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지금은 기도할 때(1) 막 14:37-40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서재에 있는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하여 두리번거리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왜 이렇게 기도에 관한 책이 많은가? “강청의 기도” “중보기도” “대적기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사귐의 기도” “5만 번 응답을 받은 뮬러의 기도” “야베스의 기도” “중보기도 사역” “기도와 치유사역” “말씀묵상기도” “감정치유기도” “통하는 기도”등 수십권의 책이 꽂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기도에 관한 책이 많은 것입니다. 사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관한 책들이 많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기도에 대해서 그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책의 종류가 많은 것입니다. 만일 기도에 대하여 분명하고 단순하게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기도에 관한 책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목사인 저도 기도에 관하여 책도 많이 보고 또 기도를 하면서도 늘 딜레마에 빠지는 문제가 바로 기도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시이며 우리의 모든 삶을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험 때가 되면 우리의 자녀들이 대학에 합격하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있는 부모들도 자녀들이 대학에 떨어지면 하나님에게 섭섭하고,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병이 들린 사람을 위하여 낫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기도대로 응답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우리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가? 라고 말할 때에 많은 목회자들이 쉽게 당신의 기도가 부족해서 기도응답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듣게 됩니다. 정말 일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얼마만큼 기도를 해야지 응답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응답받는 기도를 이야기를 할 때에 인디언들이 하는 기우제 기도의 예화를 듭니다.
인디언들이 하늘을 보고 하는 기우제의 기도는 100% 응답이 됩니다. 어떻게 응답이 되는가? 그것은 인디언들이 비 가올 때까지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쉽게 우리가 100%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억지가 아닌가? 물론 간절하게 기도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기도가 응답이 안되는 기도도 있지 않습니까? 목사인 나는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된다고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된다고 믿으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도 우리 믿음이 부족해서 응답이 안되는 것인가?
필립 얀시라는 사람이 쓴 <기도>라는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릅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정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정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학공식처럼, 아니면 논리적으로 딱딱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기도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간증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라고 말을 합니다. 나도 그 말을 믿고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머리에는 늘 의문이 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에 복을 주시고, 나의 자녀를 위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재앙, 그리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그리고 6.25의 전쟁을 미리 막지 않고 방치하셨을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주변사람들로부터 응답받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왔다. 죠지 물러의 5만번이나 응답받는 이야기, 그리고 병을 치유 받게 된 기도의 이야기만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히 응답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도 기도에 응답받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기도하신 줄 아십니까?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하신 기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가 하나가 되었습니까? 한국교회만 해도 수백 개로 교파가 갈라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뽑으실 때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산에 가서 밤을 새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밤을 새면서 기도하실 때에 무엇이라고 기도하셨겠습니까? “하나님 좋은 제자들을 선발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설마 하나님 열두 명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은 나를 파는 제자로 만들어주세요”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면서 지금까지 기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정체를 알 수 없으며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을 없애달라고 요청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면 제자들 가운데 가롯유다 같은 친구는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에 성질 더러운 베드로 같은 친구는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은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을 한데 엮어서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신비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경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로 표현합니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