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열매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1)
(요 15: 1-2)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저희 집 뒤뜰에는 레몬나무가 있습니다. 이 레몬나무는 저희가 이 집에 이사 온 이래로 근 10년간 레몬을 매년 풍족하게 공급하던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이 레몬나무가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는 나뭇잎도 모두 떨어뜨리고 달린 레몬 열매마저 충실하지 못하게 되면서 썩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처방을 해 보았지만, 결국 소생의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결국은 마른 가지들을 잘라내고 소생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전문가의 조언으로는 뿌리가 약해져서 그런 현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뿌리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 마른 가지들을 잘라버리게 된 것입니다.
다른 과실수들도 만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다면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내서, 열매를 맺는 가지에 양분이 더 공급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열매 맺는 가지에서 더 많은 수확을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더 좋은 결과를 위하여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과실수에서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이 천지 만물의 이치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로 말씀하셨던 사건도 그와 같은 맥락의 진리가 들어있는 사건입니다. 즉 맡겨진 한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게을렀던 종과 결산할 때, 그 게으른 종에게 주었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심히 일을 한 종에게 주게 하신 부분이 그런 진리를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인생을 사는 동안에 우리들 각자가 감당할 만한 일들을 맡기셨습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궁극적인 사명으로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고, 믿어야 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믿게 된 그 사실을 알리는 일도 또한 맡기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믿게 되면, 그 복음을 우선 직계 가족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알리는 이웃사랑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알리는 사랑의 실천, 이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맺어야 하는 실제적인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이웃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을 결산 받을 때, 게으른 종이라고 야단맞고 천국문 밖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실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 1-2)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농부라고 비유하시고 본인은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포도나무라고 비유하십니다. 그리고 그 포도나무에는 가지가 달려있음을 또한 말씀하십니다. 그 가지는 예수님의 지체이므로 곧 믿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_성도들의 현재 상태
농부가 포도나무에 병든 가지가 없는가하고 관심이 많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들의 관계에 매우 관심이 많으십니다. 즉 성도들의 현재 상태에 관심이 높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현재 상태가 장차 열매를 맺게 될 것인가를 결정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가지가 마르고 잎이 없으면, 그 가지에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상태를 보면 열매를 맺을 것인가 못 맺을 것인가가 예측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의 현재 상태에 관심이 아주 많으십니다. 마치 포도원 농부가 포도 수확을 예측하기 위하여 포도나무가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수를 공급받고 있는지 아니면 생명수가 공급되는 길이 사탄의 시험 등으로 차단되어 예수님과 멀어져서 영적으로 말라가고 있는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현재 상태는 장차 확정될 우리들의 구원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재 일과 중에 기도와 말씀을 읽는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마른 가지에서 열매를 기대하기 힘든 것과 같이 구원을 기대하기 힘든 위험한 상태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지금 현재 우리의 상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일과 중에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시간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진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다시 이야기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급되는 생명수를 계속 공급받아야 우리들은 사랑의 계명을 지키고 영생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어 보호받고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우리들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로서 자연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_인류의 회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에덴동산과 같지 않고 악이 존재하는 이 시대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이유는 아직도 인류의 회개가 원하시는 수준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이후 그 후손들은 전과자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우리 민족을 포함한 많은 이방민족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전과자의 피가 흐르는 인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과자라는 말은 하나님께 죄지은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짓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우상은 꼭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든 형상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그런 우상들은 죽은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정체가 이미 사람들에게 드러났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우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는 유행을 따라 우상도 변화되어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 어떤 대상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대상을 성취하기 위하여 또는 소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게 하는 것들이 우상인 것입니다. 요사이는 공공연하게 ‘idol’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서 내세우는 행위인데, 전혀 죄의식이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우상으로는 돈, 명예, 재물, 비성경적인 미디어들(드라마, 영화, 인터넷정보 등), 유명인사, 유명 연예인, 명품이라고 하는 것들(고가차, 호화주택, 사치품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상들은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시선을 끕니다. 그리고 소유하고자하는 욕심, 성취하고자 하는 욕심 그리고 자랑하고픈 마음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우상 앞에 굴복하고 노예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원죄를 지은 아담의 혈통을 지닌 인류가 현시대에 전과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거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만을 경배하지 않는 인류의 모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인류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시지 않으신다면 인류는 하나님의 실패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패하는 일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사람으로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으실 때, 그런 기능을 우리 안에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조명 가운데서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회복될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지시고 우리 인류가 스스로의 의지로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지은 죄를 우리 자신이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없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믿어 죄 사함을 받으면, 비로소 구원 받아 영생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는 여정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자면,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가지가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여정을 인도하고 가르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신데, 그 성령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맡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즉 생명수인 성령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가지(지체)인 우리들에게 공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는 기쁜 소식(good news),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우리들은 죄로부터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가지로 붙어 있으면, 우리들은 성령으로 공급되는 생명수로 인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영생이라는 풍성한 열매를 기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결과, 즉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는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는 고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