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인생의 행복한 동행자(2) 창 5:21-24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심지어 물질이, 나의 친구가, 나의 가족이 동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우리의 착각이다. 여러분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도 여러분과 동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에게 위기가 왔을 때에도 여전히 동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동행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동행할 때에 필요한 3가지>
그렇다고 한다면 동행을 할 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첫째는 동행을 하기 위해서는 방향이 같아야 한다.
남여가 서로 사랑하면 자석에서 남극과 북극이 만나는 것처럼 철썩하고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여기까지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결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서로 달라붙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달라 붙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가 더욱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방향이다. 사랑하면 남극과 북극이 달라붙어 하나가 되지만 결혼은 둘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을 잊고 결혼을 한다.
둘이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방향이 다르면 어떻게 되는가? 서로 자신이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줄다리기를 한다. 하나 되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많은 분들이 방향을 고민하지 않고 결혼을 하였다. 사랑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처럼 보여 졌다. 그러나 사랑보다 더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방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서도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방향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마주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동행은 같은 방향을 보고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은 인생에 두 가지 인생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시계인생이고 하나는 나침반 인생이다. 시계인생이 무조건 열심히 산 사람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나침반 인생은 무조건 열심히 산 인생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을 향해 일한 인생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한 사람이 있다. 그가 해방 이후에 재판장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을 하였다. 나는 나에게 맡겨 준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말을 하였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일하고 있는 방향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열심히 일한 것은 맞지만 그가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행위의 방향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동행하면서 방향이 맞아야 행복하다. 나는 강으로 가고 싶은 데 아내는 산으로 가고 싶다면 그것처럼 피곤한 일이 없다. 부부의 자녀교육에도 방향이 같아야 한다. 남자는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데 여자는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모범생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교육방향의 차이 때문에 부부들이 얼마나 많이 갈등하고 있는가? 또 부모의 마음과 아이들의 공부방향이 다르다. 집안에서 형제간의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오래 전에 집사님 한 분이 계셨는데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착한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집사님이 새벽에 일어나 남편을 깨우더니 이혼을 하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너무 힘이 들어서 못 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놀라서 “아니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데 그러냐고…교회는 안가지만 교회에 잘 보내고, 교회 일을 한다고 하면 내가 적극 협조를 해주었는데 왜 그러느냐고..”하니까 이 여자집사님이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나를 도와주는 것은 고마운데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너무 힘이 들어서 못살겠다고…” 그래서 결국은 이 남편이 일 년에 4번 분기별로 교회에 나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혼할 때에는 나를 교회에 나가게만 하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생각을 했지만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 결혼생활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나의 남편과, 아내와 같은 방향으로 동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둘째 동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속도가 같아야 한다.
물론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다. 속도가 같아야 동행하는 것이다. 우리 어르신 시대에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서 길을 걷는다. 한 참 열심히 혼자 걸어간다. 한 참을 걷다보면 옆 사람이 안 보인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면 헉헉대고 뒤에서 삐져가지고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 이것은 동행이 아니다. 앞 차가 길을 안내한다고 앞장을 섰다. 그런데 이 차가 시속 120km로 달려가면 이것도 역시 동행은 아니다. 동행은 함께 걸음을 맞추는 것이다.
부부가 아니면 친구가운데 한 사람이 빨리 달려가면 어느 시간이 되면 남남이 된다. 대학교 동기라도 한 사람이 잘 나가거나 한 사람이 뒤쳐지면 점점 멀어져 동행을 할 수가 없게 된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형제가 잘 나가고 한 형제가 너무 힘들게 살면 형제간에도 동행하기가 힘들어진다. 점점 멀어지고 만남이 줄어들게 된다. 속도가 비슷해야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부부가 처음에는 속도를 맞추어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이든 아내이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둘 중에 한 사람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그리고 어느 날 달려간 사람이 뒤를 돌아보니까 멍청하게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을 발견한다. 뒤를 돌아보면서 화를 낸다. “머하냐고…당신과 수준이 안 맞아서 못 놀겠다고…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누구 탓인가? 혼자 달려간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은퇴 한 후에 집에 돌아오면 이미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함께 동행하자고 했지만 이미 아내는 너무도 멀리 다른 방향으로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것이 어긋남이다. 잘 나갈 때에 우리는 함께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
한국역사학자인 이만열 교수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를 썼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35년 전에 아내가 공부를 계속 하겠다고 하였을 때에 흔쾌하게 허락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하였다.
결혼 초에 아내에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교를 졸업 후에 신학대학원에 진학 공부를 계속하다가 잠깐 쉬는 사이에 이만열교수와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 후에 첫 아이가 생기고, 3년 터울로 둘째까지 갖게 되었다. 그 무렵에 아내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 이때에 이만열교수가 흔쾌하게 동의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아내에게 뒷날에 기회가 있으니까 지금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 후에 아내는 더 이상 공부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알았지만, 새로 공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아내는 지원하려는 대학의 교수로부터 내락을 거의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상황파악을 위해 좀 더 긴밀한 대화를 나누었어야 했다. 그러나 대학에 갓 전임이 된 이만열교수는 아내와 대화하기보다는 서재에 틀어박히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했다. 이만열교수는 아내가 공부하고 싶다고 의사 표시를 했던 그 유일한 기회를 제때 도우지 못한 후회는 늙어갈수록 더하다고 하였다.
이제 70줄에 들어서서 두 아들이 자기 배우자와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벙어리 냉가슴’은 더욱 고조된다고 하였다. 이 교수는 함께 아내와 같은 속도로 동행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속도로 동행해야 한다.
남편들이 열심히 달리면 아내들도 열심히 달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유학 가는 부부의 아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만을 위한 인생은 살지 마라, 남편을 위해서, 남편이 여러분의 인생이 아니다. 여러분도 남편이 공부할 때 무엇인가 자신의 삶을 만들어라. 그래서 남편이 학위를 마치고, 목적한 바를 마쳤을 때에 여러분 자신도 억울한 시간이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하라.
한 번은 어느 목사님이 찾아왔다. 이 분은 얼마 전에 학위를 받고 돌아온 분이다. 이 분의 표정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 목사님은 넋두리를 풀어 놓았다. 자신이 유학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아내는 자신의 공부하는 동안에 아파트 청소, 음식점에 가 일하면서 생활을 근근히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드디어 5년만에 학위를 마치고 졸업식장에서 아내에게 가운을 입혀주려고 하니까 가운을 집어던지면서 이게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펑펑 울더라는 것이다. 아내에게 유학말년에 우울증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자신의 논문 마무리 때문에 전혀 신경도 쓰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국해서 아내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서 지금 너무도 힘이 든다고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동행은 함께 속도를 맞추어서 가는 것이다.
셋째로 동행하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여행이 행복하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좋은 장소이다. 여행을 할 때에 장소가 정말 멋져야 한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장소를 보았을 때에 그 감동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둘째는 좋은 날씨이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할지라도 날씨가 여행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날씨가 여행에서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셋째로 좋은 사람들 즉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불편한 사람과 여행을 하는 것은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