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인생의 행복한 동행자(1) 창 5:21-24
우스개 심리테스트가 있다. 이것은 결코 근거가 있는 심리테스트 같지는 않지만 한 번쯤은 생각하게 하는 심리테스트이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여행중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그런데 여행 중에 동물 다섯 마리를 데리고 간다. 호랑이, 원숭이, 소, 돼지, 양이다.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동물들을 하나씩 버려야 한다. 제일 먼저 무엇을 버리고 갈 것이며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고 싶은 동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호랑이를 버리고 원숭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소를 버리고 호랑이와 함께 갈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동물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호랑이는 명예이며 자존심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호랑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원숭이는 자녀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자녀를 마지막까지 데리고 가는 분들도 있다.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소가 의미하는 것은 일이라고 한다. 어떤 분들을 제일 마지막까지 소를 데리고 가는 분이 있다. 평생 죽는 순간까지 일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다.
돼지가 의미하는 것은 물질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에 돼지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면서 마지막까지 집착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이다. 양은 배우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마지막에 양을 데리고 가겠다는 분들은 반려자와 함께 마지막까지 가고 싶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마지막에 누구와 동행하고 싶은가?
정답은 없다. 왜냐하면 내가 남편이지만 동행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전혀 동행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면 동행하고 싶겠지만 평생웬수라고 생각하면 마지막까지 동행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가 살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렇게 괴롭혔다. 젊은 시절에는 바람을 피워 할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고 돈이 생기면 도박장에 가서 집안살림을 날린곤 하였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웬수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였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판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암말기 판정을 받고 더 사나와졌고 거칠어졌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죽어서도 관에서 벌떡 일어나 땅을 파고 나와서 당신을 괴롭힐꺼야!!”
결국 할아버지는 암으로 죽었다. 죽은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그곳에서 할머니가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동네 사람이 우스개 소리로 ‘할머니 이렇게 좋아하면 할아버지가 관을 파고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안 무서우세요?’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씩 웃으면서 ‘걱정없어요 그럴 줄 알고 내가 관을 거꾸로 묻었지~흐흐..’
우리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사이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이냐면 나는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상대방이 동행하지 않고 있는 경우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내는 내가 이렇게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을 다 이해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따라주겠지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대화를 나누어보면 동행한 것이 아니라 각자 따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은퇴하고 나서 함께 동행하려고 하니까 너무 힘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이제 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이미 아내는 앞서서 가고 있다. 차이가 너무 나서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그래서 남자들이 은퇴 이후에 부부싸움을 가장 많이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왜? 자신은 동행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동행하지 않은 것이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들이 정말 열심히 땀 흘려 번 돈으로 학원비 내주고 양육을 시켰다. 물론 너무 힘이 들어서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돌 볼 시간도 없었고, 놀아줄 시간도 없었다. 그렇지만 내심 아이들이 우리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을 이해해 줄꺼야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도리어 “부모들이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고…” “돈 벌고 일하는 데에만 목숨을 걸었지..우리들이 힘들 때에 부모님은 어디에 있었느냐고…”항변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과 동행한다고, 자녀들이 잘 따라온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라 각자 따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부모님이 명절이 되어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런데 명절을 보내고 내려오는 데 어느 날 예수님이 안 보이는 것이다. 난리가 났다. 분명히 함께 있었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눅 2:44)라고 하였다. 이게 우리의 착각이다. 착각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