓가를 받는다. 그런데 교회단체의 이사가 되면 도리어 돈을 기부해야 하고 꾸준히 이사에 대한 회비를 지불해야 한다. 저도 지금 몇 개 단체의 이사이다. 이사가 무엇이냐면 운영비를 후원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나 모임에 보면 자신은 한 번도 밥 한끼 사지도 않으면서 그 공동체에서 대우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바로 개념없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가운데 하나이다.
넷째는 사랑이 없는 신앙생활이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한 분이 어린 유치부 아이를 데리고 본당에 들어가려고 하기에 정중하게 “죄송한데 아이를 데리고 본당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아래로 내려가시면 아이들과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이 분이 한 번 째려보더니 “우리 아이는 얌전해서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도 교회의 규칙이니까 양해를 해달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이분이 “교회가 이 교회 밖에 없는 줄 알아요?” 하고 화를 버럭 내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교회에 오면서 우리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느 경우에는 옆 자리가 비어 있어서 안내하는 권사님이 옆자리를 옮겨달라고 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옮겨주거나 상대방이 앉게 비켜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중하게 비켜달라고 해도 미동도 안하는 분들도 있고 심지어는 불쾌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분들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몰라서 그런 분들이다. 조금 불편해도 웃으면서 기다려주는 곳,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왜? 교회는 사랑이 꿈틀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도 모르고 조금 실수했다고 “내가 누군줄 알아요? 나는 톱스타예요”라고 말하면 그게 바로 개념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개념이 없으면 그 사람 하나만 욕을 먹지만 기독교인이 개념이 없으면 교회공동체가 그리고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고 혹시 내가 개념 없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