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내가 살리리라 (Will of Christ)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또는 떠날 때, 대개는 유언을 남깁니다. 영어로는 will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뜻인데, 이 유언은 대부분 자신의 권한에 있는 재산에 대한 처리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 유언은 어떤 사람과 맺는 계약과는 다르게, 죽는 사람이 상대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단독적으로 행사하는 법적 권한인 것입니다. 즉 계약처럼 “이런 조건하에 내가 약속을 지키겠습니다.”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하겠다.”라는 일방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그리로 이 유언은 계약과 마찬가지로 법으로 보호되는 행위입니다. 즉 유언을 정식으로 하게 되면, 그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유언대로 재산관계나 가족의 부양관계등이 처리되도록 법적으로 보호되며, 유족들은 그의 유언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3형제를 둔 한 홀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은 아버지를 봉양하지 않고 모두 분가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홀로 조상들이 물려준 땅을 일구고 힘들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이제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불러서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유언을 하였습니다.
“아들들아, 너희에게 물려 줄 돈은 없으나, 저 산 옆 밭에 보물을 묻어 두었으니, 나 죽은 후에 너희 3형제가 캐내어 똑같이 나누어 의좋게 살아라.”
삼형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보물을 찾기 위하여 열심히 밭을 파 헤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힘이 부쳐 일부만 경작하고 버려졌던 넓은 밭이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부드러운 옥토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삼형제는 잠시 보물 찾는 일을 미루고 일단 옥토로 바뀐 밭에 파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그 밭에서 풍성한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 형제들은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밭을 일구어 그 밭에서 철따라 수확되는 곡식을 보물로 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삼형제는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유언을 받들어 조상들이 물려준 땅을 일구며 화목하게 그리고 풍족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유언은 유형의 재산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생활지침 같은 무형의 유산을 남기는 예도 종종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무슨 재산을 남기지는 않으셨지만, 유언과 같이 “I will”이라고 일방적으로 행하시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 6:40)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예수님께서도 세상 사람들의 유언처럼,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 없이 단독적으로 행사하는 권한으로 “마지막 날에 내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모두 살리리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내게 주신 자 = 믿는 자
“모두 살리리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살리게 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라고 본문의 바로 앞 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39)
그리고 바로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그 살리려는 대상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을 보고 믿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예외 없이 구원해 주시겠다고 ‘I will’이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즉 세상의 유언이 세상의 법으로 지켜지는 것처럼, 믿은 자를 살리시겠다는 말씀을 하늘나라의 법으로 보장되도록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믿는 것은?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사건을 믿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믿으라고 하셨던 것일까?
그 해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11)
우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안에 함께 계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말이며,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일체인 사실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이 한 몸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는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 세상의 논리로는 입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도 니케아 종교회의(AD 325년)가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자, 성령의 정체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기 때문에, 세계 종교회의를 니케아라는 도시에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주제로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회의에서 하나님과 성자, 성령의 관계를 나름대로 설명하려는 많은 이론들이 발표되고 토론되었습니다. 그런 토론들을 통하여 결론으로 합의한 내용이 현재까지 유효한 니케아 신경인데, 그 내용은 성부와 성자, 성령이 동질(homoousios)이며 본질(ousia)이라는 것입니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보혜사 성령님은 삼위일체라고 공식적으로 결론 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동일본질(homoousion)을 이루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 성령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도 삼위일체설은 투표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나 하실 수 있는 이적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기적적인 사건들과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은 사람들로서는 불가능한 이적들을 보여주셨고, 아무리 뛰어난 율법사라도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권위에 찬 말씀으로 그런 사실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제자 빌립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 9-11)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전하셨던 말씀이었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이 하나님과 함께 계심으로 가능한 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믿어야 하는 사실은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전한 말씀과 십자가를 통한 대속제사 모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시어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주도하셨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도, 부활하실 때도 함께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 그리고 성령과 일체이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 시대에는 성령의 전(殿)인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예수님께 맡기신 성도들입니다. 우리들이 그런 성도라면, 예수님께서 “I will”, 즉 꼭 이루리라 하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마지막 때에 믿는 성도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드리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 6:40)
이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말씀을 믿게 되셔서, 영생에 이르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성도의 결단
서두에 설명해 드렸다시피, 이 세상에서도 죽은 사람이 문서로 하든, 말로 하든 유언을 남기면 그것이 공증되는 한 변개할 수 없는 일방적 법적효력을 갖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will’은 절대로 변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선포가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내게 주신자)를 다시 살리리라’ (요 6:40)
즉 우리들 인생의 궁극적 목표인 영생을 얻는 길은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행하심과 그 분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믿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조건 없이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선택하고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의 행하신 일과 말씀들을 열심히 읽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게 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계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을 통하여 볼 수 있게 되고 믿게 되기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일(성경을 읽으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예화에서 삼형제가 아버지의 유언을 믿고 보물을 캐기 위하여 밭을 열심히 파헤쳤기 때문에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요롭게 살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믿는 것)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여, 은혜로 주시는 영생을 받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내가 믿는 너희들을 살리리라!”고 선포하신 말씀을 굳게 믿고, 소망 중에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늘 읽고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으로 믿으므로 마지막 때에 구원과 영생을 받아 누리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