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눈을 들어 보라(1) 창 13:14-18
– 좋은 소식 : 첨으로 아이가 상을 타왔네.
– 나쁜 소식 : 옆집 애도 타왔다네.
– 환장할 소식 : 전교생이 다 상 탔다네
– 좋은 소식 :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지 않고 슬쩍 버렸네ㅎㅎ.
– 나쁜 소식 : 그 장면이 CCTV에 잡혔다네.
– 환장할 소식 : 그 장면이 9시 뉴스에 나온다네.
– 좋은 소식 : 아내가 싼 가격에 성형수술을 했다네
– 나쁜 소식 : 수술이 부작용이 있어 다시 해야만 한다네.
– 환장할 소식 : 그 의사가 돌팔이 의사라고 경찰에 잡혀 갔다네
똑 같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고, 나쁜 소식이 될 수 있고 환장할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연구한 EBS다큐멘타리 동과 서라는 책에서 우리의 관점에 대한 차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문장을 보면서 나는 어떤 방식의 사고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A-내가 좋아하니까 상대방도 좋아할거야
A-내가 배가 고프니까 다른 사람들도 배고플거야
A-나한테 어려운 일이니까 저 사랑한테도 어려울거야
B-상대방이 고기를 좋아하니까 나도 고기를 먹어야지
B-사람들이 마음에 들어하니까 나도 좋다.
B-저 사람이 인정해주었어! 잘한 거야
여러분들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가요?
A방식은 판단의 기준을 내 안에 두는 방식이고 B는 판단의 기준을 나의 외부, 즉 타인에게 두는 방식입니다. 보통 서양인은 A방식을 취하고 동양인은 B방식을 취한다고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서양인은 자기중심적 관점을 가지고 동양인은 타인 중심적 관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서양인은 1인칭 시점에서 사물을 보고, 동양인은 2,3인칭 시점에서 본다고 하는 것이지요.
자기중심적 관점을 가진 서양인들은 자기가 늘 중심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화가 난 상태이면서 상대방에게 ‘어머 너 화난 것 같다’라고 말을 합니다. 또 자신이 슬플 때는 상대방도 슬플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이를 자기 중심적 투사라고 합니다. 반면에 타인 중심적 관점을 가진 동양인들은 상대 중심적입니다. 동양인은 자신이 슬플 때 상대방이 자신을 보면서 느끼게 될 동정심을 함께 느낀다. 또 수치스러움을 느낄 때 상대방이 자신에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멸의 감정을 동시에 느낍니다. 이렇게 동양인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를 관계 중심적 투사라고 합니다.
요즈음 서구식으로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보통 집에 방문하면 자리에 앉으면 묻습니다. “머 마실래, 콜라, 물, 커피..원두커피, 세 박자 커피!”하는 식으로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데, 그런데 나이 드신 어른들이 계신 곳에 방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요?
어느 교회 집회를 마치고 이제 숙소로 돌아오려고 하는 데 목사님이 피곤하다고 피로회복제와 음료수를 주십니다. 그냥 주면 좋은데 그냥 까서 주십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어르신들은 기도가 끝나게 무섭게 음료수를 따서 주십니다.
우리나라의 사랑하는 스타일입니다. 서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동양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체면 때문에 어려워할까봐 대신 결정해서 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관점 즉 자기중심적 관점이나 타인중심적 관점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꼭 필요한 관점의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평생 자기중심적 관점으로 사는 사람은 얼마나 이기적인가요? 그러나 반대로 평생 타인중심적 관점으로 사는 사람은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사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이 드는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두 가지 관점을 겪어야 합니다.
첫째 자기중심적 관점이 있어야 자신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언제 이런 자기중심적 관점이 있어야 하는가요? 어린 시절입니다. 자아의 정체성이 정립되어 갈 때에 자기에 대한 분명한 관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우리는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나를 보면 아이들에게 인사하라고 강요를 합니다. 그래서 인사를 하면 그나마 나은데…외면하거나 아니면 모른 척을 하면 나도 민망하고 시킨 부모도 민망해집니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강요하지 마세요. 그것이 교육이 아닙니다. 대신에 부모가 먼저 인사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부모들이 한 것을 보고 인사합니다. 어린 시절에 아이들을 정말 자신감 있게 키워주어야 합니다. 실수해도 괜찮다. 잘못해도 괜찮다. 아이들의 눈으로 이야기하게 하고, 아이들의 눈으로 표현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진정 자기중심적의 좋은 관점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면 아이들은 평생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가 됩니다.
둘째 타인 중심적 관점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타인 중심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합니다. 나 밖에 모르던 아이들이 이제 세상을 보는 관점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아마 이런 최고의 교육은 여행인 것 같습니다. 동남아지역에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무조건 열심을 냅니다. 여기에 자기중심적 관점만 있으면 주변사람들이 상처를 쉽게 받는데. 주변사람들이 상처를 받든 말든 자기에게 주어진 목표와 비전만을 가지고 달려갑니다. 그게 최고인 것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중심적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한 번 옆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옆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관점은 성숙한 시민은 될지 모르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적의 관점과 타인중심의 관점을 뛰어 넘어 통전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행위가 신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전에 인천에 7급 공무원이 한 절에 들어가서 불상을 내리치면서 난동을 피웠습니다. 그는 절에서 “부처님을 죽이러 왔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절을 구하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면서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가 타인 중심적 관점도 아니고 철저한 자기중심적인 관점인 것이지요.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인가?”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거짓말도, 심지어 폭력, 살인도 합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인 것이지요. 신앙생활하면서 미워하고, 싸우고, 욕하고 뒷담화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팔지 말아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교,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선교할 때에 수단과 방법이 없으셨습니다. 전도는 전략이 아니라 진정성과 영혼 사랑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볼 때에도 늘 관점을 가지고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주관적으로 들어가 몰입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는 그 드라마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저게 현실이라면 어떨 것인가라고 하는 객관적 관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무르지 말고 한 번 이 드라마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에 장동건을 비롯한 멋진 배우들이 나오면서 많은 2-30대 여성들을 오글거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보면서 참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약에 현실이 진짜 저런 상황이라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사의 품격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지막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신사의 품격! 나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제 현실의 남자친구, 남편이 옆에 있다.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남자를 남편으로 기대하지마라. 비교하지마라 불행해진다. 내 남편, 조금 어설퍼 보이는 남편이 최고다. 멋지지는 않아도 변함없는 남편,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신사이다.” <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