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존재의 축복, 부모(1) 잠언 23:22-25
오래전 한국의 조선일보가 50대 이상 중·장년층 ‘시니어 통’(www.rebom.co.kr) 회원 205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평소 자식들에게 가장 상처받은 말’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3위는 “바빠서 못 찾아 뵙겠습니다”(21.2%)였고, 2위는 인터넷, 휴대폰 같은 기계 작동을 두고 “이것도 못하세요?”고 하는 말이었다(23.5%). 그리고 1위는 “부모님과는 말이 안 통해요”(36.2%)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어버이날 자식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3위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18%), 2위는 “저희 걱정은 마시고 부모님만 위해서 사세요”(30%), 1위는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41.2%)로 부모들은 자식들로부터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부모의 사랑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한 청년이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된 처녀는 아름답기는 해도 아주 표독스럽고 잔인한 취미가 있는 여자였는데 처녀는 청년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달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청년은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어머님의 심장을 빼앗아 그는 심장을 가지고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달려가다가 그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심장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와 데굴데굴 굴러가는데 심장이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어머니의 심장이 말을 합니다. “애야 어디 다친데는 없느냐?”이것이 바로 부모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부모가 있는가요?
요즘 어른들은 자조적으로 우리는 가장 불쌍한 세대라고 말을 합니다. 부모에게 죽도록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으로부터 버림받는 첫 번째 세대라고 말을 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다 그런가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식들에게 효도하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섬기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는 않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엔 한때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고려장이라는 제도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쨌든 고려장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짐니다. 한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나이 많은 어머니를 내다 버리려고 지게에다 태우고 산으로 가면서 자신의 아들과 함께 갔습니다. 어머니를 버릴 장소를 물색하고 어머니를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음식을 좀 내려놓고 어머니를 그냥 안고 한참을 울며 있을 때 그 어머니는 이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아 ‘가자’하고 내려가려고 하는 데 아들이 ‘아빠! 이 지게를 가져가야지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 쓸데없다’라고 하자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 다음에 아빠 모시고 올 때에 이지게 써야지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아들이 자기의 노모를 모시고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왜 효도하지 않는가요? 효도하는 방법을 몰라서입니다. 효도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효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은 내가 자식들로부터 그렇게 대접받는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내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용돈을 안 드리면 내 자녀들이 나에게 용돈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왜? 본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자식이 자신에게 효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어버이 주일이 되었는데 아이들로부터 문자, 카네이션도 없어서 제가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빠, 엄마에게 어버이날 문자도 없냐? 할머니에게 문자나 전화해라” 그러자 얼마 안되어서 큰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참 서두른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효를 배운 자녀들이 효자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왜 배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사랑받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사랑을 베풀고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조건부적 사랑이 아니다. 물론 부모가 효도의 모델이 되어주어야 하고, 부모가 자식을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해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부모는 사랑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는 명령어로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텍사스의 한 사내가 아내와 네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다 돈 한 푼 없이 죽었는데, 자기의 시체를 고향 텍사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자식들은 모두 그 소식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무슨 상관있어? 그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왜 우리가 그 시체에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지?”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큰아들은 아무 말 없이 동생들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아버지의 시체를 운구해 오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을 뿐, ‘어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말은 없단다.”
왜 우리는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러분들이 잘 나고 이뻐서 사랑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가 자녀였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부모이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부모이기 때문에 내가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허물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부족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요즈음에 자녀들을 키우면서 부모들이 느끼는 것은 절망감과 회의입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키우고 잘해 주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자식들로부터 비난과 불평입니다. 왜 형에게만 잘해주었는가? 왜 동생만 사랑했는가? 왜 남자형제만 잘해주었는가? 왜 여동생만 사랑했는가라고 불평을 합니다. 사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차별을 당했다고 느낀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어떤 자식도 자신을 더 사랑했다라고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들에게 항상 불만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먹여주고 공부시켰는데 돌아온 것은 왜 부모님은 부자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왜 부모님은 숨겨놓은 땅도 없느냐라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눈물까지 팔아서 자식들에게 해주었는데 자식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왜 더 안주느냐고 하는 비난입니다.
어버이 날이라 오빠와 동생이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오빠 : 야 카네이션 사와!
동생 : 오빠가 돈 보태줘.
오빠 : 엄마 지갑에서 빼가.
동생 : -_-;
또 엄마와 아들이 대화를 나눈니다.
아들 : 엄마 돈 줘.
엄마 : 왜?
아들 : 카네이션 사게.
자식들이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자식들은 부모들을 그냥 주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냥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어버이날에 꽃을 달아줄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것, 어버이날에 내가 용돈을 드릴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이 존재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