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믿음을 보여 주세요(1) 히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This is what the ancients were commended for).
요즈음은 사람을 평가할 때에 단순히 지능지수만을 가지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최근에 사람을 평가할 때에 얼마나 많은 지수로 사람을 평가하는가? IQ(Intelligence Quotient, 지능지수), EQ(Emotional intelligence Quotient, 감성지수), MQ(Moral intelligence Quotient, 도덕지수), SQ(Social intelligence Quotient, 사회성지수), CQ(Creative intelligence Quotient, 창조성지수), NQ(Network intelligence Quotient, 관계성 지수), AQ(Analogy intelligence Quotient, 유추지수) 물론 이런 것 말고 이런 지수도 있다. JQ(잔머리 지수), BBQ(뻔뻔 지수) 등. 그런데 세계적인 윤리전문가 브루스 와인스타인이라는 사람은 <윤리지능>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1995년도에 다니엘 골드만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지능지수 즉 IQ가 지배하던 인간의 능력측정을 새로운 감성지수 즉 EQ를 가지고 나타났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 단순히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감성적인 인식능력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시대는 감성의 시대이다. 다니엘 골드만은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니엘 골드만이 놓친 것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이 아무리 높아도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는 가르쳐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감성능력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감성지수는 가치중립적이다.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감성시대는 사실 조금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감성지능에 대하여 오늘날에는 “올바른 행동은 무엇인가?”를 말하는 윤리지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브루스 와인스타인은 윤리지능에는 다섯 가지의 원칙이 있다고 했다. 첫째 원칙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둘째 원칙은 내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라. 셋째 원칙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넷째 원칙은 공정하라. 다섯째 원칙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의 개념은 다양하다. 이웃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그것이 윤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윤리지능에 어긋난다고 했다. 또 사랑의 개념은 배려하는 것, 인정하는 것이 바로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에게 왜 윤리가 필요한가를 묻게 되었다. 사실 기독교는 윤리를 뛰어 넘는 것이다. 유대교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윤리는 바로 율법이다. 구약의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무엇인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율법의 행위였다. 그런데 이 율법을 잘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바리새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등장하면서 율법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쳤던 바리새인에 대하여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하셨다. 왜 비판하셨는가? 율법이 나쁜가? 그렇지 않다! 율법을 오늘날로 표현하면 윤리이다. 윤리가 나쁜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을 비판하셨는가? 그것은 율법이 말하고자 하는 그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율법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율법이 강조되고 율법이 말하고자 하는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서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진정한 윤리이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