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경계의 목적은 사랑이거늘
(딤전 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1차 로마감옥에서 풀려 나와 그 당시 에베소 교회에 남아있던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 중 일부입니다. 그 당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약 30년 정도가 지난 시대였기 때문에, 복음이 주로 전도여행을 하는 사도들과 사도를 돕던 제자들에 의하여 국지적으로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처럼 전해졌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의 제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듣고 나름대로 그 복음을 잘 못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단’이었습니다. 에베소에도 이런 “이단”이 들어와 교회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이단에 대한 경계와 복음의 진리를 수호해야 할 목회자의 자세,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자세 또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교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단으로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하여 본문 바로 앞 절인 딤전 1:3-4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즉,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곳에 이미 성행하고 있는 이단들이 변질된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그것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그 지역에 만연된 전통적인 그리스 신화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과 결부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족보를 들먹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이 구원에 절대적인 조건인 양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변질된 복음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의 사역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알게 하라는 이야기 입니다.
현 시대에도 이런 변질된 이단 종교와 기독교 이단종파들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변질된 복음에 물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즉, 구원의 자격은 모든 민족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졌다는 것이 진리임을 알아야 하며, 정통교리를 벗어난 신비주의를 앞세워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단들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단들의 활동을 저지할 것을 당부하면서 그렇게 하는 목적(goal/purpose)은 ‘사랑(love/charity)’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이단들을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어는 ‘사랑’입니다. 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단들이 복음을 왜곡하는 것을 저지하라고 당부하는 이유는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올바른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여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을 깨닫는 것이 이단을 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른 신앙관을 확립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하여 확실히 이해하는 것으로써 복음이 목적하는 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어(헬라어)로 ‘사랑’은 네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에로스(e[rw”),
두 번째는 가족 혈연적 사랑으로 스트로게(stroghv),
세 번째는 친구에 대한 우정의 사랑인 필리아(fivlia) 그리고
성경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인 아가페 (ajgavph) 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극한 희생을 요구하는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아가페적인 ‘사랑’은 아래 성경말씀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이루어야 할 ‘사랑’은 바로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시면서 까지 이루어야 했던 그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을 안다면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의 관계성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나타난 사랑이며, 또한 성도들 간에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대속 제물로 희생시키는 사랑으로 그 사랑을 우리들에게 실제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또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당위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일생과 희생을 통해 그 본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일생과 희생을 통하여 보여주셨던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받고 싶으신 사랑 그리고 우리들 간에 나누어야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한 사랑을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순종하는 온전한 인내로 보여주심으로 나타 내셨습니다. 성육신한 예수그리스도는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고, 십자가를 지고 갈 때는 힘에 겨워 넘어지고 결국은 자신의 힘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는 목이 말라 하셨으며,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며 인간으로써 최고로 힘든 상황을 절규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끝까지 인내하셔서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루어 내셨습니다. 믿음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나타나고 인류역사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에게 채찍과 조롱과 멸시, 육체적 한계로 느껴지는 고통, 목마름, 고독, 죽음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대가로 부활하여 승천하게 하심으로써 사망과 세상을 이기게 하셨으며, 예수님을 죄의 심판관, 생명의 주로 그리스도의 왕국에 영원한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 믿음과 순종으로 완성된 하나님의 사랑은 이 우주에 생명력을 지닌 교회를 탄생시켰으며, 그 교회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이 세상에서 죄로 죽을 영혼들을 구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땅에 실존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복음이며, 또한 우리들에게는 믿음으로 이루게 될 구원의 소망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받고 싶으신 사랑
우리들로부터 하나님께서 받고 싶으신 사랑은 죄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눅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 말씀의 뜻은 마음으로 자신의 많은 죄를 인식하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때, 많은 죄를 사함 받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큰 사랑을 느끼게 되나, 마음이 교만하여 죄를 자각하는 것이 무딘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때에 사랑을 적게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죄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자각하는 죄가 적기 때문에 죄 사함의 사랑을 받아도 그 감사가 크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그는 자신이 깨달은 많은 죄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았을 때, 감사함이 넘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대단히 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큰 사랑을 품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뜻은 그렇게 성령의 내조하심으로 자각하는 죄로 인하여 회개를 갈망하며 애통하는 심령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갈급하고, 죽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계명입니다.
(마 22:37-8)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예배 자세는 자신의 죄를 많이 깨닫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그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3. 사람들 간의 사랑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예수님은 실제로 인간 예수로서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는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옛 아담이 하지 못했던 순종을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채찍에 맞고,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악의 요구에 지지 않으시고 자신을 죽이고 있는 군병들까지도 용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제사를 드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받게 될 고난을 끝까지 참을 때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고 승천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심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받을 고난을 견디어냈을 때 받을 상급으로 부활과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도 보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제로 죽음을 불사함으로써 이런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랑의 실천에 대한 상급으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열두 보좌에 앉아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들 서로가 죽도록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그 사랑이 하나님과 우리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속죄 제사를 통하여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우리의 부활과 영생을 보증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이웃)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첫째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이웃을 사랑한다는 진정한 의미이며, 믿음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우리는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당시 이단들을 저지하는 것은 사랑의 목적이라고 강조하였는데, 이 말씀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즉 성경이 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복음을 올바르게 전하고 들을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사랑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형제로서 세상을 향하여 올바른 인생의 목적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